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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4. 2022

가족 독서 골든벨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런 삶의 활력

22. 11. 24. 수험생이 셋이 되었네

< 사진 임자 = 글임자 >

"합격아, 독서 골든벨 나간다며 공부하고 있어?"

"아니."

"나간다고 해놓고 왜 공부를 안 해? 안 할 거야? 안 할 거면 당장 취소해!"

"취소해야 돼?"

"신청만 하고 공부는 않고 나가기만 하면 뭐해? 1단계부터 떨어지고 올 거야?"


딸은 말이 없었다.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말아야 할 때, 어찌하여 그때를 그 양반은 모르시는가.

공부도 안 할 거면 취소하라며 윽박지르는 말 대신 이왕 신청해놨으니  대비해야 하는 성의를 조금 보이는 게 어떻겠느냐, 이런 식의 말이라면 어땠을까.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고 내가  결혼 생활 동안 얼마나 많이 얘기했는데, 나한테 하는 것도 모자라 아이들한테까지 저런 식으로 말한담?


"곧 대회 있다며. 그럼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이왕 신청한 거 열심히 준비해서 잘하면 좋잖아. 그렇다고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너무 결과에 얽매여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냥 엄마랑 재미있는 추억 하나 만든다 생각하고 가볍게 준비해 보는 건 어때? 네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하는 거니까 최소한 어느 정도는 그래도 공부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라고는 물론  말할 줄 모르는 그 양반.


제발, 그냥 가만히 있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이젠 슬슬 사춘기로 접어들어가는 나이의 딸이다.

예민해져 가는 시기인 것을 감안해 줘야 한다.

저번에도 갑자기 딸에게 호통을 치는 바람에 눈물까지 쏙 빼게 해 놓은 양반이 그 양반이시다.

어쩜 말할 줄 모른다 모른다 해도 저렇게도 모를까.

그리고 시험을 앞두고 '되면 되는 거고 안되면 말지' 이런 태도로 지금 전입시험 면접을 앞둔사람이 딸에게 저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 아닌가.


지난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 독서 골든벨' 참가 가족 신청을 받았다.

"합격아, 너 이거 한 번 나가 볼래?"

"그럴까? 나가 보지 뭐."

"그래, 그럼 엄마랑 준비해서 나가 보자."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은 입도 뻥끗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으므로, 참가하지 않겠다는 묵시적 의사 표현으로 간주하고 묻지 않았다.


"아빠, 엄마랑 나 독서 골든벨 대회에 나가기로 했어."

"어, 그래?"

그때까지만 해도 시큰둥하고 그 양반은 별 관심도 없어 보였다.

딸네 반에서는 우리 가족만 신청을 해서 졸지에 우리는 반 대표 가족이 되어 버렸다.

괜히 내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래도 수학경시대회라면 모를까(그러면 애초에 내가 참가 신청도 안 했겠지.) 독서 골든벨은 한 번 해 볼만 하지 않겠어?


얼마 전 독서 골든벨에 출제될 책 두 권이 안내되었다.

미리 공부를 해 두면 그렇잖아도 기억력이 급속히 쇠퇴되고 있는 엄마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 뻔했으므로 특기를 살려 '벼락치기' 수법을 쓰기로 했다.

딸에게 전혀 그 어떤 재촉의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둘은 서두르지 않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준비하기'로 그렇게 암묵적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골든벨 그까짓 거 뭐,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나가 보는 데에 의미가 있는 거지, 꼭 우승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우리가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은 애초에 내려놓았다.

다른 가족이 우승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하는 것도, 이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결정적으로는,

"엄마, 골든벨에서 우승해도 아무 상품도 안 준대."

이런 고급 정보를 흘리며  딸은 의지를 더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누가 그래?"

"선생님의 그러셨어."

"그랬구나, 상품이 없으면 뭐 어때? 엄마랑 그런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좋지. 안 그래?"

"그건 그래."

다소 결과 지향적이며 보상 지향주의자의 성향을 띤 딸은 우승자에게 그 어떤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시무룩해졌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월요일 저녁이었다.

저녁밥을  많이도 잘 잡숫고 나서, 과일도 골고루 잘 드시고 안정을 취하던 그 양반이 뜬금없이 얘기했다.

"독서 골든벨 나간다며 잘 준비하고 있는 거야?"

"아니, 아직 책도 아직 안 구했어."

"대회가 언젠데?"

"이달 말."

"금방인데 아직 책도 안 샀단 말이야? 내가 주문해야겠다."

그리하여 '그래 24'에서 그 양반은 빛의 속도로 책 두 권을 주문했다.

쇼핑하는 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부러워할 만큼 적극적이며 발 빠르고 손은 더  빠르며, 망설임 따위 없는 양반이시다.


나는 이번에 딸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내 심오한 뜻을 알리 없는 그 양반은 말했다.

"아니, 집에서 그런 것도 신경 안 쓰고 뭐해? 내일모레가 대회인데?"

집 밖에서 생활해야 하려나 보다.

집에만 있으니까 저런 소리 나 듣는 것일 게야.

나도 시각화하여 계획표만 작성하지 않았다 뿐이지 머릿속으로 나름 구상해 둔 게 있었다.


분명히 나는 딸에게 참가 의사를 물었고, 딸은 참가하겠다고 했으니, 이제 4학년이니까 스스로 준비하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대회 준비를 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딸은 골든벨 대회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상하다?

내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닌데 분명히.

하긴, 그 대회가 뭐라고 이리도 애태울 일이란  말인가.

나는 딸이 어떻게 나오나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만약에 대회 날까지도 전혀 신경도 안 쓰고 문제 1번에서 탈락하고 대회장에서 나오더라도 '자업자득이라고, 이번 기회를 통해 뭔가 교훈을 얻겠지.' 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문제는 이런 일을 통해 깨닫고 배우는 점이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도 가끔은 있다는 것이다.


저렇게 무사 태평하게 있어도 주문한 책이 도착하면 또 딸은 악바리 근성을 발휘하여 온종일 매달릴 것이다,라고 믿고 싶다.

절대 강요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나도 아직 아무런 시작도 안 했다.

이제 시작하면 되겠지.

오랜만에 나도 공부라는 걸 좀 해봐야겠다.

그리고,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그 양반도 전입시험 준비나 착실히 잘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고 가당치도 않은 바람을 가져 본다.


그 양반의 면접시험일은 다음 주 화요일이라고 했다.

요즘 부쩍 수험생 시늉을 내고 계신다.

괜히 찹쌀떡 잘못 먹고 탈 나면 안 되니까 그런 건 과감히 생략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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