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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11. 2023

결혼 12년째, 여전히 한결같은 사람들

이러기도 쉽지 않을 거야.

23. 1. 9. 데면데면한 부부에게도 봄은 오는가

<사진 임자 = 글임자 >


"저번에 내 생일에 남편이 꽃 선물해 주더라."

"우와, 넌 남편이 그런 것도 해 줘? 그래도 네 생일은 알고 있단 거잖아?"

"그럼 뭐 해? 내 카드로 긁고 왔는데."

"그래도 꽃을 줬다는 게 어디야? 근데 꽃이 도대체 뭐야? 먹는 거야?"


얼마 전 친구와 나눈 대화다.

'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생일날에 남편이 아내에게 주어도 징역살이를 한다거나 엄청난 벌금을 내는 등의 법을 어기는 행위가 아닌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꽃을 받았다는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면 사람을 해치는 물건도 아닌 듯하다.


세상에는, 

놀랍게도, 

설마설마했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듣고도 믿기지 않지만, 

생일을 챙겨주는 남편이 있다고 한다.

평소에 종종 다투다가도 서로 생일은 챙기고, 결혼기념일엔 감히 외식까지 감행한다는 부부를 안다.

법에도 안 나와있는데 왜들 그럴까?

의무사항도 아닐 텐데 말이다.


"엄마, 결혼기념일이 언제야?"

"엉? 1월 8일인데."

"그럼 지났네?"

"정말 그러네."

"갑자기 결혼기념일은 왜?"

"그냥."

딸은 가끔 뜬금없는 것들을 물어온다.


올해로 결혼한 지 12년이 되었다.

그동안 한 번도 나나 남편은 결혼기념일을 챙겨본 역사가 없다.

실수로라도 한 번쯤은 둘 중 한 명이라도 기억할 만할 법도 한데 말이다.

작년엔 내가 일을 그만두는 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그전에는 서로 둘 다 바쁘게 일하느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다.


매년 연말이 되어 가면 생각이 난다.

나의 음력 생일과 그 후 6일 후의 남편의 음력 생일 그리고 또 며칠 후 닥칠 결혼기념일.

작년에 내 생일을 용케 남편이 기억해 내서 아이들과 부산 떨며 케이크 하나 만들어 주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밥 한 그릇도 미역국 한 그릇도 없었다.

그럴 수도 있다.

근무지를 옮겨야 했으므로, 감사도 겹쳤었고, 시험도 봤고, 어쨌거나 아주 바쁜 연말을 보낸 사람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작년에 나도 처음으로 결혼한 후 가장 그럴듯하게 남편 생일상을 차려 주었었다.

그러면서 잠시 생각했다.

곧 결혼기념일인데 뭘 해야 하나?

평소에 하던 대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결혼할 땐 언제 1년이 가고 10년이 가나 까마득했는데 벌써 이렇게나 오래 살았다니.

지금 지나 놓고 생각해 보면 나이 먹는 것만큼이나 나의 결혼 생활이야말로 '결혼 무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올해로 12년째,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역시나 아무 탈도 없고 아무 사건도 없고, 기념일이라는 눈치도 서로 못 채고 그냥 8일을 넘겼다.

이렇게나 우리는 지고지순하고, 일편단심인 사람들이다.

어쩜 이렇게도 한결같을 수 있는 건지 나도 놀라울 따름이다.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면

'이번엔 좀 기념일을 챙겨 볼까?'

싶다가도 어영부영하다가 때를 넘기기 일쑤다.

자고로 안 하던 짓을 갑자기 하면 사람이 어떻게 된다고 했다.

아이들을 키워야 하므로, 지금 내가 어떻게 되면 안 되니까 엉뚱한 짓을 말아야지.

기념일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남편을 탓하지는 않는다.

피차 무관심한 생활을 하는 사이니 상대방을 탓할 일은 전혀 아니다.


"너 그렇게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그런 거 안 챙겨 버릇하면 버릇돼서 나중에 정말 아무것도 안 챙기고 살게 돼. 일부러라도 챙겨야지. 너무 신경 안 쓰는 거 아냐?"

오래전에 내가 저런 것들을 전혀 안 챙기고 산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언니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맞다.

생일, 결혼기념일 안 챙기던  신혼 버릇, 중년까지 가는 중이다. 황혼까지 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혼 때도 결혼기념일을 챙겨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기념일은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가끔 그런 날을 왜 기념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정말 내가 기념하고 싶은 것은 그런 날이 아니다.

단 하루만 특별하게 기념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다.

매일매일을 소중히 생각하고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을 뿐이다.

특정한 날을 요란하게 보내기보다 평소에 관심을 가지는 사이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결혼은 뭐하러 했나(물론 이럴 줄 몰랐으니까 했겠지만 말이다.), 그런 마음이 들 때도 있는데 억지로 하루를 찾아 먹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다가도 두 아이들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수 백 생의 인연을 거쳐 현생에 부부로 맺어진다는데, 그게 굳이 나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가도, 남남이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게 보통의 인연은 아닌 것도 같다.

어쩌다가, 내가 도대체 어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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