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렇구나. 근데 엄마, 산타 할아버지는 외국 사람인데 어떻게 편지를 한글로 썼지?"
"그러니까 산타 할아버지지. 산타 할아버지는 모르는 게 없으셔."
"아, 정말 그렇구나. 근데 말이야. 어떻게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선물을 그렇게 잘 알까?"
"그러니까 산타 할아버지지. 항상 너희를 지켜보고 계시니까."
"아, 그러네 정말. 근데 정말 신기해, 산타 할아버지는 어떻게 하룻밤에 세계 어린이들 집에 다 갈 수가 있을까? 어린이들이 엄청 많잖아."
"아유~ 그러니까 산타 할아버지지요."
"우와, 정말 산타 할아버지는 대단하네. 힘들겠다. 나는 산타 할아버지가 스마트폰을 선물로 주면 좋겠다."
"아니 우리 아들, 지나쳐. 세상에 만상에. 그게 무슨 말이야. 일곱 살짜리가 스마트 폰이 다 뭐야? 산타 할아버지가 무슨 갑부인 줄 아느냐?(=나는 절대 그런 것을 너에게 선물할 마음이 없다. 내 폰 바꾸는 게 더 시급하다.=내가 준비한 건 색종이 500장이랑 종이접기 책인데 스마트폰 그건 너무 위화감을 조성하는 아이템이잖아. 마침 책에 스마트폰 접는 방법이 있어. 일곱 살 어린이에게 딱이지.)그렇게터무니없는 선물을 바라다니 어린이가 벌써부터 그렇게 값비싼 물건을 소유하는 것은 교육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아. 그리고 여태 색종이랑 종이접기 책이 갖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 부르더니 갑자기 품목을 바꾸어 버리면 이 엄만 어떡한단 말이냐? 엄만 저것들을 반품하고 싶지가 않아. 진작에 수취확인도 눌러 버렸고 후기도 이미 작성했는걸. 사람이란 자고로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법이니라. 그냥 색종이랑 종이접기 책으로 밀고 나가자 아들. 이미 진작에 로켓 타고 집에 와 있단 말이다 이것아. 유치원과 집 말고 딴 데 가는 곳도 없고 엄마가 옆에 있는데 스마트폰이 웬 말이더냐. 제발 실현 가능한 소원을 좀 말하려무나.(=엄마 예산도 생각해 줘야지. 그래야 그나마 하나라도 건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해.=그렇게 분에 넘치는 선물을 기대하다가는 넌 아예 선물 대상자 명단에서 제외될지도 몰라.) 허무맹랑한 소원은 접어 두고 너는 아무 걱정 하지 말고 그저 밤새 깨지 말고 아침해가 솟아오를 때까지 실컷 잠이나 자거라."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래? 우리 아들은 그게 갖고 싶어? 판단은 산타 할아버지가 하시겠지."
이게 다였다.
아들이 바라 마지않았던 스마트폰은 애초에 선물 리스트 명단에 예비 후보 자격으로도 못 올랐음은 물론이다.
2년 전 일곱 살이던 아들은 평소에 노래 부르며 산타 할아버지에게 공공연하게 구체적인 선물을 요구해왔으므로 선물 준비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스마트폰이라니.
이게 웬 다 받은 선물 반품하는 소리냔 말이오.
<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 딸 편(2022) >
"엄마, 이번엔 정말 나 밤에 잠 안 자고 산타 할아버지가 어디로 들어오는지 꼭 알아내야겠어."
"밤을 새운다는 거야?"
"응. 도대체 산타 할아버지는 어디로 들어오는 거지?"
"글쎄다, 엄마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안 자고 있으면 산타 할아버지를 볼 수 있겠지?"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불 켜 놓고 잠도 안 자고 있으면 산타 할아버지가 신경 쓰일 것 같은데? 부담스럽겠다.(= 네가 만에 하나, 행여라도 정말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불상사가 일어난다면 엄마 계획에 크나큰 차질이 빚어진단다. 해 떨어지면 그냥 미련 없이 잠들거라.)"
"아니야, 저번에도 잠들어버려서 확인을 못했단 말이야. 올해는 절대 안 잘 거야! 아무래도 엄마 아빠가 산타 할아버지 같은데 언제 선물을 놓고 가는지 꼭 확인해 볼 거야!"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어린이가 밤 9시가 되면 잠을 자야지. 밤을 새긴 무슨 밤을 새운다고 그래? 일찍 자는 어린이한테 선물을 주지 잘 시간에 잠도 안 자는 어린이한테는 선물도 안 주실 걸? 그러니 일찌감치 포기하시고 그냥 자거라."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대신에
"밤새우려면 배고플 거야. 저녁밥이나 많이 먹어둬, 든든하게.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 오시면 엄마도 좀 깨워줘. 엄마도 보고 싶어. 정말 궁금하다."
라고만 시치미 뗐다.
벌써 몇 년째 실패했는지 모른다.
딸은 3년 전부터(그러니까 의무교육을 받기 위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긴가민가 하며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뜻밖에도 의무교육의 병폐(?)가 드러났다.)
초등생들의 교우 관계가 산타 할아버지의 실체를 파헤치는데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솔직히 입학 전까지만 하더라도 엄마 아빠의 철저한 보안 속에서 산타 할아버지의 신비주의 콘셉트는 안전했었다.
그러나 사귀는 친구들이 점점 많아지고 그들의 (손위) 형제자매로부터 폭로된 산타 할아버지의 실체는 아이들의 환상을 와장창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밀고 나가는 부모덕에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는 상태로 몇 해가 흘렀던 것이다.
벌써 몇 년째 밤을 새우겠다고 버티고 있지만 남매에게는 매년 밤 11시가 고비였다.
안타깝게 도 그 어린이들은 끝내 잠들고 말았고, 나는 알람을 맞추어 놨다가 아이들이 잠든 후 몰래 도둑 선물을 놓고 갔었다.
올해는 기필코 밝혀내고 말리라는 누나와 달리 동생은 실속주의를 추구했다.
"누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잠 안 자고 밤 새울 거래. 우리 아들도 그럴 거야?"
"에이, 엄마. 그럴 필요가 뭐 있어? 선물만 받으면 되지. 힘들게 밤은 왜 새? 어차피 자고 일어나면 선물은 와 있을 텐데. 잠을 자야지, 피곤하게."
"그래. 네 말이 맞다."
몇 년 사이 아들은 실속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9살의 남다른 클래스이다.
그나저나 아들 선물은 도착했는데 딸 선물이 감감무소식이다.
게으름을 피우다가, 서로 미루다가 이 사태가 벌어졌다.
남편은 분명히 주문을 했다고 했는데 두 번은 더 왔어야 할 시간인데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
로켓에 차질이 생겼나 보다.
로켓 발사가 안된 건가?
택배 대란이 일고 있으리라.
하필 폭설주의보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급히 눈보라를 뚫고 대체할 무언가를 찾아 한동안 배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진심을 말하자면 이 일도 이젠 슬슬 재미없어진다.
속아주는 맛이라도 있으면 흥이라도 나지.
자꾸 엄마 아빠가 범인(?) 아니냐고 닦달해대는 통에 부모의 사기가 많이 떨어진 지 오래다.
자녀의 끈질긴 추궁과 의심은 제 부모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게다가 이미 뭔가 확실한 물증을 잡은 것처럼 큰소리치는 딸과 선물 만능주의에 빠져 설레는 마음도 없이 그저 '선물은 받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실속주의자 아들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시들해진다.
그만하면 나도 할 만큼은 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내가 먼저 산타 할아버지에게 간절히 빌고 싶다.
"제발, 크리스마스 전까지는 택배가 도착하게 해 주세요. 다른 건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어요. 제 소원은 이것뿐입니다. 이젠 저도 막차 탔어요. 내년부터 힘들 것 같아요. 이미 다 들킨 것도 같고요. 안전문자가 이렇게도 많이 오잖아요. 집에 얌전히 있으래요. 아무 데도 나가지 말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