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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09. 2022

미안하다, 거짓말했다.

산타 할아버지를 빙자한 엄마의  때늦은 변명

22. 12. 8. 의심하면서도  긴가민가...

< 사진 임자 = 글임자 >


< 사건 발생 보고 >

누가 : 남매의 엄마

언제 : 2021년 12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아침까지

어디서 : 4인 가정의 보금자리

무엇을 : 크리스마스 선물을 제 돈으로 사놓음

어떻게 : 산타 할아버지를 빙자하여 선물을 준비하고 두     자녀를 기만함

왜 : 그래야 할 것 같은 의무감  때문  


"거 봐. 엄마. 이거 그거 맞잖아. 내가 그때 누나 방에서 본 거. 누나 봐봐. 맞지?"

"어? 진짜네. 맞아. 이렇게 생겼었어."

"아니 이 애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엄마는 모르는 일인데."

"에이 엄마, 괜찮아, 사실대로 다 말해도 돼."

"그래. 사실은 엄마가 우리 주려고 선물 사놓고 산타 할아버지가 준 것처럼 한 거지? 그치? 솔직하게 말해 봐."

"아니라니까 진짜 너희들 왜 그래?"

"아닌데. 분명히 이건 엄마가 산 거야. 그때 내가 본 거랑 똑같아. 그치 누나?"

"내 말이 맞잖아. 노란색 바탕이고 가방 모양에 검정 줄이 두세 개 있고. 딱 그때 그거네 뭐."

"엄만 모르겠다. 그나저나 너흰 좋겠지. 산타 할아버지가 이런 선물도 다 주고."

이미 들통났다 싶었지만, 아무리 내가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둘러대고 변명을 해도 아이들 앞에서 틈을 많이 보였던 엄마를 그들은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사람이, 한번 신뢰를 잃으면 이렇게나 무서운 거로구나.

뒷감당이 안된다.


이미 크리스마스 아침은 밝았고 나는 (무척이나 허술했지만, 그 어이없는 실수에 남편에게까지 지청구를 잔뜩 들었지만) 할 일을 무사히(전혀 무사히도 아닌데, 우여곡절 끝에) 마쳤다는 생각에 반은 뿌듯했고, 반은 찜찜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고. 어떻게 했길래 애들이 다 눈치챈 거야?"

그 양반이 또 나섰다.

"평소엔 제 누나 방에 잘 들어가지도 않더니 하필이면 그날 바로 들어갈 게 뭐야."

"할 거면 제대로 했어야지. 애들이 진작에 눈치챈 거 같던데?"

"몰라. 이미 다 끝난 일인데 뭐 하러 자꾸 말해?"

가뜩이나 임무 완수보다는 실패에 가까웠음을 스스로도 느끼고 뼈저리게 반성하며 다음에는 좀 더 치밀하고 계획적이며 파격적이기까지 한 전략으로 갈아타야겠다고 굳게 다짐한 후였는데, 그렇잖아도 나도 속상했는데 한겨울이라 내가 추울까 봐 옆에서 기름을 잔뜩 들이부어 활활 불을 지펴 주신다.

당신이란 사람, 참 따뜻하기도 하지.


아이들은 제 엄마의 노력이 눈물겨워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도(엄마의 소행이란 것을 이미 다 안다는 눈빛으로) 자기들끼리(종종 제 아빠와 합세해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 엄마가 얼마나 허술한 사람인지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젠 더 이상 안 속겠네. 내년엔 어떻게 해야 한담?'

본격적인 맹추위가 닥치기도 전에 겨우내 이를 어찌 감당해 낼까 하며 지레 걱정하는, 걱정도 팔자인 사람처럼 작년 크리스마스 아침에 나는 이듬해 크리스마스를 걱정하고 있었다.


"자기도 생각 좀 미리 해 봐. 미리미리 준비를 안 하니까 이렇게 됐잖아. 내년엔 어떻게든 안 들키고 넘어가야 할 거 아냐?"

"왜 나보고 괜히 그래?"

"미리미리 애들한테 수요 조사 좀 해 놓고. 은근슬쩍 알아 두란 말이야. 뭘 갖고 싶어 하는지."

"알았어."

하지만 바쁜 그 양반이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으며, 언제 관심이나 있었던가?

올해도 나 혼자만 끙끙 앓고 있다.


"얘들아, 엄마 말 좀 잘 들어라. 그래야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시지."

"에이~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어디 있어? 그동안 엄마 아빠가 우리한테 선물 줬던 거 아니야?"

딸은 이제 확실히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깨달은듯하다.

"누나, 그래도 모르지.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있을지도. 엄마 말 잘 들으면 진짜 내가 갖고 싶은  줄지도 몰라."

아들에겐 희망이 남아 있다.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아들을 상대로라도 영업(올해가 아마도 마지막이 될)을 해야 할 의무감을 느꼈다.

아이들이 자라날수록 기쁨도 행복도 더 배로 늘어나지만 더 이상 산타 할아버지를 믿지 않고, 믿기는커녕 오히려 의심하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은 어린이가 아닌 것 같은 서글픔에도 빠진다.

그리고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도 선물을 안 주시지만 거짓말하는 어른에게는 그 과보를 톡톡히 받게 하신다는 걸 알았다.


"나는 6학년 때까지도 산타 할아버지 믿었었는데. 요즘 애들은 너무 일찍 실체를 알아버리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러게. 나도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진짜로 믿었었어."

평소와는 다르게, 보기 드물게 남편과 뜨거운 동지애를 느끼며 우리는 회상에 잠겼다.

그 옛날 어렸던 날, 환상이 있고, 기대가 있고 설렘이 있었던 까마득한 그와 나의 어린 시절이 이제는 내 두 아이에게 어떤 것으로 다가올지, 아직은 그 순수함을 더 지켜주고 싶은 욕심에 엄마는 욕심을 자꾸 부리게 된다.

욕심인 줄 알면서도 욕심을 부리는 어리석은 중생이여.


그나저나, 올해는 도대체 뭘 준비해야 하나?

정말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신 건 아닐까 하고 착각하도록, 엄마 아빠가 아니라 아이들만의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그분이 잠깐이나마 기쁨을 전해줄 수만 있다면, 찾아가 진심으로 조언을 구하고 싶다.

부모의 흔적이 남지 않을 선물로, 아이들의 의심을 단번에 없애 버릴 그런 것으로.


산타  할아버지의 댓글을 기다립니다.

"9세 남아, 11세 여아,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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