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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16. 2022

그날,남편이 만든 생일 케이크에 들어 있던 것은?

3년 전 생일날의 참사 - 그 속편

22. 12. 13. 정성이 다였다.전부였다.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빠가 결혼하고 엄마 생일을 몇 번은 못 챙겨줬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엄마를 생각하고 있어."

때아닌 남편의 고백에 나는 뜨악해졌다.

"아니지, 아빠. 객관적인 사실을 말해야지. 몇 번이 아니라 많이 안 챙겨줬잖아."

딸이 아빠의 발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래. 많이는 못 챙겨줬지만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니까 그런 거지."

"그럼 아빠가 알람을 맞춰놓으면 되잖아."

딸이 틀린 말은 안 했다.

"그래 그렇긴 한데 아빠도 바쁘다 보면 깜빡할 수도 있지."

"그래도 어떻게 알람까지 맞춰놓을 걸 깜빡할 수가 있어?"

딸은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래. 알았어. 아무튼 그래도 아빠가 진심으로 엄마를 사랑해."

에구머니나, 망측해라.

누가 들을까 무섭다.


말은 술술 잘하신다.

막힘없이 뱉어내는 그 말에 오히려 더 신뢰가 가지 않았던 것은, 단지 나만의 해묵은 감정 때문이었을까?


"얘들아, 얼른 엄마 생일 케이크 만들자."

퇴근을 하고 오자마자 남편은 아이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여보, 케이크 시트 어딨지?"

"김치 냉장고."

"생크림은 어디 뒀어?"

"김치 냉장고."

"이거 펴 바를 게 있어야 하는데? 그거 어딨지? 잼 펴 발라 먹는 거 그거 말이야. 안 보이네."

그는 기어이 나를 출동시켰다.

항상 있던 수저통에 얌전히 들어가 있었는데 왜 그게 안보일까.

등잔 밑이 어두운 나의 기쁨, 나의 고통.


"자, 이제 우리가 엄마 케이크를 직접 만들 거야. 누가 먼저 해 볼래?"

갑자기 축하 편지를 쓴다고 두 아이들은 거실을 뛰어다니며 순식간에 편지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나를 시도 때도 없이 불러 댔다.

과일은 어디 있는지, 스패출러는 어디에 뒀는지, 케이크를 놓고 만들 접시는 어떤 걸 쓰면 좋을지, 한시도 나와 떨어져 있고 싶어 하지 않는 그 사람.

초에 불을 켜야 하는데 라이터는 못 봤냐는 둥, 케이크를 자를 칼로 어떤 걸 쓰면 좋겠냐는 둥 하면서 하면서 나를 호출하는 통에 생일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라면이나 간단히 끓여먹자고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차라리,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까. 제발~ 그냥 가만히만 있어주는 게 도와주는 거야. 케이크 같은 거 안 만들어도 된다고! 그런 거 안 만들어줘도 하나도 안 서운해. 제발 내 일거리만 만들지 말아 줘. 어떻게 된 게 생일날만 되면 내 일거리만 더 늘어나게 하는 거야? 저 뒷감당은 또 누구 차지가 되는데? 요란하게 다 벌여놓고 뒤처리는 나 몰라라 할 거면서. 이왕이면 준비부터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해 주면 오죽이나 좋아? 그것도 아니면 아예 시작을 말든지. 엎드려 절 받는 것도 아니고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일 크게 벌이면서까지 꼭 이래야겠어? 그냥 받을 걸로 칠게. 우리 조용히 그냥 넘어가자. 평소에 엉뚱한 소리나 한 번씩 하지 말고 제발."

이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물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며칠 전부터

"얘들아, 곧 엄마 생일인데 이번엔 아빠랑 같이 케이크 만들어서 엄마 주자."

이러면서 사방팔방에 자신이 결혼 11년 만에 처음으로 아내의 생일 케이크씩이나 만들어 보겠다고 소문을 내셨다.

그런 건 나 없는데서 조용히, 몰래 준비해서 짜잔~ 하고 내놓는 게 좀 그럴듯하지 않을까, 하고 또 나 혼자만 생각했다.

'혹시 또 쇼핑을 과하게 하셨나?'

싶기도 했다.

당분간 반가운 택배 아저씨를 종종 맞이하면 그만이다.


아이들은 서로 신이 나서, 저희들 생일날보다도 더 열심히 케이크를 만들었다.

"이야~ 이거 진짜 파는 케이크 같다. 그치 얘들아? 어때?"

"우와, 아빠 진짜 그럴듯한데? 진짜 잘 만들었다."

"정말 그렇네. 우리가 만들었지만 진짜 잘 만들었다."

세명의 멤버가 요란스럽게 뭔가를 만드는 동안 나는 얌전히 거실에서 독서를 했다.

중간중간 벌떡 일어나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야지!"

라고 간섭하고 싶었으나 꾹 참으며 인고의 시간을 견뎌냈다.


"기념사진 한 장 찍어야지."

"이래 가지고 무슨 사진이야. 됐어. 그냥 케이크나 찍어."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아 외출도 삼가고 초췌한 얼굴로 앉아 있는 내게 남편은 들입다 핸드폰을 갖다 댔다.

우리 집 멤버 중 그 어느 누구도 기념사진을 찍을 만한 행색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인지 뻔히 보고도 그런 말을 해? 내가 아침부터 좀 안 좋다고 말했어 안 했어? 제발 분위기 파악 좀 해! 사진 못 찍어서 죽은 구신이 붙었나  왜 자꾸 사진에 집착을 하는 거야? 난 안 찍고 싶어. 안 찍을 거라고!"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사진을 찍게 된다면 그래도 이왕이면 예쁘게 단장하고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몸이 좋지 않으니 생일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기만 했다.

"자기야.이거 사진 찍어서 어머님 보여드려. 내가 직접 만들었다고 하고"

"됐어. 보여주긴 뭘 보여줘?"

확신하건대, 하나뿐인 사위가 직접 만드신 케이크같은 것에 엄마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시리라.

"자,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자. 먼저 엄마부터."

"우리 아들 딸이 아빠랑 같이 케이크도 맛있게 만들어 주고 고마워."

어느새 훌쩍 자라 이렇게 엄마 생일을 다 챙겨주는 어린이들이 되었는지 진심으로 잘 자라 준 것에 대해 고마웠다.

갑자기 애교쟁이 아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엄마. 사랑해요."

"그래. 엄마도 우리 아들 사랑해."

"엄마, 나도 사랑해요."

"그럼. 엄마도 우리 딸 사랑하지."

양 쪽 옆구리에 아이들을 한 명씩 끌어안으며 뽀뽀를 해 줬다.


그때였다.

"엄마, 내가 더 엄마 사랑해!"

아들이 소리쳤다.

"아니야. 내가 더 사랑해."

딸이 저돌적으로 나왔다.

"아니라니까! 내가 더 엄마 사랑한다고!"

"아니라고! 내가 더 사랑한다고!"

아들과 딸이 나를 사이에 두고 난데없이 '누가누가 더 사랑하나'대결을 시작했다.

양 옆구리에 한 명씩 매달려 아이들은 자기가 더 엄마를 사랑한다며 외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더 이상 끼어들 옆구리가 없어 소외당한 40세의 한 남성은 갈 곳을 잃고 한 마디 했다.

"얘들아, 그만해 그만!"

남편이 평정했다.

사람의 옆구리가 두 군데뿐인 것이 그 순간 참으로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나는 저 사람의 돌격에서 무사할 수 있으리니.


몇 번이나 '내가 더 사랑해'를 사이좋게 주고받고 한참 만에야 제 아빠에게 제지당했다.

"알았어. 알았어. 우리 아들 딸이 엄마 사랑하는 거 잘 알지. 우리 아들이랑 딸이 엄마 자식들이어서 엄만 정말 자랑스럽고 행복해."

행복에 겨워 나온 나의 진심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내 남편이라서 정말 자랑스럽고 행복해."

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 왔으므로.

또한 산타 할아버지는 거짓말하는 어른에게는 선물을 안주실 것이므로.


그나저나, TV를 보면 그런 장면이 한 번씩 보이던데.

케이크나 아이스크림 속에 바비 인형들도 다 끼고 있는 반짝거리는 거 하나 달린 구리반지라든지, 황금빛 찬란한 열쇠 덩이라든지 어쨌거나 불순물 혹은 귀금속 같은 거 말이다.

'이 양반이 혹시?'

언감생심 얼토당토않은 기대를 하며 조신하게 케이크를 씹어 보았다.

조심히 씹다가 만약에 뭔가가 씹히면,

"어머? 이게 다 뭐야? 자기가 준비한 거야? 어쩜 난 생각도 못 했는데. 정말 고마워. 역시 자기가 최고야!"

라며 실컷 호들갑을 떨 준비를 나는 이미 마쳤다.

거침없이, 너무나 부드럽고도 달콤하게 케이크는 녹아내렸다.

얼마 가지 않아 내 기대도 동시에 폭삭 녹아내렸음은 물론이다.


그 케이크 속에는 그러니까,

뭐가 들어있었냐면,

빵 반, 생크림 반,

그게 전부다.

남편의 서프라이즈 선물에, 와그작와그작 씹다가 내 어금니가  나가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치과를 방문할 의향이 내겐 충분히 있었으나...

하긴, 사람이 변하면 어떻게 된다더라?

그리되지 않으려고, 한 오백 년, 천년만년 만수무강하시려고 그 양반은 갑자기 변하는 일 따위 하지 않았다.


혹시 택배로라도 뭔가 도착하는 게 아닐까 싶어 매일 외출도 않고 조신하게 집에서 그 무언가를 기다렸다, 일주일 전부터.

과연 거의 매일, 하루에도 두세 개의 택배가 도착했다.

성인 남성 100 사이즈 니트가 두 벌, 성인 남성 100 사이즈  롱코트가 한 벌, 265 사이즈의 구두 한 켤레, 성인 남성 양복 2벌, 넥타이 3개가 전부였다.

85 사이즈, 50Kg도 채 안 되는 내가 걸치기엔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운 사이즈였다.

니트, 저건 건조기에 몇 번 집어던져 넣고 돌리면 얼추 내 몸에 맞을 만큼 수축할지도 몰라. 그러면 비로소 나는 건조기를 산 보람을 느끼게 될 테지. 많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나는 루스 핏 내지는 박스핏이라며 뻔뻔하게 입고 다니겠어.

지금 이 남편 하고도 사는데 그까짓 거 하나 못하겠어?

롱코트 저것도 두 동강이 내서 한 벌 더 만들어 입을 수도 있을 거야.

구두는?

좀 난감하네?

신어보니 걸리버 신발 같다. 더 이상 내 발은 자라나지 않을 것이다.

갱년기가 내일모렌데.

과감히 이건 포기하자.  

게다가 남성 양복은?

저걸 내가 어디다 쓴담?

넥타이는 헤어밴드로라도 환골탈태할 수 있겠지?

하나는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자리보전하며 침묵시위를 하리라.


마침내 어젯밤 네모 반듯한  택배가 도착했다.

상자가 크기가 제법 됐다.

어머나, 그럼 그렇지.

역시 그이는 내 선물을 잊지 않았어.

그러나,

그것은 자동차 바퀴에 쓰는 체인이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저걸 친친 감아 두르고 그는 나를 어디로 내몰 심산인 걸까?


살다 보면 사는 게 참으로 고된 일이라는 걸 절실히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까마득하고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지 못해 쓰러질 때, 내 마음과는 전혀 다른 누군가의 마음이 내게 잘 벼려진 칼날이 되어 나를 할퀼 때, 무기력해지고 온 힘이 다 빠져나가 버릴 때, 그런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지금 이렇게 버텨내고 있는 건 저런 소소한 기쁨(내지는 어마어마한 나만의 뒷감당의 시간)의 순간들이 나의 온 우주가 되어 받쳐주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우주가 되어 준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나도 그들의 든든한 우주가 되어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내 생일이 맞긴 맞아? 음력이라서 나도 매년 확인해 봐야 돼. 아직 확인도 못했는데."

이번 음력 생일이 뭔가 부실한 것 같다 싶으면 꼬투리를 잡아 냉큼 다가 올 양력 생일을 한 번 더 챙겨 먹어야겠다고 불량한 마음을 품고 나는 따져 물었다.

어차피 내년엔 우리나라도 만 나이로만 통일을 한다고 하니 이참에 나도 앞으로는 양력 생일로 통일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올해까지만이다.

이번까지만 남편을 시험에 들게 하자.

40세 남성의 눈빛이 심하게 요동쳤다.


"이맘때쯤일 거야. ... 아... 아마... 맞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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