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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02. 2022

벼락치기 한 과보를 잔소리로 받았다.

그리고 과격한 교육방식을 고집한 과보의 결과

22. 12. 1. 호랑이가 무서운 게 아니라 피하고 싶다.

< 사진 임자 = 글임자 >


"오늘 몇 단계까지 올라갔어?"

"그건 몰라. 근데 문제는 많이 맞혔어."

"몇 등 안에 들었는데?"

"그게 뭐가 중요해. 아무튼 우승은 못했어. 그리 알아."

"몇 개나 맞혔는데 그래?"

"몰라. 다들 공부 많이 하고 왔나 보더라."

어쩜 그리 눈치가 없누?

그 정도 얘기했으면 적당히 끝낼 줄도 알아야지 어찌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같이 못 알아듣는담?

엊그제 가뜩이나 시무룩해 있는 딸이 신경 쓰였는데 결과에만 너무 집착을 하며 추궁해 대는 남편에게 아무리 눈치를 주어도 그 양반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과가 좋았으면 딸 성격에 당장 제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호들갑을 떨거나 우승을 빌미로 좋아하는 음식을 포상으로 당당히 요구했을 것이다.


"거 봐. 거기 참가한 사람들이 보통이겠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다들 우승해 보려고 나간 사람들인데 자기처럼 대충 공부하고 갔을 것 같아?"

"나 대충은 안 했어."

"미리미리 준비를 했어야지. 책 한두 번 보고 가서 되겠냐고?"

"비록 벼락치기로 하긴 했지만 절대 대충 한 건 아니야. 공부 시작했을 때부터는 나름 열심히 했어."

"무슨 문제가 나왔는데? 어떤 문제에서 떨어졌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데, 이미 다 지난 일을 들추고 지금 끝까지 해보자는 건가?


기출문제 중에 몇 개를 남편에게 질문했다.

첫 문제부터 남편은 탈락했다.

"뭐야 아빠? 아빠도 모르네."

침울해 있던 딸이 고소해하며 활기를 되찾았다.

"그거 말고 또 다른 문제는?"

역시나 그 문제도 남편은 틀렸다.

"아빠도 모르네 뭐."

"그건 아빠가 공부를 안 했으니까 그렇지. 공부했으면 맞힐 수 있지."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자긴 시간도 많은데 공부도 안 하고 뭐 했어?"

내가 꼭 대꾸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 양반의 잔소리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직장인이 공부하는 건 대단히 어렵고도 힘든 일인 것에 반해 직장 생활을 안 하는 사람은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도 남아도는 줄 안다.

어쩔 때 보면 그 양반은 사람을 두 부류로만 나누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에게는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만 존재한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전자는 항상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지만 후자는 세상 아무 걱정 없어서 스트레스도 전혀 안 받고 놀면서 편하게만 사는 줄 안다.


직장인의 애로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요즘 사회생활이 보통 힘든가.

당연히 스트레스도 많이 받을 테고 업무적으로나 인간관계나 여간 힘든 것이 아닐 것이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고 인정한다.

그렇지만 같은 말이라도 이왕이면 상대가 듣기에 불편하지 않은 어휘를 선택해서 이성적으로 말을 했으면 한다, 고 수 백 번을 말해왔지만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나야 그동안 겪어 온 게 있으니까 그러려니 할 수도 있고 그 성향을 아니까 그렇다 치자.

하지만 그 말 하는 습관을 고스란히 아이들이 물려받는다는 것을 여태 모르신다.

자식 키우기가 왜 어려운 법인데?


"엄마는 좋겠다. 회사도 안 다니고 일도 안 하고 집에서 맨날 편하게 쉬고. 엄마가 부럽다."

종종 아들이 하는 말이다.

느닷없이 저런 말을 할 아들이 아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싶었는데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그 조상이 있었다.

말 한마디라도 서로 기분 상하지 않게 하는 습관을 기르자고, 애들 앞에서라도 그러자고 얘기해도 그때뿐이다.

물론 나도 화가 날 때는 말이 좋게 나가지 않을 때가 더러 있지만

'애들이 보고 배우면 안 되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 차라리 침묵할 때도 있다.

아름답지 못한 말을 하느니 잠깐 침묵을 지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벼락치기 수법은 확실히 시험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님을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금 깨달았고, 회개하며 다음번에는 정신을 차리고 미리 준비해 봐야겠다고 이미 수 십 번 마음을 고쳐먹은 후였다.

자체적으로 충분히 반성의 시간도 가졌다.

또한 아이들과 역사 공부를 차분히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한두 번으로 끝내도 좋을 것을 그 양반이 몇 번이나 한 소리를 하고 또 하고 하는지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엔 진짜 엄마가 미리 공부 많이 해서 나가야겠다. 아빠도 다음엔 한 번 도전해 보면 되겠다. 그치 얘들아?"

"그래, 아빠. 아빠도 한 번 나가 봐."

딸이 제 아빠를 부추겼다.

"아빠 안 바쁘면 나갈게."

잘만 하면 한 번에 넘어오겠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 아빠가 바쁘면 못 나가지만 만약에 나갈 수 있다면 너희가 한 명씩 엄마 아빠랑 나가는 거야. 오늘 보니까 아빠들도 많이 왔더라. 엄마 생각이 어때?"

나도 박차를 가했다.

앞으로 아이들 학교 행사에 그 양반이 가면 얼마나 더 가겠냐 싶었다.

"좋아, 엄마.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러면 되겠다."

아이들이 환호했다.


"근데 누가 아빠랑 나가고 누가 엄마랑 나갈래?"

"내가 엄마랑 나갈래."

"그런 게 어딨어? 누나는 이번에 나갔잖아. 다음엔 내가 엄마랑 나갈 거야."

"몰라. 그래도 난 엄마랑 나가고 싶어."

"얘들아, 한 명은 아빠랑 나가야지. 아빠는 스파르타식으로 교육해야겠어."

"엄마, 스파르타가 뭐야?"

"응. 아주 엄격하고 철저하게 교육하고 자유가 좀 없는 거야."

"그럼 안 좋은 거네?"

"근데 가끔 그렇게 해야 될 때도 있긴 해."

"난 싫은데..."

"누나, 나도."


나는 햇볕정책을 무기로 삼아 아이들에게 어필했고 그 양반은 끝까지 스파르타식을 고집했다.

"자, 한 명씩 골라. 누가 아빠랑 할래?"

두 아이는 말이 없었다.

"얘들아. 아빠랑 같이 나가보고 싶지 않아? 그럼 아빠가 철저히 공부하게 해서 우승할 수도 있어."

그 양반은 이제 거의 애원했다.

"아빠랑 나가면 확실하게 책임지고 공부시킬 수 있는데 같이 나갈 사람?"

아이들의 침묵은 길어졌다.

그 양반은 상황 파악이란 걸 할 줄 알아야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다짜고짜 밀어붙인다고 되는 일이 어디 얼마나 있단 말인가.

그것도 초등생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을 말이다.

적절한 회유와 지나치지 않을 만큼의 통제, 그리고 위협적이지 않은 태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고 나는 생각하는데 그 양반 생각은 다르신가 보았다.


결국 그날 밤에 그 양반은 시대에 뒤떨어진 무조건적인 스파르타식 교육방침으로 딸과 아들 중 그 누구에게서도 선택받지 못한 과보를 받았다.

지나친 승부욕과 시대착오적인 교육관과 연령별 상황에 맞는 접근 방식의 부재가 불러온 참사였다.

"어차피 아빠가 바쁘면 대회에 나가지도 못해. 그때 아빠는 아마 바쁠 것 같다 얘들아"

이렇게 말끝을 흐리며 방으로 들어가는 그 뒷모습이 내 눈에만 잠깐 애처롭게까지 보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냉정했다.

"아빠 안 나가면 엄마만 나갈 수 있겠네? 엄만 누구랑 나가고 싶어?"

그렇게 남매의 '제 2차 엄마 쟁탈전'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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