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주고 싶어, 정말

이 세상에 좋은 것 모두

by 글임자
w4MweJZHOedFqNYT3fqFKU4P3dI 2023. 10. 9.

< 사진 임자 = 글임자 >


"합격아, 너는 태어나 보니까 어때? 태어나서 좋아?"

"음, 좋아. 이렇게 엄마를 만났잖아."

"그러게.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가 너를 낳은 건 정말 잘한 일이야. 아직도 그때가 생생하게 기억나. 너 태어나고 엄마 출산휴가 중에 너랑 둘이만 집에 있었거든. 그때 아빠는 섬에 발령받아서 주말에만 집에 왔어. 그래서 하루 종일 너랑 같이 있었는데 네가 너무 예쁜 거야. 그래서 아빠 일하고 있는데 우리 딸이 너무너무 예쁘다고 문자를 계속 보냈다니까."

"엄마도 참. 하긴, 내가 이쁘긴 이쁘지."

"그러엄! 누구 딸인데."

"그때 라디오에서 동요가 나오더라."

"그게 무슨 노래였는데?"

"이 세상에 좋은 건 모두 주고 싶어."

"아, 나도 그 노래 아는데."

"엄마가 그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야. 그래서 옆에 너를 눕히고 혼자 울었다니까. 웃기지?"

"아유, 하여튼 엄마는."


'이 세상에 좋은 건 모두 주고 싶어, 나에게 커다란 행복을 준 너에게, 때론 마음 아프고 때론 눈물도 흘렸지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그 노래 가사에는 슬픈 노랫말이 하나도 없었는데 왜 난 그때 주책맞게 눈물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갓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딸을 옆에 두고 쌔근쌔근 잠든 모습을 보며 그 노래가 나오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던 것이다.

나는 처음 알았다.

자식이 예쁘면 느닷없이 눈물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을.


가끔 생각한다. 딸과 아들이 내가 그들을 자식으로 낳은 것을 좋아할까?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고 느낄까?

만족할까, 지금의 현실에?

솔직히 아이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도 없이 갑자기 이 세상에 나온 아이들 아닌가.

"혹시 너희들 세상에 태어나고 싶은 생각 있어?"

라고 미리 물어볼 수만 있다면 나는 하루에도 수 십 번이라도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그런 생뚱맞은 마음은 내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아이들의 키가 더 자라고 살이 통통하게 오를수록 더했다.

부모의 역할에 대해 늘 고민하고 생각하고 다짐을 한다.

내가 낳기는 낳았는데 과연 아이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걸 좋다고 생각하기는 할까? 어느 날 갑자기 너무 힘든 일이 닥치면 (가끔은) 이런 엉망진창인 세상에 부모는 왜 나를 낳은 걸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아, 나의 기쁨, 나의 번뇌, 끊을 수 없는...

남편과는 합의가 이뤄진 상태에서 두 아이를 낳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이들의 의견은 들을 수가 없었다.

결코 미리 들을 수도, 물어볼 수도 없다 물론.


부모라는 이 자리, 엄마라는 이 자리, 그게 이렇게나 엄청난 것인 줄 감히 짐작조차 못하고 나는 부모가 되었다.

"엄마, 나는 엄마 딸이어서 좋아. 다음에 태어날 때도 난 엄마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어. 아니면 다음번엔 내가 엄마하고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도 좋겠다."

딸은 종종 이런 말을 내게 한다.

"엄마도 합격이가 엄마 딸이라서 정말 자랑스럽고 좋아. 정말 다음엔 엄마가 네 딸로 태어나는 것도 좋겠다."

나도 이렇게 돌려준다.

12살, 아직은 어리다고 (나만) 착각하는 나이, 커 갈수록 엄마에게 무조건적이지만은 않을 때가 오리란 예감에 가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막연해지기도 한다.


딸과 그 노래를 같이 들으면서 나는 은근슬쩍 말한다.

"합격아, 이 노래는 정말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부모님 마음을 잘 표현했어. 부모는 정말 자식들에게 좋은 건 다 주고 싶은 마음이거든. 그것도 가장 좋은 걸로만 말이야. 엄마도 그래. 너희한테 좋은 것만 주고 싶어."

"엄마는 우리한테 그러고 있잖아. 엄마 정도면 됐지."

"그렇게 생각해? 사실 전부 다 그렇지는 않지. 현실적으로 엄마가 모든 걸 다 해 줄 수도 없는 거고."

"에이, 이 정도면 됐지 뭐."

"그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이런 말을 하면서 나는 딸의 빨간 이마를 떠올렸다.

태어났을 때 유난히 이마 한가운데가 빨개서 무슨 병이라도 있는 건 아닌가 별의별 생각을 다 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옅어질 줄 모르는 그 빨간 자국이 자꾸만 눈에 밟혀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잘못한 게 어떤 것들이 있었는가를 곱씹기도 했다. 자식이란 이렇게 지난날의 잘못까지 느닷없이 들추며 전전긍긍하게도 만든다.

난데없는 딸꾹질 한 번에도 가슴이 철렁하고, 문틈에 껴 시퍼렇게 멍든 연하디 연한 그 손가락을 감싸 쥐고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가슴에 돌덩이를 달고 마음 졸이며 병원으로 달려갔던 일, 처음 먹는 이유식을 그 분홍빛 혀로 야무지게 받아먹던 일, 그런 시절을 다 지나 여기까지 왔구나.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가슴을 쓸어내리고 살아야 할까.

이렇게 힘들다는 걸, 엄마가 되는 일이 이렇게나 만만치 않다는 걸 왜 아무도 내게 일러주지 않았을까.

사실 엄마도 알고 보면 허점 투성이라고, 실수 투성이라고,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고 그런 말을 한다면 넌 어떻게 반응할까?

그저 건강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종종 하면서, 나도 제대로 잘 살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너는 똑바로 살아야 한다고 다른 건 둘째치고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그런 엄마, 이런 엄마라도 너는 괜찮은 거니?


그래도 엄마 마음은 여전히 그렇단다.

이 세상에 좋은 거란 좋은 것들은 죄다 끌어다 네 앞에 놓아주고만 싶다.

물론 엄마 욕심이란 걸 잘 알지.

하지만 이 세상엔 좋은 것들이 정말 많거든.

내 딸이 누려봤으면, 가져봤으면 하는 그런 좋은 것들 말이야.

그리고 넌 그것들을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는 귀한 사람이거든.

사랑하는 내 딸,

나의 기쁨, 나의 기쁨, 또 나의 기쁨.

눈물 나도록 기쁨인 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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