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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11. 2022

남의 편! 그건 니 생각이고!!!

그 또한 혼자만의 오해일 뿐이고!

22. 11. 10. 얽매이지 않는 삶을 위하여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내가 말한 초본 떼어 놨어?"

"응, 다 출력했어."

"그래? 어렵진 않았어?"

"뭐가?"

"자긴 기계 잘 못 다루잖아."

"무슨 소리야?"

"아니 힘들었을까 봐."

"힘들긴 뭐가 힘들어? 하루 이틀 출력해 봐?"

"자긴 그런 거 잘 못하잖아."


이럴 때 쓰임이 아주 적절하고도 반드시 필요한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고급 전문 용어로

'매를 번다.'라고 한다지 아마?

그는 이쯤에서 멈춰야 하리.

이미 적립해 둔 양도 상당하다.

주체할 수 없어 어디에 기부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기부를 반기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 짐작된다.


물론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지는 못한다.

가산점이 있다고 하여 그 옛날에 공무원 시험 준비하며 사무자동화 자격증을 따긴 했었다. 대학 다닐 때 컴활도 땄었고, 육아휴직 기간에 안 쓰면 잊을까 봐 컴활과 한글 강의를 들었고, PPT, ITQ까지 배웠었다.

이 또한 현실과 이상의 괴리만큼이나 업무상 실전에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헤맸던 점 솔직히 고백하는 바이다. 나는 배움에 있어서 인색한 편이 결코 아니다.

일을 하다가 막히면 친절히 알려주는 검색 엔진이 언제나 날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그때그때 찾아보고 하고, 하다못해 직원들에게라도 물어서 해결하곤 했었다.

사람이 다 알 수는 없는 거잖아.

뭔가 빈틈이 있어야 더 인간적인 법이라고.

물론 그 빈틈이란 것이 어지간해야 하긴 해야 하지만 말이다.


어쩔 때 남의 편은 나를 무지렁이로 아는 것 같다.

아둔하고도 미개한 저 세상 사람 취급을 하려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무지렁이도 아니고 아둔하지도 않으며 미개하지도 않으므로 크게 마음 쓰지 않는다.

대신에 여기에 크게 내 속마음을 쓰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사실'과 남의 편의 '의견'과는 차이가 있으며, 오히려 사실과는 아주 다르다고 나는 주장한다.


"가족 수당 받는 사람들 확인한다고 초본 내라고 하던데 좀 준비해줘."

사건의 발단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들 온라인 수업의 부산물로 프린터까지 들인 마당에  오래간만에 구색 갖춘 사무용품이 빛을 발할 시기가 온 것이다.

집 앞에 무인 발급기가 있고 민원실이 있지만 방 안에서도 어지간한 문서를 발급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세상이다.


부탁받은 대로 세대원을 세대주와의 관계를 체크해 최근 5년 이내 주소 변동사항을 포함해 출력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깟 초본 하나도 제대로 못 떼는 사람 취급을 해?

유치해서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민원실에서 일한 기간이 얼만데?

심지어 내가 주민등록 담당자였다고, 정부 24도 내 소관이었고, 새올 중계 민원 G4C며 게다가 무인발급기까지 사무분장표에 다 분류돼 있었다고, 이래 봬도 한때 무인발급기 3 대를 관리하던 사람이라고, 가족관계 등록부 관련 전산운영 책임관과도 전화통화까지 해 본 사람이 나라고,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남의 편은 내가 공무원을 그만 둠과 동시에 나를 모태 백수였던 것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그냥 백수도 아니고 걸핏하면 '세상 물정도 모른다.'며 관계를 악화시킬  일밖에 없는 하지 말아야 할 소리까지 덧붙였다.

하긴 내가 일을 할 때에도 그런 조짐이 보이긴 했었다.

자신이 더 잘 아는 분야에서는 늘 나를 가르치려 들었고 어느 면에서는 나의 무지에 대해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나는 남의 편의 기준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현재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므로, 세상 모든 일을 다 알기엔, 많은 것들에 대해 알기엔 시간이 유한하므로 다 발을 담그지도 않을뿐더러 그럴 마음도 없다.

누구나 관심분야는 다를 수 있고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영역이 같지 않을 뿐인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 나의 무지로 인해 세계 인류 평화가 깨어진다거나 경제상황이 악화된다거나 하는 따위의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왔다.

물론 나도 박학다식한 사람을 좋아한다.

이상형이라고나 할까?

'박학다식한 사람'에의 간절한 목마름에 헐떡이고는 있지만 이런 식으로는 결코 아니다.

뜬금없이 남의 편이 내 이상형은 절대 아니란 사실만 드러났다.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 말고 '알려주는' 사람이 좋다.


남의 편은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저런 사람으로 내가 바꿀 수는 없는 노릇, 거기에 끌려다닐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생각한다.

'전자문서 지갑이라고 알기나 할까?'

모른다 해도 전혀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 병아리 눈물만치도 없다.

코웃음 쳐주고 말리라,

그의 무지함에 한껏 치를 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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