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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20. 2022

업무시간 이후 민원서류를 발급해 줄 의무가 있나요?

말이 통하지 않는 민원인을 만날 때마다 비상근무다.

22. 9. 19. 구름에 달 가듯이 들르는 민원인


< 사진 임자 = 글임자 >


"불이 켜져 있어서 들어와 봤어요."

문이 열려서 들어왔겠죠.

안에 사람이 있는데 불을 끄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혹시 서류 발급할 수 없어요?"

네, 정확하십니다. 잘 아시면서 물어보시네요.

발급할 수 없습니다.

"어차피 퇴근도 안 했는데 지금 일 봐주면 안 돼요?"

안 되는 게 아니라 안 할 겁니다, 그것도 아주 매우 상당히 적극적으로.

"화장실이 어디예요?"

최소한 일하는 사무실 안에는 없습니다.

"일도 안 할 거면서 그럼 왜 앉아 있는 거요?"

설마 밤늦게,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민원인(바로 you) 만나려고 남아있겠습니까?


각자 이유는 있었다.

2018년 이맘때였던 것 같다.

평일, 그때도 태풍 때문에  전 직원은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비상 근무조 명단은 이미 만들어져 있었고, 나는 비상근무 첫날에 몇 명의 직원들과 사무실에서 비상대기 중이었다.

밤 12시까지 일단은 비상근무였다.

드디어 나도 신데렐라가 되어보는구나.

신데렐라는 유리구두 한 짝을, 공무원은 비상근무한 흔적, 지문을 남기고 사라지면 되었다.


집에도 안 가고 직원들하고 놀려고 남아있는 줄 아시나, 꼭 낭창낭창한 종이로 뭔가 출력해서 증지 찍고 직인 찍어 그 품에 안겨줘야만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설마?

공무원으로서의 애로점이 있다면 저런 경우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갑자기 비상근무가 떨어질 때 말이다.

공무원이니까 당연하다.

왜 당연한고 하니 공무원이니까.

그날은 남편도 태풍을 대비해 이것저것 확인하느라 퇴근이 많이 늦었다.

부부 공무원의 애로점이 또 이것이다.

내가 비상근무면 너도 비상근무.

5살 아들, 7살 딸은 부모가 없는 집안에 둘이서 오붓한 저녁을 보내게 될 터였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없는 혼자 몸이라면 차라리 더 나았을 때였다.

집에 전화도, 아이들에게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내심 걱정이 되기는 했다.

그러나 평소 (나를 닮았다고 확신하는) 차분한 성격의 아이들이라 큰 사고를 치진 않겠거니 했다.

다소 활동적이긴 했으나 결코 산만한 편이 아닌 아이들이다,라고 고슴도치는 제 새끼들을 함함하다고 언제나 주장하며 믿고 집을 비웠다.


밤에 비상근무를 하는 중에도 전화는 사방에서 걸려 왔다.

민원인들도 꽤 많이 전화를 한다.

군청에서는 뭘 단속하려는지 수시로 전화를 걸어왔다.

분명히 퇴근 시간이 끝나고 저녁 9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태풍 관련 민원도 아니고 평일 근무시간에나 받음 직한 전화를 많이 받았다.

어느새 나는 상담에 들어갔다.

민원서류를 떼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자격이 어떻게 되는지, 생명연장의 꿈만큼이나 길고 긴 근무의 연장이었다. 100세 시대를 넘어 120세 시대가 온다는데 그에 발맞추듯 '심야 민원실'이 열렸다.

지금은 그런 전화를 받고 있을 때가 아닌데, 혹시라도 모를 사고를 대비하고 정말 긴급한 전화를 우선 받고 보고하고 처리해야 하는데 말이다.

뿐이랴,

사무실 불이 환히 켜진 것을 보고는 지나가던 민원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다반사다.

우리는 정이 많은 민족이다.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분명히 근무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데 굳이 왜 들르는 걸까?


"지금은 태풍 비상근무 중입니다. 담당자도 없고, 다음에 근무 시간 중에 들러 주세요."

라고 말을 할 때

"네, 알겠어요."

라고 대답하면 최우수 민원인이다.

이렇게 대답하고 바로 돌아서는 민원인을 우리는 '대화가 통하는 민원인이다.'라고 정의한다.

"아니, 어차피 사무실에 있으니까 온 김에 일 좀 봐주면 될 일이지. 나중에 또 언제 다시 들르라고 그래? 일도 안 할 거면서 왜 거기 앉아 있어?"

라면서 불만을 표시하는 민원인도 다수였다.

"아니, 나중에 근무 시간에 다시 와서 일 보면 되지 왜 담당자도 아닌 사람한테 일을 봐주라고 그래? 근무시간도 아니고 누가 들어오라고 사정한 사람도 없었는데 왜 들어와서 비상근무를 방해하는 거야? 그리고 자리 지키면서 비상근무하는 이게 지금 일하는 거야!"

라고 대꾸하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자꾸 국민 신문고에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다.

나는 신비주의 공무원을 추구해 왔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지 않은가.

말하고 싶은 대로 다 말하고 개명을 해버려?

저런 민원인을 하루 이틀 겪어 본 게 아니었으므로 적당한 말로 귀가하게 한다.

그리고 사무실 문을 잠근다.

우리는 철저히 민원인들로부터 격리되고 싶었다.

고립되고 싶었다.

차라리 섬이 되어라.

그 밤은 어둠 속에서 바람이 몹시도 거세었었다.

심약한 공무원 처지만큼이나 창밖의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은 마구 휘청였으며 바람 소리도 위협적이었다.

그 밤이 고비라고 했다.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둘만 덩그러니 있을 아이들 생각이 종종 났지만 당시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태풍도 무사히 지나가고, 아이들도 안전히 집에서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제 내일 아침에는 또 태풍 피해 조사가 시작되겠구나.'

닥치지 않은 뻔한 내일을 생각한다.

마음 졸이며 그저 견디고 있을 주민들에 비하면 공무원들이 하는 비상근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으시는 부모님도 생각났다.


내가 철이 들고 기억이 선명해진 10대 이후의 온갖 가뭄과 태풍 같은 자연재해들에 대해 생각한다.

순응하고 받아들이고 견디고 지나오는 일, 그것이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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