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부터 끓여 보라고 하시죠

전화는 아들에게

by 글임자
2026. 3. 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오늘이 큰오빠 생일인디 미역국이나 먹고 출근했는가 모르겄다"

"설마 언니한테 전화하려고? 하지 마슈."


엄마는 또 시작하셨다.

큰아들이 생일에 과연 미역국은 먹고 출근을 했는지 어쨌는지 (내 생각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데) 엄마에겐 아침부터 그게 가장 중요하고도 궁금하신 모양이었다.

나는,

하나밖에 없는 이 집 시누이는 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어째 너는 언니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하냐?"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별 것을 다 간섭한다는 표정이셨다.

"엄마, 언니가 알아서 했겠지. 생일이라고 꼭 미역국 먹어야 되는 건 아니잖아?"

"그런다고 내가 전화도 못 해 보냐?"

"자꾸 언니한테 전화해서 성가시게 하지 말라고. 전화할 일 있으면 오빠한테 먼저 하고 꼭 언니한테 할 말 있으면 그때 언니한테 전화해."

그러나 문제의 그날은, 당신의 큰아들 생일인 그날은 꼭 큰며느리에게 전화할 용건이 생겨버린 것이다, 물론 시어머니인 엄마 입장에서만 말이다.

"하여튼 너는 잔소리가 많다."

"며느리한테 자꾸 전화하면 좋아할 며느리 하나도 없다니까. 언니 귀찮게 하지 말라고. 둘이 알아서 하라고 냅두셔."

"그럼 내가 냅두제 뭐라고 하냐?"

"그러니까."

엄마는 '또' (이것도 물론 엄마 입장에서만) 쓸데없이 사사건건 나서는 딸이 못마땅하신 눈치였다.

하지만, 아들 생일에 며느리가 미역국을 끓였는지 안 끓였는지 그걸 물어보려고 기어이 며느리에게 전화하는 시어머니는 나라도 좀 부담스러울 것 같다.

나는 다른 마음은 없었다.

단지 새언니와 같은 며느리 입장에서, 차마 엄마의 며느리는 못 하는 소리를 내가 하고 만 것이다.

엄마도 딸이 있으면서, 어쩔 땐 너무 며느리 입장을 곤란하게 하시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종종 있긴 하다.

"언니한테 전화해서 아침에 미역국 안 끓여줬다고 하면 뭐라고 하실라우? 안 끓여 줬어도 끓여 줬으니까 그리 알고 계셔."

난 나의 시어머니가 당신의 아들 생일에 며느리인 나에게 당장 전화해서 미역국을 끓였는지 확인하기라도 한 것처럼 적극적이었다. 엄마가 가능하면 며느리에게 전화하지 않으시도록.


"아가씨, 난 오빠가 내 생일에 미역국 한 번도 끓여 준 적 없어. 나는 오빠 생일에 끓여줬는데."

언젠가 생일 얘기가 나왔을 때였다.

세상에는 놀랍게도,

믿기 힘들지만,

설마설마했는데,

본인 생일에는 아내가 끓여준 미역국을 잡수고는

아내 생일에는 입을 싹 씻은 남편이 있다고 한다.

최소한 한 명은 있었다.

바로 우리 큰 오빠다.

미역국 그게 뭐라고.


"그래도 생일인디 미역국이라도 먹고 출근해야제."

엄마가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하시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엄마, 어차피 오빠 진작 출근했을걸? 그리고 오빠는 언니 생일에 미역국 한 번도 안 끓여줬다고 합디다.

언니도 해년마다 끓여줘야 하는 법은 없잖수? 오빠한테나 전화해서 며느리 생일에 한 번이라도 미역국 끓여주라고 하슈."

라고는 주제넘은 소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물론.

엄마는 당신의 세 며느리들 생일을 다 꿰고 계시기 때문에 그녀들의 생일이 다가오면 소소하게 축하금을 주신다.

"생일에 맛난 거 사 먹어라."

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시고 말이다.

어쨌거나 시어머니에게 아들 생일은 중요할지 몰라도 아들 내외 입장에서는 아닐 수도 있는데 엄마는 생일을 너무 크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고 나만 느꼈겠지, 물론?)


결국 엄마는 아쉬운 대로 큰오빠에게 전화를 하셨다.

"오늘이 니 생일인디 미역국은 먹고 출근했냐?"

기어코 전화를 하셨다.

"엄마! 그런 소리 그만하시라니까. 아들한테만 미역국 먹었냐고만 물어보지 마시고 며느리 생일에 아들보고 미역국 끓여 주고 출근했냐고 물어 보슈. 날마다 언니가 끓여주는 거 얻어먹지만 말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지. 언니만 맨날 오빠 생일에 미역국 끓여 줘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물론.

불현듯 나는 깨달았던 것이다.

큰 오빠네가 미역국을 끓여 먹든 누룽지를 끓여 먹든 둘이 알아서 할 일이지 (이미 다 나서놓고) 내가 나설 일은 아니라는 것을.

당장 내 앞아가림이나 잘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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