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옥 May 18. 2023

학벌 세탁한 교수

부끄럽게도 청소부가 박사학위 소지자 

“이력서 첨부해 주세요.”

“이력서를요?”

“회사 지침이에요.”


편견

매니저가 인터뷰를 마치며 인트라에 입력해야 한다며 이력서를 첨부하라고 해서 당황했다.

“청소하는데 이력서가 필요해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순간 묻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되어 입술에 힘을 주어 입을 다물었다. 그 질문에는 내가 지원하는 하우스키퍼, 즉 청소하는 직업은 이력서 따윈 필요 없이 아무나 할 수 있는 3D업종*이라는 편견을 인정하는 뉘앙스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편견을 깨보고자 하는 나 자신에게도 그런 편견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 역시 영락없는 사회적 동물인 것이, 그런 사회적 인식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이미 내 신념과 가치를 형성해 버린 것이다.


이력서

교수가 되기 위해 수십 개의 대학에 지원을 해봤다. 비록 이력은 같지만 지원하는 포지션에 맞게 이력서를 매번 수정을 했다. 연구실적과 강의 경력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눈에 들어오는 단어로 바꾸기도 해 가며 내가 다른 지원자들보다 그 포지션에 딱 맞는 사람처럼 보이게 나의 이력을 더 빛나게 포장을 하는 작업이랄까.


하우스키퍼를 지원하는데 너무 빛이 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때는 생각 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단순히 때와 장소에 맞게 옷을 입듯이 이력서 또한 지원하는 포지션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이력서를 하우스키핑에 어울리게 작성했다. 에어비앤비** 슈퍼호스트라는 이력을 가장 첫 줄에 섰다. 나름 화려해 보였다. 청소와 관련된 이력이 없어서 자원봉사했던 경험까지 머리를 쥐어짜 가며 한 줄 한 줄 늘려갔다. 가까스로 작성한 이력서인데 한쪽도 채워지지 않았다. 청소 아르바이트 이력서 작성이 이렇게 힘들 줄야.


학력

최종 학력은 인터뷰 때 4년제 대학교 졸업까지만 포함했다. 면접을 볼 때 매니저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영어는 어디서 배웠어요?"

"뉴욕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국적은 대한민국인데 영어를 어디서 배웠는지 궁금해해서 뉴욕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했기에 이력서에 대학교 졸업은 포함해야 앞뒤가 맞겠다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을 정리해 보니 왜 굳이 최종학력을 숨겨야 했을까. 거꾸로 학벌세탁을 했어야만 했나? 혹시 박사학위 소지자라고 하우스키퍼를 안 시켜주진 않았을 텐데. 박사학위 소지자가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불법이 아닌데 왜 나는 떳떳하지 못했을까? 내가 주말에 청소를 한다고 했을 때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비판하고 비웃었던 나 또한 박사학위와 청소 아르바이트 자체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지 부끄러워진다. 나의 그런 가치관이 떳떳하지 못했기에 거꾸로 학력세탁을 한 교수가 되어버렸다.


난 오늘 부끄러운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내 삶은 떳떳한지.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일치했는지.
세상이 만들어놓은 고정관념에 묻혀서 그것과 타협하느라
내 가치관이 흔들리지는 않았는지. 

*3D업종: Dirty (지저분하고), Difficult (어렵고), Dangerous (위험한) 일을 하는 업종.

** 에어비앤비: Airbnb 어플을 통해 숙소 예약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숙박 서비스


* 이 글은 <나에게 솔직해질 용기>에 담긴 에세이의 일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