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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07. 2022

곶감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가?

고도를 기다리는 일보다 호랑이를 기다리는 일이 먼저다.

22. 11. 3. 호랑이를 기다리며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니 이게 뭐야? 이거 그때 자기가 만든 그거야? 정말 맛있겠다."

나는 먹어보라고 말 한마디 권하지 않았건만 이 곶감의 주인인 내가 허락의 말을 하기도 전에 곶감 하나를 집어 드는 이가 있었다.

게다가

"이거 진짜 맛있다. 어쩜 이렇게 맛있게 잘 만들었어? 진짜 맛있다."

라며 손은 더 바빠지고 있었다.

밖에 호랑이가 대기하고 있다가 물어가지는 않나~ 하고 기대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호랑이는 우리 집 벨을 누르지 않았다.

굳이 앞발을 내밀어 보란 요구도 생략하고 나는 현관문을 열어 줄 용의가 있었다.

공동현관문 앞까지 마중이라도 나가야 하나?

다음엔 미리 비번이라도 넌지시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나의 예언은 적중했다.

내가 2주 전 주말 내내 힘들게 대봉을 따고 감을 깎고 조각을 내고 말리고 하는 걸 보고

"힘들게 그런 거 뭐하러 해?"

이런 말로 핀잔이나 주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저번엔 나보고 뭐라고 그러더니?"

"자기 힘드니까 그랬지."

고된 노동에 몸이 힘든 게 더 힘든 것일까, 입으로 할 말 안 할 말 다 하면서 일단 내뱉고 보는 동거인과 같이 사는 게 더 힘든 것일까.

정답은 내 마음속에 있다.

가끔은 저 쭈글쭈글 한 곶감보다도 더 나를 말린다.


가을 가뭄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젠 추수도 다 끝나고 했으니 비가 내려도 좋겠는데 곶감 잘 만드라는 계시인지 날씨가 2주 연속 좋았다.

덕분에 올해 수제 곶감은 대성공이었다.

곰팡이 하나 피지 않고 깨끗하게 겉(은) 쫄(깃) 속(은) 달(콤)이었다.

그깟 곶감 만드는 게 뭐 대수라고, 농촌에는 비가 필요한 법인데 요즘 너무 가물어서 걱정이다.

밭마다 스프링클러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100 개 정도의 곶감을 만들어 친정, 둘째 오빠네, 우리 이렇게 나누었다.

가장 공을 들인 나의 노동력을 감안하여 아빠는 내게 가장 많은 양을 배분해 주셨다.

둘째 오빠는 그걸 또 사장 어른들께 나눠드렸단다.

낳고, 낳고, 낳고 하듯이 친정 곶감은 딸에게 가고 아들에게 가고 사돈집에 가고 마태복음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어제 집에 들른 오빠는

"곶감이 진짜 맛있다고 장모님이 그러시대. 잘 만들어졌다고."

나 들으란 얘긴지 엄마 옆에 와서 말했다.

몇 판 더 만들란 말인가?


"맛있긴 한데 씨가 있으니까 성가시네."

그러면서도 앉은자리에서 서 너 개를 흡입하는 40세의 남성이 우리 집에 산다.

곶감 식탐의 끝은 (반갑게도 남의 편의) 변비일지도 모른다.

까치 구경은 요새 통 못했는데 반가운 소식이 조만간 들려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오늘도 나는 살아지는 것이다.

나의 기쁨,

나의 고통,

나의 주책바가지.

손은 뒀다 어디에 쓰시려고 그리도 아끼시나. 원래 곶감 속에 들어 있는 씨를 빼내라고 인간에게 두 손이 있는 것이거늘.

내가 씨까지 발라서 곶감을 만들 여유는 없느니라.

'얽거든 검지나 말지.'

찰나에 나는 그 속담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참으로 적절하고도 정확한 속담이 아닐 수 없다고 스스로도 감탄을 하며 미소 지었다.

어쩜 그렇게도 딱 맞는 표현을 생각해 냈는지 내가 대견한 나머지 머리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우리네 조상들의 예리함에 전율까지 느끼면서.


2022년, 거의 10여 년 만에 성황리에 곶감을 만들어 보시하고 반응이 뜨거워 아빠는 얼마 전 또 대봉을 수확하셨다.

아, 나는 덫에 걸리고 만 것이다.

깎아서 2주 가까이 햇볕과 바람에 말리는 과정에 비해 날름 집어 먹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동참하게 해야만 했다.

친정에서 가볍게 80개만 챙겨 왔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잘 알고 있지만, 그러면 최소 징역 6개월, 벌금 100만 원에 처해지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오랜만에 '감히'  대화라는 것을 시도해 보았다.


"저번에 곶감 맛있었지?"

"응. 진짜 맛있었어. 이젠 더 없나?"

"없어."

"벌써 다 먹었어?"

"누가 다 먹었는데?"

"자기 덕분에 잘 먹었다."

"그래서 내가 대봉 갖고 왔어. 좀 깎아야겠는데 말이야."

"뭐 하러 깎아?"

"곶감 또 만들어야지!"

"힘들게 뭐하러 만들어?"

"가져오니까 제일 먼저, 제일 잘 먹은 사람이 누군데?"

"에이~ 귀찮게. 그냥 놔두고 홍시로 먹자."

과연 곶감은 무섭도다.

남편이 벌벌 떤다.

가엾어라, 얼마나 무서웠으면.

곶감 공포증에 걸린 나의 기쁨, 나의 고통.


그나저나 어째 여태 소식이 없는고?

호랑이는 우리 집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나?


아휴, 이 양반아.

얽거든 검지나 말지,

얽거든 검지나 말지...

그게 귀찮으면 곶감도 먹지나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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