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un 06. 2023

현충일에 면사무소 공무원은 밭으로 출근한다.

주민이 원하시면

2023. 6. 5.

< 사진 임자 = 글임자 >


그러니까.

나는 태극기를 달기도 전에 아침 일찍 밭으로 출근했던 현충일의 기억이 더 친근하다.

때는 바야흐로 본격적인 농번기였고 농촌의 인력난은 예나 지금이나 심각한 수준이었으며 고령화로 연세 많은 어르신들만 남다시피 한 그곳에서 '빨간 날'은 단지 집에서 노는 공휴일이 아니었다.


물론 나는 공무원이 그런 일에 동원된다는 사실도 2010년 6월에서야 처음 알았다.

그때는 시보도 뗀 지 오래였지만 여전히 면사무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내게 새롭기만 했다.

공무원이 이런 것도 하냐고 묻는 내게 쓰러진 벼를 일으켜 세우러 가 본 적도 없으면서 그 정도면 양호한 거라고, 칼바람 부는 바닷가로 기름때를 닦으러 가보지 않은 자는 입도 뻥끗할 자격이 없다는 듯 선배들은 익숙하게 농촌 봉사활동에 임했었다. 공무원이 된 이상 현충일은 또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왜 굳이 현충일만 골라서 농촌 일손 돕기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높으신 윗분께서 하시는 일인데 그 깊은 뜻을  한낱 9급 공무원이 헤아릴 길이 있나.

따지고 보면 항상 현충일을 골라서 도왔던 것도 아니다.

평일 오후일 때도 있었고, 주말일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난히 현충일에 일찍 출근을 했던 기억이 선명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지 기분 탓이겠지.

마치 주중에 하루쯤 쉴 수 있는 그날에 어디에도 못 가게 잡아두려고 하는 음모가 있는 게 아닌가도 생각했었다.

나는 일반행정직이라 종종 공휴일이나 주말에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교육행정직인 남편 같은 경우는 직렬이 달라서인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물론 그런 남편이 '잠깐' 부러울 때도 있긴 했다.) 그럴 때 보면 부부가 차라리 같은 직렬에서 일한다거나 같은 지자체 소속이었으면 차라리 나을 것도 같았다.

상대적으로 일행은 평일 근무 외에도 직원들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 말이다.


평소보다는 더 일찍 출근을 해야 했으므로(7시까지였는지 8시까지였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최소한 9시까지는 아니었다.) 그런 날 아침에는 더 서두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남편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나는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게, 그것도 사무실이 아니라 밭에 가서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우리 부모님도 농사를 짓고 계시는데 옆에서 손을 넣어 주면 얼마나 고맙고 좋을까.

마음 같아서는 부모님 댁으로 가고 싶어도, 농번기이고 바쁜 건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인 시기였으므로 그럴 땐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역시나 사익보다는 공익을 더 우선시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직원들과의 친목이라는 것도 공식적인 회식자리에서보다 그런 농촌 일손 돕기를 통해 더 가까워지는 것도 같았다. 평소엔 말 한마디 할 일 없는 직원과도 일하는 요령을 배우고 알려 주면서 스스럼없이 대화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편안한 옷차림에 마음 맞는 사람과 2인 1조로 자리를 잡고 다른 직원들보다 더 빨리 일을 끝내보자며 유치하게 쓸데없는 경쟁을 다 하기도 했다.


6월 초면 이제 여름의 길목에 들어서는 시기였으므로 햇볕도 제법 따가웠고 평소 안 하던 일을 하려면 은근히 힘이 들기도 한다. 농사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니 다들 서툴고 힘이 들어도(물론 나는 집에서 많이 해 본 전과가 있어서 어렵지 않게 그 일을 해낼 수 있었고 이는 뜻밖의 재능기부로 이어지기도 했다.) 일하는 중간에 아이스크림이나 수박 같은 새참을 먹으며 한숨 돌리고 수다를 떠는 일도 즐겁다. 종종 공무원 노조에서 격려차 방문하시기도 했다.(순식간에 방문만 하고 가셨지 손을 넣어주지는 않으셨다 물론.) 어느 해엔가 그들이 나눠줬던 손수건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치솟기만 하는 농번기의 고임금에 수확을 제때 할 수 없을까 봐 심란한 농가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으니 그보다 더 뿌듯한 일이 있겠는가.

수 십 명이 동원되는 일이었으므로 일손을 돕는 일은 하루 종일 걸리지도 않는다.

길어야 점심때까지이다.

일을 다 마치면 코밑이 새까매지고 화장은 얼룩지고 흐트러져도 서로 새까맣다고 깔깔대며 웃는 얼굴은 그렇게 환할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 신성한 노동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가치 있는 현충일은 비로소 그렇게 완성됐다.




이전 12화 불 지르는 엄마, 불 끄는 공무원 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