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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ug 27. 2022

나는 전원일기 김 회장님의 장남도 아닌데 말이지.

9급 신규자는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다.

좁은 어항 속처럼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 희망 근무지를 어디로 하지?"

"오라는 데도 없는데 그냥 나 있는 데로 신청해."

모든 비극은 이런 막말을 내뱉은 나의 불찰에서 시작되었다.


내 고향으로 끌어들여 생긴 화근이다.


그러니까 이 바닥이 얼마나 좁냐 하면 말이다.

그저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는 숙명적 한계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기력을 느낄 정도였다.


남편이 전에 발령을 받았던 곳에서 나이 지긋한 직원이 내가 OO 지자체에 있다니까

"우리 질부가 거기 있는데, 계장으로."

이러면서 살갑게 대하더라는 것이다.

질부, 질부라.

도시행정에서는 제적등본에서나 구경할 법한 촌수 관계,라고 나만 생각한다.

시험에 나온다니까 무작정 달달 외웠던 그 복잡한 족보 따지는 촌수 관계.


나야 시골에서만  평생을 살다시피 했으니까 당숙, 당숙모, 질부, 시아재, 조카며느리, 손주 사위 이런 말들을 항상 듣고 살아왔지만, 실제로도 그런 분들과 매일 만나다시피 했지만, 전혀 모르는 남의 입에서 나왔다는 '질부'란 단어가 무척이나 낯설게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당시 나랑 같은 사무실에 그 질부 되시는 분이 산업 계장님으로 계셨다.

어느 날은 그 계장님이,

"임자 씨, 남편이 OO 학교에 근무해?"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스러웠지만,

"아, 네. 안 그래도 말씀 많이 들었어요. 계장님이 질부 되신다고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은 그분이 '질부의 일생'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를 하시는지 듣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듣게 되었다.

한 사무실에 발령받아도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다가 인사이동 때 헤어지고 말지도 모를 관계가 그 징검다리를 놓아준 남편의 직장 직원 덕분에 나마저 마치 그분의 조카며느리로 입양된 것 같았다.


또 다른 날,

"자기야. 자기 사무실에 새로 전입 온 직원 있어?"

"응. 이번 1월 인사 때 섬에서 왔다던데. 왜?"

"나랑 같이 근무하는 형님 부인이래."

"아, 그래?"

"원래는 거기가 고향이라 섬에서 근무하다가 이번에 빠져나온 거래."

"그래."

나는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을 하고 난 후 어둠 짙은 주차장 앞에서 아내를 기다리며 차를 세워두고 종종 담배를 태우던  그녀의 남편을 떠올렸다.


"정말 세상 좁다. 어쩌면 부인은 부인끼리, 남편은 남편끼리 한 사무실에서 근무를 할 수가 있지?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해도 못하겠다. 직렬도 다른데 말이야."

그 말만 덧붙일 뿐이었다

그곳은 넓지는 않아도, 남편은 그 도 내에서 어디로든 다 이동하며 근무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나는 타 지역으로 전출 가지 않는다면 좁은 지자체 안에서만 정년퇴직 때까지 돌고 돌 인생이었다.


다른 날, 나는 얼굴도 모르고, 본 적도 없지만 또 소문으로 들어서 내 '중학교 친구의 친구의 동생'이 내가 근무하던 곳으로 발령을 받아 오게 된 것도 알게 되었다.

그 동생을 전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보자마자 그 친구의 동생이란 걸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녀는 처음 만난 내게도 친언니 대하듯 살갑게 해 주었고, 내가 첫째를 임신했을 때 미친 듯이 입덧하던 암흑기에  먹고 싶을 걸 사다 주겠다며, 출장 갔다 돌아오는 길에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빵을 한 아름 내게 안겨 주기도 했다.


그뿐이랴.

내가 공무원으로 임용돼서 처음 발령을 받아서 간 유배지에서는

"아, 임자 씨. 반가워. 나 이모 친구야."

"네?"

"이모 중에 OO 있지? 나랑 같은 학교 다녔어. 내가 이모 잘 알아."

"아, 네......"

하지만 전 주사님을 전~혀 몰라요.

반드시 잘 알아야 할 것 같지도 않고요.

이모 친구와의 상봉은 나를 뜨악하게 만들었다

시골이니까,   좁은 동네 시골이니까, 고향이니까, 고향에서 근무하니까, 토박이니까, 진정한 토박이니까.

조만간 그분의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말에 나는 어느새 조용히 연필이며, 공책, 필통 같은 학용품들을 그분의 아들을 위해 포장하고 있었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아이를 위해.

나는 그것이 막내 이모의 오랜 친구에 대한 조카로서의 당연한 의무쯤으로 여기기까지 했다.

아, 나는 이모 친구의 아들 입학 선물을 전달하기 위한 사명을 띠고 그곳으로 발령받은 것이로구나.


군청에 재발급된 주민등록증을 수령하러 갔을 땐 또 어땠고?

졸업한 지 20년 가까이 되었어도 그녀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중학교 동창이다.

공부도 제법 잘했던 친구, 성품도 온화했었다고 기억되는 친구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라, 중학교 때 팔짱 끼며 화장실 다닐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던지라 오히려 어색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어쩜,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얼굴이 하나도 안 변하고 그대로라는 게 신기했다.

하기는, 나도 고향에서 근무하던 당시에 학창 시절 친구들이 모두 나를 보자마자 알아봤었지.

다들 하나같이 내가 그대로라며 반가워했지만 나는

"너도 하나도 안 변했다 얘. 옛날하고 똑같아."

라는 말로 응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먼저 알은체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단순히 민원인으로만 스쳐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전혀 그들을 못 알아봤었는데 나를 알아보는 그들의 눈썰미에 감탄했다.

나는 공무원 합격을 하고 어떤 시술이라도 받았어야 했는지 몰랐다.


그 정도로만 그쳤으면 시시하게?

처음 발령받은 그 유배지에서

"임자 씨. OO 과장님 조카지? 나 임자 씨 본 적 있는데 나 모르겠어?. 그 과장님 집에 갔을 때 사모님이 우리 점심 대접해 주신다고 갔는데 그때 상추랑 고추 갖다 줬잖아. 기억 안 나?"

아뿔싸. 이런 복병은 상상도 못 했다.

내가 꼭 기억해야 하나요?

지우고 싶어요.

내 예상 범위 밖이다.

공무원 시험을 보는 족족 떨어지고 다소 신변을 비관하며 부모님 농사일을 돕던 철없던 때다.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번번이 탈락하고선 세상에 불만만 가득 차 있던 시절이다.


공시생들은 새겨들을지어다.

고향에서 근무하는 것은 절대 녹록지 않다.

특히 시험에 붙기 전에 만나는 그곳의 모든 공무원(하다 못해 자취방 주인이라도)을 경계할지어다.

나중에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

인생살이 모두가 그렇지만 말이다.

'뭔가 있어. 나를 둘러싼 음모가 있는 것 같아. 어쩌면 가는 곳마다 이렇게 엮이는 사람이 많지? 많아도 많아도 이럴 순 없어. 이러기도 힘들 거야. 애초에 고향으로 시험을 보는 게 아니었어.'

순간순간 그런 마음이 들었고 급기야 지역 선택을 잘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자기야. 혹시 OOO라고 알아?"

"알지? 성도 특이하잖아. 내 초등학교 동창인데 왜? 자기가 걔를 어떻게 알아?"

"이번에 교육청 교육 가서 만났는데 무슨 얘기하다가 고향 말이 나왔는데 그 사람이 자기랑 같은 지역 출신이라잖아. 설마 했는데 같은 초등학교 나왔더라고."

"뭐라고? 내 얘기는 내가 하고 다닐게. 자기는 자기 얘기만 해. 언제 봤다고 처음 본 사람한테 내 얘기까지 해? 조신하게 행동하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왜 그러실까?"


"자기야. 자기 동생 친구 중에 OOO이라고 있어?"

"응. 우리 작은 아빠 친구 딸인데. 걔 언니가 내 친구고, 친구 오빠 이름이 OOO야. 근데 걔는 또 어떻게 알아?"

"그게, 나 이번에 업무 처리하다가 교육청 담당자랑 통화했는데 그 친구가 알고 보니까 처남 친구더라고."

"내 뒷조사만 하고 다니는 거 아니지 설마?"

"무슨 말이야? 여기가 자기 고향이니까 아무래도 자길 아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내가 무슨 지역 유지 딸도 아니고 왜 이렇게 얽히고설키는지 도통 모르겠다.

다시 한번 남편을 내 고향으로 인도했던 것을 뒤늦게 참회하고 참회했다.

지은 죄는 없지만 나에 대해서 다들 좋게만 말하리란 보장도 없고, 각자 그냥 업무상으로만 엮였으면 좋겠는데 중간에 아무 상관없는 내가 끼어 있는 게 남편에겐 어떨까 싶기도 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학연, 혈연, 지연의 인간관계 릴레이는 계속 이어졌다.

결혼을 하고, 이젠 남편의 지인까지 가세하기 시작했다.

결혼한 순간 지인 '원 플러스 원'이 되었다.

남편은 내가 근무한 지역에서 국가직 발령을 받아 우체국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몇 년 전 발령받아 간 곳에서는 남편의 그 우체국 동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그럼 남편의 실체를 잘 알겠네?

조심해야겠구나.

괜히 자극하지 말자.

지인 릴레이는 계속되어야 한다.

대학교 다닐 때 지역 장학금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담당 공무원이셨던 분이 임용 첫날 나를 알아보고는 친히 인사도 건네주셨다.

선뜻 밥 한번 사시겠다며 반가워하셨다.

동행했던 친척분이

"밥은 임자가 사야지."

하셨다.


가볍게는 그 지자체에서 과장님으로 정년퇴직하신 가까운 친척분,

하다못해 아빠랑 오랫동안 계를 하고 계신 아빠의 계원 멤버이신 이장님,

막내 삼촌의 친구인 이장님,

당숙모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신 적이 있는 시간제 공무원으로 임용돼 오신 주사님까지,

그들에게 나는 없었고 '누구의 누구'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정체성의 혼란이라고나 할까?

사춘기 때도 안 겪었던 질풍노도의 시기가 비로소 도래했다.


아무하고도 엮이고 싶지 않다, 진정으로.

괜히 내가 사소한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나를 가운데 두고 애처로이 거미줄에 걸려있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괜한 누라도 끼치게 될까.

모르는 누가 보면 내가 무슨 지역 유지의 딸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저 농민의 딸이다.

남편이 그랬다.

걸핏하면 아는 사람을 만나고, 누구의 누구가 나란 사실에

"와, 자기 그 정도면 지역 유지 아냐?"

이런 실없는 소리를 한참 하던 그때 나는 고향에 발령받아 일하는 부담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나는 그들을 모른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은 나를 안다.


이 지역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

단지 13년 전에 지방직 시험을 같은 지역으로 봐서 달랑 한 명 뽑는 일반행정직에 나 때문에 자신이 2등으로 떨어졌다며 집요하게 접근해 와 결국은 사귀게 되었던 사람,

국가직 발령 희망 지역을 내 말 한마디에 내가 사는 곳으로 지원해 임명장 받고 어쩌다가 나랑 결혼도 한 사람.

그 사람 입장에선 가는 곳마다 나랑 연결되는 많은 사람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으니 마음만으로라도, 말로만이라도 아내를 지역 유지 정도로 격상시켜 주고 싶었을까.

"그래도 아는 사람도 많고, 고향이라 더 좋겠다."

한동안은 그런 아니해도 좋을 말들을 입에 달고 살던 남편이었다.

물론 좋은 점, 안 좋은 점 둘 다 있다.

그 모든 인연들로 인해 내가 의원면직하는 그날까지도, 그 이후까지도 이렇게 시달리게 되는 가혹한 운명의 굴레를 쓴 것이란 말인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면 너무 과장일까?

임용될 때도 요란하게, 퇴직할 때는 더욱더 시끄럽게.


지금 나와 단지 옷깃만 스친 그 사람이, 내가 오늘 우연히 만난 사람이, 내 이웃이, 전생에 나의 부모가 아니었던 적이 없고, 나의 자식이, 친구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는 그런 말씀에도 그 억겁의 전생 인연이 나는 너무 부담스럽기만 하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달나라로 나를 보내주었으면.

다누리호를 타고 토끼랑 바통 터치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면 내 인생 새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은 죄 하나 없이, 나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를 그냥 나 한 사람으로, 그저 이제 막 공직생활을 시작하는 신규자로, 그 자체로만  봐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울려고 내가 공무원 시험을 합격했던가, 웃으려고 합격했던가.

따지고 보면 이래저래 엮으려면 어떻게든 엮어지는 게 인간관계다.

더군다나 좁다란 공무원 조직 사회에서는 안 엮이고는 못 배긴다.

전원일기 속의 김 회장님 장남도 이렇게까지는  학연, 혈연, 지연에 얽히지 않을 것 같다.

당신은 단군의 자손,

엮이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나는 너이고, 네가 나이며, 우리는 서로 남이 아니란  것을 입증하기 위해 공무원으로 임용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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