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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06. 2024

내 식단이 유출된 건가?

참고와 표절 사이에서

 

2024. 3. 5.

< 사진 임자 = 글임자 >


"뭐야? 오늘 저녁도 굴밥이야?"

"뭐가 오늘 저녁도야?

"낮에도 그거 먹었는데."

"그래서 안 먹는다고?"

"아니, 그게 아니고."


물론 그 양반은 굴밥을 썩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

그걸 좋아하는 사람은 단연 나다.

음, 좋아한다기보다 그나마 내가 잘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내 입맛에 맞춘 저녁 메뉴 선정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양반이 낮에도 잡수고 온 그 메뉴가 우리 집 저녁 메뉴였던 거다.

하필이면, 내가 오래간만에 입맛이란 게 생겨 모처럼 의욕을 가지고 차린 저녁상이, 하필이면...


할 수만 있다면 그 구내식당에 가서 '오늘의 메뉴'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어쩜 그렇게 같은 날에 메뉴가 겹칠 수가 있는 거지?

그 양반이 겹친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지만,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몇 번 듣고 나니 의구심이 생겼다. 정말 그렇게 자주 메뉴가 겹칠 수가 있는 걸까? 한두 번도 아니고 하루 이틀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당장 그날 점심에 먹었던 똑같은 음식이 저녁에 나온다는 게?

"오늘은 점심 뭐 먹었어?"

그냥 인사치레로 물어보곤 했다.

"오늘? 뭐였더라? 생각 안나네. 뭐 먹었지?"

"먹은 지 반나절 밖에 안 지났는데 그게 생각 안 나?"

"그러게. 진짜 생각 안 난다."

"먹긴 먹은 거지?"

"응."

"너무 빨리 마셔서 생각이 안 나나?"

"나도 몰라."

언젠가부터 그 양반이 밖에서 점심으로 무슨 음식을 잡수고 다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그건 배우자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남들은 점심에 뭘 먹고사나, 그런 수준의 궁금증일 뿐이었다. 두 달 내내 방학이었으므로 아이들도 학교에 안 가니까 학교 급식을 벤치마킹할 일은 물 건너갔고 유일하게 매일 바깥활동을 하시는 멤버가 그 양반이었으므로, 들어보고 괜찮으면 나도 메뉴를 선정할 때 참고하리라는 사심에서 비로소 된 것이었다.(고 솔직히 밝히는 바이다, 그리고 그건 참고를 넘어 표절에 가까운 것이 된 셈이다 결국에는)

그런데 그 양반은 그날 먹은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도통 기억을 못 하는 것이었다.

평소 나보고 기억력이 안 좋다느니, 건망증이 너무 심하다느니, 그러다가 나중에 어쩌고 저쩌고 아무 말대잔치도 곧잘 하시더니 정작 본인이 몇 시간 전에 흡수한 먹이를 기억도 못하다니. 하긴 다른 일에서도 마찬가지였던 적이 더러 있었으므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고작 몇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특별히 맛있었다거나 너무 맛없었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인상적인 음식이 아니라서 기억도 안나는 것일까?

"우리 집에서 그나마 가장 골고루 먹고사는 유일한 멤버니까 점심에 뭐가 나오는지 신경 좀 써서 알아 와. 알았지? 우린 매일 집에서 그냥저냥 먹으니까 거기 참고 좀 해야겠어."

"진짜 별 거 없어. 뭐 먹었는지 생각도 안 나."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고?

나한테 고급 정보를 흘려주고 싶지 않은 게 아니고?

혼자만 맛있는 거 먹고 싶은 거 아니고?

나도 안다. 매일 거창하게 특별식을 먹는 것도 아니고 우리 세 멤버보다 특별히 유난스러운 메뉴를 점심으로 먹고 다니는 것도 아니란 것을.

설마 그 양반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희한하게도 본인의 점심 메뉴와 겹친다고 말한 날의 우리 집 저녁 메뉴는 대체로 그 양반이 그다지 반기지 않는 메뉴였다.

조기 매운탕, 병어조림, 굴밥, 김치찌개, 미역국, 등등.

그 양반은 생선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닌 것  같다. 특히 아침에 생선 반찬은 철천지 원수 보듯 한다. 다른 수산물도 썩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다른 멤버들도 그렇지만 고기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반찬 투정은 전혀 안 한다면서 백 년 만에 한번 정도 두 끼 연속 같은 메뉴가 밥상에 오르면

"또 이거야?"

이렇게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양반, 이 양반도 알고 보니 은근히 까다로운 식성의 남자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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