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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08. 2023

위기의 무면허 미용사

폐업직전에서 기사회생한 사연

23. 2. 7. 3주마다 피어나는 어떤 사람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번엔 사람들이 머리 잘 잘랐다고 하더라."

"못쓰겠다고 미용실 바꾸라고 할 땐 언제고?"

"사람들이 미용실 바뀌었냐고 물어 보더라니까."

"바꾸었다고 하지 그랬어."

"앞으로는 거기 계속 다니래."

"그건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이지."

"진작에 바꾸지 그랬냐고."

"하여튼 남의 일에 관심 많아요."

"이렇게 이발 잘하니까 2주에 한 번씩 해야겠어."

"아니, 지금 누가 그걸 결정하는 거야? 이발해 주는 사람은 난데? 2주마다 할지 3주마다 할지 그건 내가 결정해."

"3주는 너무 긴 것 같아."

"그러지 말고 이발비를 좀 인상해 주는 건 어때? 그럼 2주마다 이발한 것 같은 3주 이발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월요일 저녁 퇴근하고 온 남편은 희색이 만연했다.

기회는 이때다.

임금 협상이 필요하다.

무면허 주제에 감히 '임금 협상'이라는 거창한 표현이 좀 과해 보이긴 하지만 일단 밀어붙이는 거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그래."

"오늘따라 왜 같은 자리만 계속 자르고 있어?"

"내가 뭘?"

"정신을  데 두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오늘따라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 것 같다?"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 이발해 달라고 해 주는 데가 어디 있다고, 무슨 불만이 그리 많아?"

"이상하게 자른 거 아니야?"

"이상하긴 뭐가 이상하다고 그래? 아직 보지도 않았으면서?"

"너무 오래 하니까 그렇지."

"아 진짜, 나 이제 안 해 안 해. 다음부턴 미용실을 가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이젠  진짜로 안 할 거야! 한밤중에 해 주면 고마운 줄 모르고 말이야. 됐어!"


남들은 미용실 문 닫을 시간에 양심도 없이 출장 미용사를 안방까지 불러서 야간 노동을 시켜놓고 뭐가 그리도 못마땅한지 남편이 슬슬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이발해  달라고 해도 안 하면 그만이지만 그 이발비를 받아 어디에 쓸지 진작에 계획세운 것이 있었으니 차마 거절할 수도 없긴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싫으면 관두라고 큰소리쳤지만 내심 정말로 남편이 나를 해고하면 어쩌나 조바심도 났다.


지난 주말도 '앙드레 임'은 한밤중에 가위질을 시작했다.

그 밤손님(?)은 말이 무척 많으셨다.

일일이 대꾸하랴 이발하랴 나도 매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게 뭐야? 머리를 왜 이렇게 잘랐어?"

"왜?"

"양쪽이 서로 길이가 다르잖아."

"뭐가 달라? 난 모르겠구만."

"거울 봐봐. 차이가 나잖아."

"어디가 차이 난다는 거야?"

"봐봐. 이쪽이 훨씬 길잖아."

"비슷하구만 그러네. 그렇게 불만이면 다음부터는 나가서 이발하라니까. 맘에 안 들면 안 하면 될 거 가지고 꼭 해 달라고 하면서 그러더라?"

"차이가 많이 나니까 그렇지."

"내일 다시 머리 감고 봐봐. 지금은 막 잘라서 그럴 수도 있잖아."

"그런가?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 일단 자 보고 내일 다시 봐 보자."

과연, 남편 말마따나 한쪽이 조금 더 길게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속으로만 생각할 뿐, 가끔은 마음속에 간직하기만 하는 것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그 아름다운 어떤 것을 간직하는 일뿐이다.

눈 한번 또 질끈 감자.


월요일 아침, 남편이 출근하고 나자 이내 근심이 한가득이었다.

"사람들이 나보고 미용실 어디 다니냐고 머리 못 자른다고 딴 데로 바꾸래."

불과 3주 전에 나의 이발 실력을 지적당했던 것이다.

무면허 이발 3년 만에 지적당해 보긴 처음이었다.

그전에도 직원들이 말만 안 했을 뿐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어쨌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집사람이 배워서 집에서 이발해 줬어요."

라고 남편은 이실직고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여기가 덜 잘렸네, 저기를 더 다듬어야겠네, 여기는 하다 말았네 등등 남편에게는 보이지 않는 '비리의 현장' 내지는 내가 숨겨온 '사고 발생 현장' 등, '핫 스폿'을 속속 제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차 폐업 위기를 그때 맞았다.


이대로 '앙드레 임'의 미용실이 문 닫는가 싶었다.

다행히 '조삼모사'의 결정체인 그곳 직원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폐업 위기 직전에서 나를 구했다.

면허도 없고 나는 뛰어난 미용사는 못된다.

어쩔 때 내가 봐도 훌륭하다고 감탄하게 되고, 어쩔 땐 양심상 나도 차마 그 머리로 출근하라고는 못할 정도로

(며칠 연가라도 써서 머리카락이 좀 길면 출근을 하라고 할까, 내적 갈등을 심하게 겪기도 했다.) 실력은 모자라며 컨디션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는 '앙드레 임'의 가위손이라니.


이번엔 유난히도 이발 결과를 못마땅해했던 남편은 나의 노동 시간 내내 불만을 표출했었다.

그게 신경 쓰였던지 평소에는 임금을  체불하기 일쑤여서 내가 몇 번이고 독촉해야만 이발비를 송금했는데 이번에는 머리를 감자마자 송금해 주었다.

3주 후가 어떨지 또 장담할 수 없는 나는 '3 주살이' 미용사이다.

실력이 일정치 않다는 것,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문제점이다.

그것은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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