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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Feb 21. 2023

살림 고수의 꿀팁은 부부싸움을 부르고

꿀팁은 독팁이 되고

23. 2. 20. 집밖은 봄, 집안은 한겨울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게 뭐야?! 아이고, 아까운 거!"

"뭐가?"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는 거야? 다 썩었잖아!"

언젠가 저러다가 들통나지 했는데,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귀신같은 (엉뚱한 곳에서 어쩔 때만 예리한) 남의 편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내가 그 원흉을 늘어뜨려 놓았노라.


"진짜 아깝다. 도대체 이게 다 뭐야?"

"그렇게 놔두면 잘 안 상한대서 그랬지."

"하여튼 어디서 이상한 것만 봐가지고는."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누가 그랬어?"

"사람들이!"

"누구?"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고!"

지지난 주였던가?

홑몸인데, 분명 나 혼자 몸인데 갑자기 귤이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임신했을 때도 이런 식탐은 없었다.

두 아이를 임신했던 기간에도 입덧만 미친 듯이 하고 구역질만 해댔지, 자다가 한밤 중에 깨어나 마구 토하기만 했지 딱히 요란스럽게 먹고 싶은 음식이 없어 너무 분하기까지 했었다.


나잇살이 찌려나, 가끔 특정 음식을 탐하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들었는데(이런 말을 하면 또 어떤 동거인은 발끈할 것이다, 도대체 그런 유언비어를 왜 믿느냐고, 뭘 믿고 따라 하는 거냐고) 난데없이 어떤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건 몸에서 그걸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걸 먹어 줘야 한다고 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어쩐 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지금 이 순간', 그 순간이 중요했다.

과학이고 뭐고 본능에만 충실하고 싶을 따름이었던 거다.

'몸에서 원하는 거지, 내가 식탐이 있어서가 아니야. 식탐과 몸이 원하는 것과는 엄연히 달라. 구분되어야 마땅해. 지금 그 음식을 몸에서 필요로 하고 있어. 그러면 먹어 줘야 해. 그만큼 몸이 원한다는 증거니까, 반드시!'


"나 요즘 귤이 먹고 싶네?"

"웬 귤이야?"

"몰라. 그냥 계속 먹고 싶어. 아, 귤 한 번 원 없이 먹어 봤으면."

"임신도 안 했잖아?"

"에구머니, 망측해라! 무슨 큰일 날 소리야?"

"갑자기 그러니까 그러지."

"꼭 임신해야만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아니, 갑자기 귤 타령을 하길래."

"그것도 사주기 싫어?"

"누가 사주기 싫대? 사 줄게. 당장 사 줄 수 있어."

물론 남편의 '당장'이란 의미는 내가 그 말을 하고 난 뒤 며칠은 지나고 주말 아침이 되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제발 이제 나가자고 닦달할 때, 바로 그 시점을 의미한다.

주말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귤 한 상자를 사 왔다.

자그마치 10kg짜리다.

"두 박스 살까? 어머님도 드리고."

"아니, 엄만 있댔어. 봐서 여기서 나눠 먹음 되지 뭐."

언제나 과일을 살 때면 처가 몫까시 살뜰히 챙기시는 사위다.

그 한 상자는 제법 양이 많았지만 당시 의욕만 앞선 나는 며칠 안에 거뜬히 해치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생각해도 가끔 미련하리만치 식탐을 부린다.

그래서 친정에는 달랑 한 개도 가져가지 않았다.


임신 때 먹고 싶어 안달 난 그 마음보다 홑몸인 상태에서의 당시 기분은 (물론 귤 타령을 시작한 지 며칠 만에 구입하긴 했으나) 남편에게 고마워 눈물까지 날 지경이었다.

"이제 거의 끝물이라 없어요."

과일가게 아저씨의 말 한마디는 그것의 희소성에 더 가치를 부여하면서 귀한 것을 어렵사리 손에 넣은 것처럼 뿌듯하기까지 했다.


"다 버려야겠다. 이게 다 얼마치야? 왜 아깝게 다 버리는 거야 정말?"

"말은 똑바로 합시다. 솔직히 다는 아니지."

"그래. 다는 아니고. 아무튼 많이 상했잖아."

"정말 그렇게 두면 덜 상한다고 해서 그런 거라니까."

"이상한 것만 따라 하지 말고 정신 좀 차려."

"왜 말을 그렇게 해? 그게 정신 차리란 소리까지 들을 정도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상할 수도 있지."

이 양반이 보자 보자 하니까 별소릴 다 듣겠네 정말.

말이란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내가 몇 번이나 재방송했던고?


"아니 이럴 수가, 저런. 당신이 귤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려고 살림 고수들의 꿀팁 영상까지 뒤져가며 그대로 성실히 실행했으나 그만 그 얌체같은 것들이 제법 상해버렸군. 이를 어쩐담? 어쩔 수 없지. 다음엔 조심하면 되지. 괜찮아. 귤 상한 거 저거 얼마나 한다고. 신경쓸 거 없어. 그럴 수도 있지. 다시 또 사 올게.이건 내가 치울게. 생각대로 안되고 귤이 상해서 속상했지?"

라고 말하는 건 드라마 속 '실장님'이 '여주인공'에게나 할 법한 말이었다.

법적으로 부부인 사람들 사이에선, 사실혼 13년차인 사람들 사이에선 결코 들을 법한 말은 아니다.



요즘은 귤을 사면 이상하게 잘 상하는 것 같다.

옛날 옛날에는 한 상자 가득 놓고 먹어도 한동안 안 상하고 잘 먹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보관 방법이 문제인지 며칠 지나면 금방 물러지고 곰팡이가 피어오르 했던 것이다.


우연히 '귤 보관 꿀팁' 영상을 보았던 게 화근이었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귤을 사 오자마자 씻어서 서늘한 곳에서 서로 닿지 않게 떨어뜨려 놓고 보관하면 오랫동안 상하지 않고 먹을 수 있어요.'

꿀팁이라는데 해봐야지, 아무렴.

사이비 교주에 홀린 광신도마냥 나는 맹목적으로 따랐다.

세상은 넓고 알뜰살뜰 살림하고 싶은 가정 주부들은 넘쳐났으며, 그들은 항상 어떻게 하면 절약하며 살림을 해 나갈 수 있을지(물론 항상 절약이 되는 것만은 아닌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를 고민해 왔다. 물론 나도 그런 성실한 주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에 응답하듯 세상에는 림 고수들도 넘쳐났던 것이다.

선량한 가정주부에게 죄가 있다면 단지, 귤을 오랫동안 안 상하게 보관하여 가족들에게 먹일 수 있기를 바랐던 것뿐이다.

경험자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살림에 유용하게 적용해 보겠다는 게 욕심이었단 말인가.

그게 죄라면 나를 벌해도 좋다.

뭍사람들에게 외치고 싶다.

"너희 중에 10kg 귤 한 상자를 한 알도 안 상한 채로 오롯이 다 까먹은 자, 이 주부에게서 귤을 앗아가도 좋다!"

(*설사 그런 위대한 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제보는 굳이 안 하셔도 됩니다...)


아무리 꿀팁이라 하더라도 살림 고수의 환경과 우리 집 환경은 엄연히 다를 테고 기타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로 인해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을 터였다.

'귤 사이 간격 거리두기'를 시행한 다음날부터 그것들은 이상하게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눈에 띄게 수분이 빠져나간 듯 보였고 겉면이 쭈글쭈글해지더니 이내 곰팡이가 피어오르고 겉보기엔 멀쩡해서 집어 보면 아랫부분이 온통 다 물러지고 일그러졌다.

'환경 탓일 거야. 내가 잘못 보관한 건 아닐 거야. 아니면 귤이 애초에 싱싱하지 않았던 건지도 몰라."

야금야금 상한 것들을 골라내며 혼자서만 되뇌었다.

차디찬 현관 쪽에 줄 맞춰 늘어놓는 나를 보고 처음부터 못마땅해하던 동거인이 한 명 있었으니, 그는 애초에 그런 꿀팁 같은 것은 믿지 않는 이였다.

그러나 살림 고수들에게 전수받은 여러 비법들을 실생활에 접목해 본 결과 성과가 꽤 있었으므로 나는 이번에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런 방법을 한 두 명이 추천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나는 시행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남의 편의 잔소리를 곁들인 핀잔만 초래했던 것이다.

나를 보는 남의 편의 눈빛이라니.

마치 나를 살림이나 축내는 헤픈 가정부주 보듯 하지 않았던가.

그 눈빛은 마치, 샤머니즘에 빠져 이성적인 판단도 못하는 어리석은 자를 바라보는, 과학과 이성과 합리적인 판단과 사고로 똘똘 뭉쳐 무지몽매한 자를 계몽하려는 개화기 신지식인의 그것이었다.


결코 임신한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아니 될 일이지만 주책없이 나는 왜 그렇게도 귤이 먹고만 싶었을까.

아마도 기어코 남의 편에게 저런 핀잔을 듣고야 말 운명이라서?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던 어미처럼 느닷없는 식탐이 부부싸움을 불렀다.

흥!

영상 보고 식초물에 발 담근 사람이 누구였더라?

영상 보고 민간요법이라며 듣지도 보지도 못한 괴상망측한 과감한 시도를 한 사람은 또 누구였더라?


한 움큼의 귤을 집어 들고 믹서기에 넣은 후 '굳이' 남편 앞에 들이밀었다.

두 눈을 부릅떴음은 물론이다.

"안 되겠어. 다 갈아 버려야겠어! 다 갈아 버릴 거야! 모조리 갈아엎을 거야!"

"근데 왜 나를 보면서 말해?"


애증의 주홍빛 그것은 한 병의 귤잼으로 거듭났다.

가장 먼저 그 맛을 음미할 이는 아마도,

확신하건대 남의 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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