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옥 Dec 03. 2023

단순하면 행복해지는 것을

청소부 엄마의 유니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젖이라도 달라는 새끼강아지처럼 딸이 두두두두 달려왔다.

“우와! 엄마, 유니폼 입었네?"

“응, 명찰도 받았어.”

“교수보다 호텔이 낫다!"

“그래?"

“응, 호텔에서는 옷도 주고 명찰도 주잖아.”


청소부 유니폼을 입은 엄마를 반기는 멘트가 참 유쾌하다.

“거 참 재밌는 발상인데?”

“엄마 대학에서는 옷 같은 거 줘?”

“아니, 생각해 보니 네 말이 맞네.”


자비로 정장을 사 입는 교수보다 보급되는 유니폼을 입는 청소부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자세가 참 기발하다. 청소부 유니폼을 입은 엄마의 모습이 부끄러울 수 도 있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법한 청소년기의 고등학생인데 말이다.


딸아이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도 해학적으로 넘기는 재치가 있다. 특히 미국 고등학교는 내가 다녔던 한국 고등학교 문화에 비해 드라마틱한 스토리들이 많다. 대부분은 부모가 도와줄 수 없는 것들이다. 교우관계, 스케줄 관리, 선생님이나 코치와의 관계, 성적관리, 그리고 가장 힘든 소수민족으로서 경험하는 다양한 불합리하고 불편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긍정적이고 당당한 모습은 어른인 나도 닮고 싶은 부분이다. 배움에는 나이로 인한 위아래가 중요하지 않다. 그 멘탈을 딸아이에게서 배우고자 대화를 시도한다. 긍정의 마인드가 바이러스 마냥 나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 귀담아듣는다.


그러다 보면 내가 미처 터득하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게 된다. 그중에 하나는 단순해지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행동이나 들리지 않는 말에 너무 심오한 의미를 두고 해석하기보다는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단순해지면 청소부 유니폼을 입은 엄마의 모습이 구두에 정장을 입었던 교수의 모습보다 낫다는 즐거운 농담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순해지기로 했다. 그러면 짊어진 힘든 짐들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우울증이 오면 모든 일들이 내 잘못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저녁식사를 남기면 "내가 차린 밥상이 맛없어서"로 해석하게 되고,

학생들이 데드라인을 넘겨서 과제를 제출하면 "교수인 나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으로 해석이 된다.

그래서 우울감에서 헤어 나오기가 더더욱 힘들어진다.


단순해지자. 팩트만 보자. 아이는 밥을 남긴 거고, 학생은 숙제를 늦게 했을 뿐이다. 그 이상 내 멋대로 해석하지 말자. 때로는 의미를 부여하는 게 독이 될 수도 있다.


단순해지면 행복해지는 것을,

이렇게 단순한 진리를,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기까지도 몰랐던 것을,

고등학생 딸에게서 배웠다.


책상 앞 보드에 적어두었다.

단순하면 행복해지는 것을!

이전 05화 사람을 타이틀로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