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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10. 2022

명절에 가족 얼굴보다 그분들의 얼굴이 먼저다.

'마을 청년회'에서 걸어둔 현수막이 더 반갑다.


22. 9. 9. 9월에 피는 장미처럼 뜻밖의 일들

< 사진 임자 = 글임자 >


추석이 다가오자 대로변 여기저기에 그분들이 등장하셨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길 바랍니다. - OO의원 OOO"


어디서 뭐 하고 계시다가 느닷없이 불쑥 나타나신 거람?

정말 명절 때마다 뜻밖의 일이다,라고 말하기에도 어중간하게 으레 그래 왔다.

굳이 이렇게 현수막을 걸지 않아도 각자 '잘~'하고 계시면 될 터인데 말이다.


불과 몇 달 전에 그 자리에 지방선거 후보자로 얼굴을 들이밀었고, 그중의 일부는 당선자 자격으로 위풍당당하게 한 번 더, 그리고 최근에는 마치 '나를 잊지 말아요.'라고 호소하듯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심지어 '(전) OO의원 OOO'까지 가세한다.

우리는 과거를 꽤나 중요시하는 민족인가?

누군가가 그랬다.

"다음 선거를 노리는 거야. 잊힐 만하면 한 번씩 저렇게 존재감을 드러내 줘야 해."


올봄, 집으로 온 선거 공보물을 보고는 한참을 생각했다.

어라? 어디서 본 얼굴인데?

닮았는데 도통 생각이 안 나네......

알았다!

그때 그 민원인들이다.

복지계에서, 민원실에서 근무할 때, 재무계에서 근무할 때, 총무계에서, 등등 여러 번 민원인으로 방문했던 분들이시다.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만큼 지역 민원인을 다양하게, 각양각색,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내가 공무원인지 그 민원인이 공무원인지, 내가 그 민원인 개인 비서인지, 그 민원인이 군수인지, 도지사인지, 어쩔 때 보면 대통령이라도 되는 양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까 공무원인 내가 철저히 '을'이 되고 민원인인 그들이 '갑 중의 갑'이라고 나도 모르게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직접 겪어본 민원인들 몇몇이 제법 올해 지방선거 후보자로 얼굴을 내민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각자가 내 건 공약들과 그 당시 내게는 단순히 '민원인'이었던 그들을 연결시켜 보지만, 어렵다.

아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것은 둘째치고 나에게, 다른 직원들에게 한 행동과 말이 있는데 여기저기서 소문도 그렇고(물론 소문은 소문이니까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니까 소문이려니 한다.) 과연 이 사람들이 이 지역 사회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온 힘을 쏟아서 일할 사람들인가......


고르고 고르고 이리저리 다 빼다 보면 너나 나나 뽑을 사람 없다지만.

"그래도 너보단 낫다."

이러면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내게 사람들은 핀잔을 주었지만,

적어도 사기는 안치고, 사생활이 지저분하지는 않고, 비리는 저지른 것이 없으며, 내 이익만을 위해 남들 짓밟고 모함하는 그런 야비한 짓은 하지 않은 그런 사람 어디 없을까, 선거 공보물을 뒤지며 찾아보았지만 가볍게는 교통사고와 관련된 사건부터 한 두 가지 '문제(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 있는 사람이 더 많았다.


공무원 신분이었을 때는 '정치적 중립의 의무' 때문에 어디서 말 한마디도 못했는데, 대숲도 찾아가지 못했는데, 내 생각을 내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그 사소한 자유, 이게 바로 그것인가 보다.

아닌 것 같다, 잘못된 것 같다 이런 말도 이젠 거리낌 없이 내뱉을 수 있는 이 신분.

나는 민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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