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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21. 2022

40세 어느 블린이 이야기,하루 방문자 8명의 행복

그의 우쭐함 혹은 의기소침에 대하여


22. 10. 10. 나는 결코 요구한 적도, 관심도 없는 자료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자기야, 빨리 카톡 봐봐. 내가 보낸 거 봤어? 얼른 확인해 보라니까 왜 안 봐?"


호들갑을 떠는 걸 보니 또 무슨 사달이 났구나.

저럴 경우 크게 두 가지로 짐작이 된다.


첫 번째는 정말 급히 뭔가를 사고자 하는 욕구가 미친 듯이 올라오는데 마침 남의 편이 비싸지 않다고 착각하는 물건이 급매로 올라와 있을 때,

두 번째로는 하도 다양해서 예측 불가다.

그날이 그 두 번째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어느 경우이건 그렇게 호들갑을 떤 것에 비해 내겐 모든 게 그저 심드렁한 일이 될 뿐이다.


올해 육아휴직을 했던 봄, 남의 편은 '티스토리'를 시작했다.

첫날엔가 방문자가 한두 명 정도 있었고, 그는 감격에 겨워했으며, 얼마 후 연이은 '빵빵(0명) 한 방문자의 수치에 절망했고 이내 의욕을 잃었다.

시작할 땐 아무 부담 없이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점점 집착하기 시작했다. 시도 때도 없이 확인했다가 시무룩해지고 한동안 발길을 끊더니 그러다가 다시 며칠 들락날락하던 어느 날은 방문자가 4명이나 왔다는 믿기 힘든 속보를 내게 전해주었는데 이는 곧, 남의 편 혼자서 검색이 되는지 확인을 해 보려고 들락날락한 결과가 빚어낸 참사였다, 고 짐작했다.

그러고는 7월에 복직을 해서 속세로 돌아가 '티스토리'는 뒷전이었다.


언젠가 갑자기 그 얘기가 나와서

"근데 자기 티스토리 아직도 안 죽고 살아있어? 너무 한 거 아니야? 나도 한 번도 안 가봤지만 주인은 한 번씩 가 줘야 하는 거 아냐?"

했더니

"그러게. 안 가본 지도 오래됐네."

라면서 그날에서야 드디어 순찰을 했나 보다.


"하루에 8명씩이나 왔어. 대단하지?"

"우와 진짜 대단하다."

(* 나는 잘 모르지만 티스토리는 정말 방문자가 늘기 힘들다고들 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렇다면 정말 나름 대단한건지도 모르겠다.)



남의 편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들까지 급히 소집했다.

철없는 9살, 11살 남매가 모니터에서 눈을 뗄 줄을 모른다.

"와, 아빠 정말 사람들 많이 온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오지? 아빠 진짜 인기 많다."

"글쎄, 아빠가 크게 시간 안 들이고 그냥 편하게 썼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꽤 오네?"

이 양반이 또 잡솨서는 안 되는 것을 잡수셨나?

잡수신 것은 아마도 근자감?

적절한 대꾸는 아닌 것 같다.

어휘의 선택도 부적절해 보인다.

'꽤'는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부사가 아니다.

사람이 순식간에 교만해진다.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거 저번처럼 관리자나 직원 같은 사람들이 아직도 안 죽고 살아있나 확인하려고 들어와 본 거 아닐까? 실수로 여러 번 클릭했나 봐."

"그런가? 그럼 뭐 어때? 이렇게 많이 들어왔으면 되는 거지."


하루 8명의 행복,

마치 파워 인플루언서라도 된 양 기쁨을 감출 줄 모르는 40세의 남성과 그의 자녀들, 두 자녀에게만 파워 인플루언서, 이 사람들을 어찌하면 좋을꼬?

나는 처음에 저 '8'이라는 숫자가 뒤의 백 단위를 생략하고 집계된 숫자인 줄 알았다.

수 십 번을 봐도, 공지사항을 아무리 뒤져 봐도 그런 내용은 안내되어 있지 않았다.

필시 뭔가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해.


한참 기분이 날아오를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사람들도 많이 오는데 오늘 뭔가 하나라도 써야겠어."

이러고는 몇 시간째 거실 밖으로 나오지도 않으셨다.

한참 만에야

"이것도 힘드네. 세 개나 썼더니 진이 다 빠져."

이러는 거다.

글 쓰는 것도 부지런한 사람이, 진득한 사람이 하는 거라고 평소 생각해온 나다.

본인도 끈기 없음을  인정했던 터라, 기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스트레스를 안 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느 순간 굉장한 스트레스가 되었다고 실토했다.

한 번 빠지기 시작하면 평소의 그 사람답지 않게 돌변하는 성미이므로 나는 심히 걱정되었다.

그게 직업도 아닌데 너무 큰 비중을 두지 않기를, 마음을 편히 먹기를 바랐다.


"자기는 잘 모르겠지만 말야. 글을 쓴다는 게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거든. 은근히 시간도 많이 걸리고.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도 받아. 암튼 그래."

그는 집필의 고단함에 대하여, 머리 지끈거림에 대하여 내 앞에서 말했다.

뭔가를 끼적이는 것에 대하여 나는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술술 써지면 쓰는 거지, 억지로 쥐어짜면서, 스트레스받아가면서까지는 쓰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면 내 소일거리가 정말 '일'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그저 써지니까 쓸 뿐이다.


"근데 왜 자기는 블로그를 안 해? 내가 그렇게 한 번 해 보라고 하는데도? 뭔가 좀 해 봐. 하다 보면 나처럼 방문자도 많아지는 날이 올 거야."

정말 콧구멍이 두 개라 내가 숨을 쉬고 산다.

인간에게 어떻게든 숨 쉴 구멍을 만들어주신  위대하신 조물주의 배려에 무한한 고마움마저 느꼈다.

내 블로그에는 몇 명의 방문자가 다녀갔나를 잠깐 살펴보았다.

올해 3월 초에 시작해 그날까지 '20,176'명의 방문자들이 다녀가셨다.

그중에 남의 편은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나도 그의 총'352'의 숫자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남의 편은 5월부터 시작한 걸로 안다.


"초반에만 글 몇 개 올리고 그냥 방치해 뒀는데 그래도 꾸준히 방문자가 있네?"

마치'난 직장 생활하니까 바빠서 못 챙기고 그냥 놔뒀어도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준다. 난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고 나만 느꼈다.

이러면서 내 앞에서 무척이나 거들먹거리셨다,고 느꼈다.

'당신은 직장도 안 다니는데 이런 것도 안 하고 뭐 하냐?'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도 같았다, 고 또 나 혼자만 제 발 저렸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뭐라고 답해야 좋을까?

세상에 쉬운 건 없다고, 남들도 다들 어렵게 어렵게 하는 거라고, 그게 직업은 아니니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어떻게 말해야 상처받지 않을까?

나의 기쁨, 나의 고통.

나의 기쁨, 나의 경쟁자(?).


그날 밤, 혼자만 속으로 견제하며 밤늦도록 불이 훤히 켜진 그의 공간을 사심 없이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는 그 밤 쉬이 잠들지 못했으리라.


그나저나 언제 한 번 방문해 주긴 해야 할 터인데, 진심으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정 내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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