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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31. 2022

헤어질 때는 가내 수공업을 해요.

직장 사람들과 마무리하는 법

22. 12. 29. 이런 걸로 성의표시가 된다면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젠 다음 주면 여기 직원들하고도 헤어지는데 커피라도 한 번 사고 갈까?"

"사람이 어째 다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그래? 그것도 괜찮긴 한데, 내가 수제청 만들어 줄게. 그거 선물하는 건 어때?"

"나야 좋지. 근데 힘들잖아."

"커피 그건 아무나 살 수 있는 거지만 좀 성의가 없는 것 같잖아. 그동안 직원들이 많이 도와주고 그랬는데 감사의 표시로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싫음 말고!"

"아니야. 싫긴 왜 싫어? 나야 고맙지, 해주면."


그리하여 또 나는 가내수공업에 돌입했다.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고 잊을 만하면 가동되는 간헐적 가내 수공업, 이번 물량은 그 양이 제법이었다.


남편은 전입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이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2년 가까이 함께 한 직원들에게 나도 고마운 마음이 들어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성의를 표시하고 싶기도 했다.

그의 근무지에 몇 차례 그런 식으로 내가 만든 수제청을 들려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냥 커피를 사는 것보다는 다들 좋아했다고(남편은 그렇게 느꼈다고 했는데 사실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나도 그렇게 그냥 믿어버리기로 했다. 과거 나의 직원들에게도 종종 그런 식으로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도 좋아했다고 믿었다.) 했으므로 특히 반색하며 환영하는 분도 계셔서 나름 생각해 내 것이 그것이었다.


그동안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면서 어찌 좋은 일들만 있었으랴.

때론 얼굴도 붉히기도 했겠고 업무상 부딪치며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도 피차 있었을 테고 각자 말은 못 해도 불편한 마음을 가진 채 어쩔 수 없이 매일 복닥거려야 하는 순간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듯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니 어찌 보면 가족들에게서 느끼는 미운 정 고운 정도 꽤 들었을 것이다.

"여기 정말 만만치 않아. 진짜 힘들어."

종종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남편은 만만치 않음의 '새로고침'을 연신 해대며 애로사항을 표출했다.

"그래도 지금 거기가 최고인 줄 아셔. 딴 데 가면 더 해. 갈수록 더 할걸?"

길지 않은 직장 생활을 하며 새로 발령을 받을 때마다 새 근무지가 어렵다, 힘들다 느끼면서도 그나마 그전이 나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던 내가 새로 닥친 남편의 고난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그뿐이었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거니와 남편의 간증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므로.

"그렇긴 해. 지금 있는 곳이 제일 힘든 것 같아도 또 딴 데 가면 더한 사람 만나고 그러잖아."

"그래도 지금 거긴 특별히 악한 사람도 없었고 다들 좋았잖아. 자기 빠져서 거긴 완전 신났겠는데? 앓던 이 빠진 것처럼 속 시원하다고 안 그래?"

"응, 그런 것 같긴 하더라. 나 간다고 하니까 다들 축하한다면서 엄청 좋아하던데?"

"왜 안 그렇겠어. 거긴 완전 축제 분위기겠네?"

"어떻게 알았어?"

또 서로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주고받았다.


"특히 사무관님이 그동안 만난 분들 중에서 가장 양반이셨지."

간혹 엉뚱하게 나를 화젯거리로 올리며 살짝 내 심기를 불편하게 하시긴 했어도 옆에서 보고 들은 바에 의하면 정말 양반이셨다.

나와 관련된 발언만 삼가면 그 이상 좋을 수가 없는데, 나는 마치 '다 좋은데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셔서 문제라는, 술만 안 마시면 최고의 남편'이라고 제 남편을 두둔하는 아내처럼 '나랑 연관된 말씀만 하지 않으신다면 최고의 사무관님'이라고 마지막에는 그분을 한껏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어차피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헤어지는 마당에 무얼 더 원망하고 탓할 것이며 그게 이제와 무슨 의미가 있으랴.그게 다 걱정스러운 마음에서 그러신 거란ㅊ것도 잘 안다.

그리고 남편이 전입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주셨고 적극적으로 부추겨 주셨으며 열과 성의를 다하여 남편의 시험 준비에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끼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마치 당신이 전입 시험을 치르듯 완전히 몰입해 정작 당사자인 남편을 뜨악하게까지 만드셨다.

만에 하나라도 남편이 불합격했다면 그분은 크게 상심한 나머지 울어버릴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할 만큼 열성적이셨다.

그분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합격해야만 했다.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 그 안의 모든 사람들과 다 사이좋게 잘 지내기란 어렵고도 매우 힘든 일임을 잘 안다.

그래도 그 정도면 무난하다 싶은 분들과 큰 마찰 없이(마찰이 있었어도 없어야 한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마무리는 아름답고 싶은 소망이다. 가끔씩 티격태격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게 큰 흠까지는 될 수 없으리라. 지난 일들은, 특히 안 좋은 기억은 다 묻어버리자.) 무사히 끝을 맺을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손바닥만 한 병 12개를 구입해 자몽청과 레몬청을 각각 2개씩 담고 포장을 하고 병이 부딪쳐 금이라도 갈 새라 틈에 완충재를 채웠다.

종이가방에 2개씩 담아 남편의 두 손 가득 들려 보내니 자식들 장가, 시집보내는 어미 마음처럼 뿌듯하기까지 하다.

솔직히 목요일 밤늦게까지 포장을 하느라 힘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나, 수제청을 만들면서도 '내가 괜히 한다고 나섰나?'싶은 게 살짝 후회가 될 정도였으나 결과물을 보고 있노라니 그 마음이 싹 가시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마음에 들어 해야 할 텐데.

그것들을 씻는 과정부터가 정말 '일'이었으므로

"내가 만들어서 줄게. 12 병만 만들면 되지?"

라며  내 입으로 내가 지은 업보를 도로 물릴 수 없어 묵묵히 그 과보를 받을 뿐이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나는 다시 한번 말을 하기 전에 좀 더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절실히 느꼈다.


그분들과는 헤어지고 이제 다음 주면 새로운 사람들과 근무하게 될 남편은 저 대단한 가내 수공업이 얼마나 수고로우며 경건하기까지 한 일이지 눈곱만치도 모르면서 한 마디를 했다.

"이거, 발령지로 다음 주에 갈 때도 또 들고 가야 되는 거 아니야?"

12병의 일거리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정성도 좋지만 '편리'는 더 좋은 것이라고.

지체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다들 커피 좋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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