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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12. 2022

여자가, 공무원이 받는 그 정도 월급은 적지 않아.

9급 1호봉 공무원의 월급


22. 9. 9. 내겐 너무 가벼운 월급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젠 고정적인 월급을 받고 싶다.'

그 마음 하나로 공무원 시험을 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령 회사 같은 곳에 일을 하러 다니며 양심의 가책으로 더 이상 출근하기가 망설여졌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며 근거도 알 수 없으면서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무조건 우편물을 보내기도 하며(도대체 그 자료는 어디 또 수집한 건지도 모르는 것들), 농번기에는 부모님 일손을 도우며 그럭저럭 지내왔었다.

사춘기 때도 안 겪었던(안 겪었다고 생각하지만 착각일 수도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나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며 많이 겪었다.(고 생각한다.)

괜히 부모님에 대한 서운함, 내 처지의 절망스러움, 앞날이 까마득해 자꾸만 땅으로 꺼지는 기분을 느꼈는데,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은 너무 자주 공무원 시험에 불합격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항상 말해 왔듯이 공무원 시험에만 합격한다면 다 낫는 병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공무원 임명장을 받자마자 환상의 꽃길이 피어난 것도 아니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젠 진짜 인정사정없고, 살벌하기까지 한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그때 자기 날마다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고 나한테 그랬었는데 그래도 잘 다니네?"

어질어질했던 몇 개월의 신규자 과정을  지난 후에 당시 남자 친구가 내게 한 말이었다.

"내가 언제 그런 말 했다고 그래?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다."

라며 나는  언제나 시치미 떼기에 급급했다.

다 기억난다.

내가 먼저 지방직 발령을 받고 당시 남자 친구이었던 남편에게 그렇게 넋두리를 하면 그는 나를 무작정 달래기 바빴고(아직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이 뭘 알아서 그랬을까?), 나중에 국가직 발령을 받은 그가 나의 과거를 그대로 복사해 붙여 내게 똑같이 말했을 때 나도 'ctrl+c', 'ctrl+v'해 줬다 물론.

"세상에 어디 쉬운 일 있는 줄 알아? 그래도 사기업보다는 나은 줄 알고 다녀. 나가 봐 봐. 거긴 더 해. 완전 생존경쟁이야. 여긴 그나마 온실(그 온실이란 것이 상황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이라고 생각해. 공부하던 때를 생각해 봐. 호강에 겨운 소리 말고."

그 온실이란 것이 상황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 말은 처음 발령받은 사무실에서 같이 일했던 그녀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진짜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왜 아무도 안 가르쳐 줘요? 뭘 가르쳐 주고 나서 일을 시키든지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도 다 그렇게 일해왔어. 처음에 대학 졸업하고 일하는데 너무 힘들더라. 일은 많아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집으로까지 일거리를 들고 가서 울면서 일했다. 언니도 그런 시절을 다 겪었어."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게 체계적인 인수인계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울면서 해도 모르겠더라, 모르는 일은.

절대로.

왜 울면서 일을 해야 하지?

울지 않고 전임자에게 체계적인 인수인계를 받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비법(?)을 전수받기를 바랐던 나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었다.

동아전과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혼자서도 보고 배우면서 할 수 있는 뭔가 줘야 하는 건 아닌가.

신규자 교육만 갔다 오면 짠!~ 하고 무슨 일이든 다 처리할 수 있는 비결을 다 얻어 올 줄만 알았더니 그건 더더욱 아니었다.

다들 자기 업무에 바쁜데 세상 물정 모르는 신규자 일 봐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바쁜 사람들을  마냥 붙잡고 매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하면서 느낀 거지만 뭐가 그리 아깝다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겪었던 것들을 거저(?) 알려주기 싫어한다는 느낌도 꽤 많이 받았다.

물론 일부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남편도 그런 느낌 받은 적이 많았단다.

지방직이나, 국가직이나, 일반행정직이나 교육행정직이나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단순한 내 생각에는

'먼저 해 본 사람이 정확히 잘 알려주면 업무 효율도 더 올라가고 좋은 거 아닌가?'

어디까지나 내 입장이었다.

나만의 착각이었다.

자기 것을 남에게 나눠주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고생해서 터득한 건데, 어떻게 거저 너한테 주냐?'

 뭐 이런 심보였을까.

모르니까 물어보지 알면 물어보겠냐고요.

대놓고 핀잔주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서럽고 서러웠다, 신규자는.

"다들 그렇게 사회생활한다"

라는 그 말은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고, 나는 그 사회에 적개심을, 성장촉진제를 주면서 키워갔다.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일을 어떻게 혼자 알아서 잘할 수 있겠는가.

매우 일을 못했던 신규자로서는 도무지 이해 안 되는 그곳의 풍경이었다.

그러면서도 생각했다.

'사기업은 더하겠지? 그래도 월급 하나는 확실하게 받을 수 있잖아.'


"그래도 여자가 어디 가서 이 정도 월급 받기 힘들어(그녀가 말하는 건 그녀의 월급 기준 같다). 이만큼 일하고 이 정도 주는 데도 없어."

그녀는 항상 내게 그렇게 말해 왔다.

20대에 공무원으로 임용돼서 나랑 만났을 때는 이미 그녀는 7급, 공직생활도 10년 가까이했을 테고, 월급도 어느 정도 섭섭지 않게 받고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보도 떼지 못한 당시, 120만 원 정도의 지방 일행직 9급 월급을 생각하면

'이만큼 일하고 이만큼 주는 월급 잘 찾아보면 세상 어딘가에 있긴 할 것 같다.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다.'

라고 철없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래도 사기업에서는 이 정도의 일을 하고 월급은 덜 줄지도 몰라.'

한편으론 또 생각했다.


선배 공직자들은 말한다.

"공무원이 월급이 처음엔 정말 적긴 하지만 그래도 근무한 기간에 따라 조금씩 오르고, 중간중간 나오는 게 있으니까 그런대로 살 만하다. 그리고 나중에 연금도 있고."

라고 말이다.

공무원이 되기를 원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은 그런 것일 것이다.

적지만 월급은 오른다.

정년은 보장된다.

절망해 갈 때쯤 정근수당이 나오고 성과급도 나온다.

게다가 연금,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 연금이 나부터도 조금 불안한 건 사실이다, 이제.

매달 나오는 월급만 생각한다면 국민의 봉사자라는 그 사명감은 뒤로하고라도 현실적으로 생활하기에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나 임용 초반에는.


'그나마 공무원이라서' 

'직업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이 정도면 양호하다.'

이 마음 하나로 출근했던 시절이었다.

'사기업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뭐라도 더 낫겠지?'

하며 달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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