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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ug 26. 2022

지방직 9급 공무원, 하루 연가보상비는 27,330원

2009년, 신규자는 연가를 쓰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2009년  급여 통장

<사진 임자 = 글임자 >


27,330원이라니, 어쩌다 보니 못 쓴 연가였는데.


어젯밤에 딸이 수학 문제를 푸는데 통장 관련 문제가 나왔다.

어쩌다 한 번씩 보긴 하지만, 평소에 통장을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딸이라서 그 문제를 보고는 '이게 뭔 소린고?' 했다.


"엄마한테 통장 하나만 달라고 해 봐."

남편이 문제 풀이를 해주면서 한 마디 했다.

급히 통장을 모아둔 서랍을 뒤졌다.

통장이 수두룩하다.

남편 명의로만 거의 10개 정도나 있었다.


"근데 만들기만 하고 돈은 없네? 뭐야? 착한 사람한테만 보이는 거야? 왜 한 줄도 입금된 게 없어?"

사용하지도 않을 통장을 왜 그리 만들어 놨는지 의문이다.

소문난 잔치 먹을 거 없고, 개수만 남발해 개설된 통장엔 잔액이 없다.

언젠가 들뜬 기대감으로 모조리 챙겨서 ATM에 넣어 봤지만 통장들은 하나같이 여백의 미를 한 껏 뽐낼 뿐이었다.

우체국 통장이 서 너 개나 된다.

남편이 과거 국가직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농협 통장도 여러 개다.

현재 교행 월급 통장으로 쓰는 것과 공시생 시절에 쓰던 것, 기타 무슨 의도로 만들었는지 모를 것들도 많다.


할 수 없이 내 통장을 소환했다.

굳이 간직해 온 것은 아니었지만 2009년 지방직 9급 신규자 때 처음 만든 농협 통장이 여태 남아있다.

선명하게 '연가보상비'라고 찍힌 입금 내역이 눈에 띈다.

2009년 12월 31일 연가보상비로 27,330원 찍혔다.

2009년 9월 1일 자로 발령받고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서무가 하는 말이 내 연가는 1일밖에 안 된다고 했었다. 

남편이 행정실에서 급여 담당 업무를 시작하고 뭔가 알아갈 무렵에야 나의 연가 일수에 의문을 품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진짜 제대로 된 건가 싶기도 했지만 당시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자라 나는 그런가 보다 했다. 서무가 어련히 알아서 잘했을까 싶어 크게 의미 두지 않았다.

그의 말이 맞는지 남편 말이 맞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 해에 달랑 하루 있는 연가를 안 써서 보상해 주는 돈이 27,330원이었다. 

그러니까 9급 공무원 1호봉의 연가 보상비 하루치다. 

지금 9급의 하루 연가보상비가 얼마나 되려나?

예전보다야 오르긴 했겠지만 많이 오르진 않았으리라 짐작해 본다.

지금 봐도 연가보상비가 참 겸손하다. 

처음 9급으로 시작하면 월급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연금이 있으니까 그거 하나 보고 정년을 보장해 주니 그래서 많이들 공무원 하고 싶어 한다(고 내가 공무원을 시작했을 때는 많이들 그랬었다. 확실히 받을 수만 있다면 상당한 장점이다)고 하지만...... 요즘은 또 그렇지도 않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 공무원 연금이란 것도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몰라. 

지금도 허덕인다는데, 내가 처음 발령받았을 때(2009년)는 17만 원 정도의 금액이 기여금으로 매달 나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30 넘고 40 가까이 되는 것 같은데 어쨌거나  매달 기여금 명목으로 들어가는 꽤 돈이 많.(고 느꼈다.) 문제는 성실히 매달 납부하고도 나중에 퇴직 후 제대로 못 받을까 봐 걱정도 된다는 거다. 나야 이미 빨리 퇴직해 버려서 2041년에 받을 연금이 57만 원으로 많진 않지만 보통 정년퇴직 때까지 일하는 공무원은 앞으로 더 많은 금액을 매달 내게 될 텐데 낸 만큼 적정하게 받을 수나 있을는지, 공무원 남편도 은근히 걱정이 많다.

공무원으로 퇴직하면 기초연금도 못 받는다는데,  공무원 연금 그게 유일한 희망일 터인데 남편은 기여금을 내기는 내면서도 불안하다고 한다.


우리 아빠를 보면 국민연금 받으시고 기초노령연금 받으시니까 시골에서 거의 자급자족하면서 큰 생활고 없이 사시는 것 같다. 저 두 가지를 더하면 사실 내 예상 연금 수령액보다 아빠의 수입이 더 많다. 

저렇게나 든든한 거였군. 

남편도 국민연금과 연계해서 나중에 더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다.

대학교 졸업하고 잠시 국민연금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적이 있었다.

미래에 국민연금이 고갈 위험이 있다며(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 언제나 그래 왔듯이) 사방에서 난리였다.

그래서 당시 국민연금은 등급 상향 조정에 들어갔다.

일일이 전화를 걸어 등급을 상향해서 매달 내는 국민연금 금액을 더 올려서 내라는 것이었다.

거기에 나를 비롯한 많은 젊은이들이 투입된 것이다.


그때 우리 아빠도 올릴 수 있는 최대 등급까지 올려서 많은 금액을 내셨다.

선견지명이 있으셨다고 해야 하나.

농사를 지으시기 때문에 따로 연금 저축 같은 건 하지 않으셨고 오로지 국민연금만 믿었다.

많이 낸 만큼 섭섭지 않게 현재 받고 계신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아빠도 잘한 일이라고 늘 말씀하신다.


연금이 필요하긴 한데, 받을 수 있는 공무원 연금액은 적은데, 눈치 없이 100세 넘게 오래 살아버릴까 봐, 지금 이 시점에 그것도 걱정이다.

13년 전 연가보상비를 보며 아직 닥칠 날이 멀기만 한 연금 수령액을 근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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