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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10. 2022

불 지르는 엄마, 불 끄는 공무원 딸

라이터, 그 쓸모 있음에 대하여


22. 11. 6.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겄네!

< 사진 임자 = 글임자, 시 임자 = 김영랑 >


"엄마, 그러다가 징역가. 불 좀 그만 질러. 잘못하면 산불 날 수 도 있어!"

"걱정 마라. 내가 옆에서 다 보고 있다."

"누가 불 내려고 일부러 그러는 사람 있나? 잘못하다 불 낼 수도 있으니까 그러지."

"걱정을 말라니까? 이것 갖고는 불도 안나."

"아이고, 엄마는 불 내고, 딸은 불 끄러 다니고 볼만 하구만? 나중에 엄마가 불이라도 내면 우세스러워서 어떡하냐고?! 그러면 나 공무원도 못해!"


저 대책도 없고 근거도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가.

엄마의 무사안일주의, 그것은 아직 시보도 못 뗀 9급 공무원, 내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복지부동, 무사안일주의 등 과거의 공무원에 대한 해묵은 편견과 오해를 애초에 불살라 버리기 위해, 갓 지방직 공무원이 된 딸을 위해 엄마는 모든 것을 떠안았다.

태평하고도 안일하게 폐비닐이거나, 말라비틀어진 들깻단이거나를 밭 한 귀퉁이에서 종종 태우곤 하셨다.

그 모습은 마치 철저히도 완전 범죄를 저지르는 이의 그것과도 흡사했다.

외진 산 아래 인적이 드문 곳이라야 했고, 개기월식이 있는 밤처럼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속에서라야 했다.

엄마의 밤 외출이 잦아지던 시기가 있었다.

가끔은 대범하게 '개와 늑대의 시간'을 노리기도 했었다.


며칠 전 친정집에 갔더니 오후 2시에 익숙한 방송이 들렸다.

'저거 내가 옛날 산업계에 있을 때 용달차(사무실 관용차) 타고 마을 구석구석 돌면서 산길 다니면서 틀어주던 안내 방송인데?'

'매년 11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는 산불 조심 기간입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화기 물질 가지고 산에 들어가지 마라, 논두렁 밭두렁 마음대로 아무 데서나 태우지 마라, 걸리면 돈 나간다 징역 간다 등등.

지금은 가을철 산불 조심 기간이다.

물론 봄철에도 산불조심 기간이 또 있다.


어이없으면서도 황당한 건 그 안내 방송을 틀면서 순찰을 돌다 보면, 정말로 동네에서 여기저기 쓰레기 소각도 하고 짚단이나 콩 수확하고 남은 것들을 태우는 연로하신 어르신들을 만나서 그러지 마시라고 해도 반응들이 시큰둥하고 경각심을 안 가지더라는 것이다.

그 아름답지 못한 몹쓸 현장이 발각될 경우, 목에 건 공무원증 휘날리며 즉시 차에 싣고 다니던 물로 불을 끄기도 하고 못하게 말리는데도 우리 앞에서만 끄는 시늉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

올봄에도 큰 산불로 굉장한 피해를 본 것을 뉴스로 듣고 정말 안타까웠다.

일부로  산불을 내는 사람도 있고(놀랍게도 있다.) 실수로 내는 사람도 있다.

그 시작이야 어쨌든 우리가 잃는 것은 너무 크단 말이다.

아직도 일부의 시골 사람들은 옛날 하던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내키는 대로 크고 작은 불을 지른다.


산불 담당자로 근무하던 때부터 귀에 불이 나게 들어온 말,

"논두렁 밭두렁 태운다고 해서 병충해 예방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라고 그렇게 얘길 해도 안 통한다.

'네까짓 게 알면 뭘 아냐? 우리가 그동안 해 봐서 다 안다. 한두 번 해 본 일인 줄 아냐?'

하는 태연한 얼굴로 보란 듯이 불을 지른다.

그럴 때면 그  앞에서 나는 무기력해지고 마는 것이다.

과학적인 근거 자료가 농촌 사람의 수 십 년 된 잘못된 믿음을 이기지는 못한다.

관성의 법칙은 쓸데없이 농촌사회에 만연해서 머리칼이 희끗한 '옛날 사람들'이 '옛날에 하던 대로' 논, 밭에 불을 놓게 만든다.


우리 엄마도 나 어렸을 때(30년도 더 지난 옛날 일) '별 뜻 없이 쓰레기 태우다가 하마터면 큰 불을 낼 뻔했다', 는 놀라운 고백을 들었다.

내가 공무원이 되고 나서부터는 모든 면에서 부모님도 더 조심하셨다.

"엄마가 불 지르면, 딸이 불 끄러 다니게 생겼네. 우세스러워라. 남들이 뭐라고 할까. 엄마가 불 내면 난 공무원 못해. 딸이 산불 담당자인데 엄마가 아무 데나 막 불 지르고 다니면 되겠어?"

마의 과거를 알게 된 이상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핀잔과 협박 사이를 공평하게 번갈아 가며 으름장을 놓았고 '절대 함부로 성냥이나 라이터로 불 지르지 말라'라고 단단히 일렀다.

어떻게 합격한 곳인데 거기가?

엄마의 부주의로 허망하게 내 직업을 불살라 한 줌의 재로 날려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게다가 엄마는 수 십 년 전에 불미스러운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당사자였으므로 잠재적 고객(?)이 될 터였다.

나는 바깥보다 내부의 불씨를 꺼뜨리는 일에 더 힘을 쏟아야 했다.


그래도 겨우겨우 서른에 공무원이 되고 임용된 지 4개월 만에 내부 인사이동으로 산업계로 간 딸이 맡은 주요 업무가 산림, 그중에서도 산불 예방업무라는 점을 적극 참고하여 엄마가 라이터를 켜는 횟수는 확실히 줄었다.(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


올여름이었던가, 언젠가 한 번은 엄마가 내게 주문을 했다.

"집에 올 때 라이터 5개만 사다 주라."

"뭐? 5개씩이나 어디에 쓰게?"

"다 쓸 데가 있어. 사 와."

나는 색깔도 골고루 섞어 5개의 라이터를 바쳤다.

'또 엄마가 불 지르기 시작한 건가? 어차피 딸이 공무원도 그만뒀겠다, 무사안일주의가 다시 도졌나?'

한참 지난 후에 갑자기 거기에 생각이 미치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건 어디까지나 '비상용'이라고만 하셨다.

도대체 비상사태가 생길 일이 뭐가 있냐고, 5개씩이나 되는 그 라이터를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한꺼번에 사재기를 한 것이냐고 따져 물었지만 엄마는 침묵을 지켰다.

내 잔소리는 듣기 싫다 하셨다.

엄마는 잔소리가 싫다고 하셨어.

한 때 할머니 잔소리도 지긋지긋했었다며...

전 세계가 뒤숭숭하고 뭔가 일이 터질 것만 같은 불안한 때에 남들은 비상식량을 마련하고 생필품부터 구해놓고 본다는데 다짜고짜 라이터를 깔별로 비축해 두는 엄마라니.


이제 나는 무슨 자격으로 엄마의 방화 (?) 본능을 제지해야 하는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엄마의 인감도장이 발견되고, 계모임에서 받은 금반지가 더러 발견되기도 했으나 라이터의 행방은 묘연하다.

독수리 5형제는 지구를 지키고 라이터 5형제는 엄마를 지키는 것인가.

엄마의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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