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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ug 16. 2022

공무원 장점, 휴가는 남이 가라고 할 때  갈 수도..

공무원 복지란 이런 것.

22. 8. 11. 단비 같은 여름휴가는 남이 결정한다.


<사진 임자 = 글임자 >


지난 금요일에 남편이 갑자기 하루 연가를 썼다.

수요일 저녁에 퇴근을 하고 와서는,

"자기야, 나 아무래도 금요일에 연가 하루 써야겠는데?"

"왜 갑자기?"

"사람들이 나 휴가 안 가냐고 그러더라고."

"지난주 금요일에도 하루 썼잖아."

"그러게 말이야."

"어디 갈 계획도 없고 딱히 할 일도 없는데 그냥 쓰긴 아깝다."

"나도 그래."


아니, 광복절이 월요일이야, 설마 모르는 건 아니지? 안 그래도 3일 연속 쉴 수 있어. 그런데 하루 더 추가한다고?


연가는 공깃밥이 아니야, 추가하는 거 아니라고!

무엇보다도 남편과 4일 내내 집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연속 3일 남편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는데(다름이 아니라 육아휴직을 하면서 하루 종일 내게 잔소리를 하다 보니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거기서 하루씩이나 더?

서로 상대방에게 갱년기라며 부부는 사사건건 부딪쳐왔다.


잠시 11년 전 남편이 국가직 의원면직하고 하루 종일 뒷방 신세로 지내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했다.

부부는 같은 공간에 하루 종일 있으면 불법인데.

결정적으로 우린 아무 계획이 없었다.

"근데 왜 갑자기 쓰는 거야? 딴 때는 쓰라고 쓰라고 해도 안 쓰더니?"

"직원들 연가 쓰는 거 기관장 평가에 들어가잖아."

"그건 나도 알아."

"은근히 연가 팍팍 쓰길 원하는 눈치더라고."

"안 간다고 뭐라고 해?"

"그런 건 아닌데, 대놓고는 말 안 해도 자꾸 휴가 언제 갈 거냐고 그래서 말이야."

"가고 싶을 때 휴가도 가는 거지 남이 가라 할 때 가는 게 그게 휴가야?"

"내 말이."

"완전 강제 감금이네."

"그러게."

"나중에 정말 연가 쓰고 필요한 일 보러 다닐 수도 있는 건데 얼마 있지도 않은 연가를 이런 식으로 쓴다고?"

"나도 그래서 별로 안 내키는데 어떡해, 자꾸  눈치 주는데?"

"그냥 해 본 말일 수도 있는데 괜히 혼자 그런 거 아냐?"

"아니야. 여러 번 말했어." 


"그럼 듣고 흘려. 설마 휴가 안 간다고 때려죽이기야 하겠어?" 

"그래도 그게 아니라니까."

"그럼 간다고 해. 대신 내가 가고 싶을 때, 그때 휴가는 가겠다 그럼 되잖아."

"어떻게 그렇게 말해?"

"어떻게 말하긴? 입으로 목소리 크게 내서 말하면 되지."

"옆에서 직원들도 나보고 언제 휴가 갈 거냐고 계속 그러더라니까. 다른 직원들은 다 갔다 왔거든."

"남이야 휴가를 가든 안 가든 상관할 일도 아니고, 엄연히 내 건데 왜 남 눈치를 보고 살아?"

"그래도 그게 아니라니까?"

"우린 더 시원해지면 그때 애들이랑 여행 좀 다니기로 했잖아. 연말이 아직 몇 달 더 남았는데 이런 식으로 매주 하루씩 써버리면 어떡해?"

"그러니까. 6개월 육아 휴직하고 나니까 연가일수도 10일인가 밖에 안되던데."


"나중에 어머님 병원 모시고 가고 그러려면 남겨둬야 할 텐데."

"안 그래도 그 생각했는데 너무 눈치를 주잖아."

"병원 가고 수술이라도 하게 되면 연가 아껴놔야 돼. 알잖아?"

"기관장 평가에 들어가니까 억지로라도 보내려는 것 같아."

"억지로 보내려고 해도 별일 없으면 안 갈 수도 있잖아."


그러나, 남편은 억지로라도 연가를 써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근데 다른 직원들 얘기 들어보니까 다들 눈치 줘서 연가 썼다더라. 그냥 집에만 있었대."

"그러니까 그런 비효율적인 휴가를 왜 쓰냐고. 너무 아깝잖아"

"어떡해 그럼?"

"억지로 쉬는 게 그게 어디 휴가야?"

"그렇긴 한데, 안 쓸 수가 없었어."

"그러는 사무관님은 휴가 다 쓰셨대?"

"아니, 나중에 해외여행 갈 때 쓸 거라던데?"

"거봐. 본인은 필요할 때 쓰려고 아껴놨잖아."

"그러게 말이야."

"사무관님이 먼저 자주 쓰면서 직원들한테 장려하면 더 좋을 텐데 말이야. 그리고 정작 필요할 때 써야 하는데. 별 일도 없이 평가 때문에 억지로 휴가 가라는 건 좀 아니다."

"내 말이 그 말이야."

"자기도 해외여행 간다고 해. 갈 수도 있잖아. 또 얘기하면 과테말라 갈 때 한꺼번에 쓸 거라고 말해."


내가 세상 물정 몰라 저렇게 말했겠는가.

억지로 연가를 쓰게 돼서 억울해하는 남편이 딱해서, 기분이나 풀어주자고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사무관님을 괜히......

직장 생활하면서 하고 싶은 다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수는 없다는 거, 불가능하다는 왜 모르겠는가.

그저 남편 하소연 앞에서 장단이나 맞춰주자고 실없는 소리 한 것뿐이다.


나도 공무원 생활을 할 때 저런 풍경을 많이 봤다.

최근으로 올수록 직원들에게  연가를 마음껏(?) 쓰라고(암묵적으로+대놓고) 권장(내지는 협박)을 했다.

여름휴가철이 다가오면 더욱 심하다.

더운데 자꾸 어디로 휴가를 가라는 건지 몰라.

그나마 사무실에 앉아있는 게 덜 더운 것 같은데 말이야.


기관장 평가에 '직원들이 연가를 얼마나 사용했는가'가 포함된다.

옛날엔 연가 하루 쓰는 것도 그렇게 눈치를 주더니만, 뭔가 거꾸로 되어 가는 것 같다.

비단 기관장 평가에 포함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무 당시에 자주 받은 메일이 있었다.

올해는 예산 부족으로 연가보상비를 지급하기 어려우니 직원들은 연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과연 누구의 음모일까?

늦가을이 지나 겨울로 접어들수록, 연말이 되기 전에 '어서들 연가 다 쓰세요~' 이렇게 메일을 띄워준다.

순진한 사람들은 처음에 정말인 줄 알고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데 연가를 꾸역꾸역 써댔다.

나도 순진했던 시절이 있었으므로 당했다.


세상 말 잘 듣는 직업군이 공무원 집단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당장 지자체가 파산선고를 받을 것처럼 하도 호들갑을 떨어서 정말 그런 줄로만 알던 때가 있긴 했다..

어지간해서는 지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엄살이 좀 심할 뿐이다.

예산 부족으로 연가보상비 지급이 어렵다더니, 좀 지나서는 '연가보상비를 반만 지급하겠다.'라고 또 선포했다.


그 메일 한 통에 '연가보상비도 못 받을 바엔 차라리 연가라도 쓰자' 하고 흥청망청 쓴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런 법이 어디 있냐며 꿋꿋이 본인의 연가일수를 허물어뜨리지 않고 고스란히 연말까지 간직한 직원도 있었다.

그 당시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로는 연가를 다 보장해 주고 다 쓰지 못하면 연가보상비로 보상해 주겠다고 해놓고, 앞뒤가 안 맞잖아요.

처음에 저렇게 겁을 줘도, 결국엔 연말에 남은 연가 일수만큼 착실히 연가보상비를 입금해 준다.

줄 거면서 왜 그런 메일을 그리도 자주 띄우는지 모르겠다.

누군 안 쉬고 싶어서 안 쉬나?

말로는 쉬라고 쉬라고 해도 어찌나 눈치를 주는지, 원할 때 쓸 수 없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연말에 몰아서 쓰라고 강요하다시피 하면 딱히 할 일도 없는데 그냥 쉬는 경우도 있다, 꼭 지금의 남편처럼.


어쨌거나 아무런 계획도 없었지만 남편은 금요일 하루 연가를 쓰고 조신하게 집안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뭔가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으면 해서 친정집에 가서 쪽파를 5KG 정도 뽑아왔다.


남편은 파김치를 좋아한다.

다듬어야 한다.

마침 휴가다.


4 시간 이상 둘이서 매운 파 냄새 맡아가며 전부 다듬어 엄마에게 퀵으로 전달했다.

엄마는 감격하셨다.

"O 서방이 고생했네."

엄마의 미소가 그렇게 환할 수 없었다.


파김치와 맞바꾼 황금 휴가였다.

남편의 고관절은 지금 무사하지 않다는 소문이 돈다.

유포자가 남편이다.

그러나, 소문이란 으레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으므로 흘려듣는다.


난데없이 챙기고 싶은, 

공무원의 장점 하나, 

윗분께서 휴가를 적극적으로 챙겨 주십니다그려.

내가 원하는 그 날짜랑 안 맞아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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