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한 직업, 우울증 치료제
반응
미국 주립대학에서 종신교수가 되었다. 정년이 없는 미국 대학의 종신교수.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말이다. 내가 원하면 이 대학에서 뼈를 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수가 호텔에서 알바를 한다니, 그것도 청소를 한다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다양하다. 반응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도저히 이해를 못 하는 부류와, 인정과 공감으로 응원해 주는 부류. 직접 들은 전자의 반응들은 대충 이렇다.
“그런 일을 왜 해?” “교수 월급으로는 힘든 거야?”
“남편한테 생활비를 보내라고 해.” “프런트가 아니고 청소를 한다고?” “알바를 꼭 해야 해?”
“그거 핫바리(하바리) 아냐?”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들이다. 직업엔 귀천이 없으며,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떠들어 대던 지식인들. 그 사람들의 반응이 이러했다는 것이 나를 실망시켰다. 순간 나오는 반사적인 반응에 그 사람들이 평소 해오던 말과 일치하지 않는 솔직한 가치관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반응들이 두려워서는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주변사람들에게 청소알바를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3개월은 해야 뭘 도전해 봤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굳이 말할 필요는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목표는 366일
“엄마, 그래도 3개월은 해봐야 신빙성이 있겠지?”
“야, 기왕에 하는 거 366일은 해라. 그래야 1년 이상 해봤다고 말할 거 아니냐"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내 목표는 1년을 채우는 거였다. 그리고 어느새 벌써 2년간 그 하바리들이 한다는 호텔 청소 알바를 해왔다.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3개월이 아닌, 1년 이상, 만 2년간 했다고.
호텔로 간 이유
혼자 있으면 자살이라도 할 것 같이 우울증 증상이 심해져서 어디라도 뛰쳐나가서 뭐라도 해야만 할 것만 같았다. 동네 메리어트 계열 코트야드 (Courtyard by Marriott) 호텔을 찾아갔던 것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매니저는 프런트에 배치하기를 원했고 나는 얼굴이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하우스키핑 포지션을 원했다. 매니저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엄지와 검지 사이에 딱 맞게 들어간 턱을 만져댔다. 일주일 해보고 적성에 안 맞으면 부서를 옮겨주겠다고 하며 부서배치를 해줬다.
직업의 귀천
직업의 귀천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청소 알바는 천하지 않으며 되려 나에겐 귀한 일이다.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주립대 종신 교수가 되기까지도 배우지 못한 것들을 하우스키핑을 하며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전혀 알지 못했던 미국의 밑낯, 영어를 못하는 이민자들의 비애, 훌륭한 리더들이 자주 쓰는 말, 기분 나쁘지 않게 일을 시키는 방법, 진상 고객을 대하는 방법, 동료와 잘 지내는 방법 등 말이다.
배움
유학생활 8년간 지도교수님도 주변 그 어느 누구도 현실적으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준 적이 없었기에 교수생활도 너무 지치고 힘들 수밖에. 호텔 알바를 하며 배운 미국 생활의 지혜는 내 교수생활을 더 윤택하게 해주고 있다. 영어를 못하는 유학생들의 비애, 훌륭한 교수가 되려면 자주 써야 할 말, 실수한 학생을 기분 나쁘지 않게 가르치는 방법, 진상 미국 학생을 대하는 방법, 동료교수와 잘 지내는 방법 등을 배우고 있다.
이러한 배움 외에 청소는 나에게 가장 효과적인 우울증 치료제라 할 수 있다. 길게는 일 년간 붙잡고 작업을 해야 출판되는 논문과는 달리, 청소는 결과를 바로 볼 수 있기에 일에 대한 보상이 즉각적이라 좋다. 내가 청소한 방에서 좋은 향이 날 때, 깔끔하고 정리된 객실을 볼 때, 손님이 좋아할 때, 팁을 받을 때, 슈퍼바이저에게 칭찬받을 때, 나의 자존감이 높아진다.
보상과 칭찬
교수생활도 엄마 역할도 가장 지치게 하는 건 바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할 때 드는 허무한 기분이다. 내가 하는 일들이 당연시 여겨지고 보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밥을 차려줬다고 팁을 주는 가족은 없지 않은가! 베이비시터가 애들을 봐주면 시간제로 노동에 대한 값을 지불하지만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노동에 대한 보상은 모성애로 대체된다. 강의를 잘한다고, 논문 한편 더 출판한다고 연봉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보상 없이 해야만 하는 이러한 당연한 일들을 묵묵히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바닥까지 내려와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럴 때 나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건 바로 인정과 공감이다. 청소를 하는 나를 인정해 주고 공감해 주는 후자의 반응들은 이렇다.
“넌 정말 대단해.” “널 보면 자극받아서 나도 더 열심히 살게 돼.” “예상 밖이긴 하지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 감동이야.” “너니까 할 수 있는 거야.” “나도 자극받아서 뭐라도 하고 싶어 졌어요."
이런 반응들을 보인 사람들을 진정한 지식인으로 인정한다. 진심으로 공감하고 응원까지 해주는 이 사람들은 직업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들이고, 전자처럼 지식인 코스프레 부류에 들어가지 않는 진실된 사람들이다.
응원에서만 그치지 않고 무언가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이중에 한 명은 의사이다. 이 친구는 내가 청소를 하기 전부터 조경 알바를 해오고 있다. 다른 친구는 캘리포니아 명문대 출신인데 스타벅스에서 알바를 하고 있다. 또 한 친구는 나보다 연봉이 높은 직업이 있음에도 나와의 대화를 마치고 바로 주말에 우버 알바를 시작했다. 대학원을 가기로 한 친구도 있고, 새벽기상을 실천하게 된 친구도 있다. 교수가 청소부라니 나 또한 무언가 도전해 보겠다 하고 실천한 이 친구들과 함께 계속 성장할 것이다.
* 이 글은 <나에게 솔직해질 용기>에 담긴 에세이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