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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Dec 05. 2022

남편의 과거, 그리고 내조 가성비 갑

돈 안 드는 내조, 자본없는 아내들에게 글임자가 추천합니다.

22. 12. 4. 아빠의 수학교실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어때? 아빠가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해 주셔?"

"응. 근데 설명이 좀 긴 게 단점이야."

"그래도 아빠 같은 사람 별로 없을걸? 너희가 물어보면 차근차근 설명도 잘해주시잖아."

"응. 아빠가 설명해 주니까 이해가 잘 돼."

"너희는 좋겠다. 물어보면 아빠가 잘 설명해 줘서."


어젯밤에도 아들이 갑자기 반올림과 소수와 분수에 대해 제 아빠에게 질문을 했다.

'아빠의 수학교실'이라는 이름으로 성황리에 올해부터 내실 있게 운영되고 있다.

"아빠가 옛날부터 설명을 잘했던 것 같아. 친구들이 아빠한테 물어봐서 알려주면 다들 알아듣기 쉽게 설명 잘해준다고 했거든."


그 옛날 수학경시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이 있던 화려한 시절을 떠올리며 나의 기쁨, 나의 고통  그 사람은 아이들 앞에서 흐뭇해했다.

해외여행은 무리고, 국내선 비행기 표도 구매해 줄 여력이 없는 아내는 남편이 어깨라도 으쓱하도록 아이들 앞에서 잔뜩 비행기를 태워주었다.

돈도 안 드는 비행기 탑승, 이런 식으로는 얼마든지 뒷바라지할 수 있다.

그러나 과유불급, 장시간의 지나친 비행은 구토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멀미약을 구비하지 못한 관계로 짧고 굵게만 운행한다.


"아빠가 옛날에 중학교 다닐 때 수학 경시대회도 나갔던 사람이야."

"진짜? 우와~아빠 대단하다."

"그때 장려상인가 받았어."

"상까지 받고. 진짜 수학 잘했나 보다."

"아빠가 수학은 좀 했지."

수학은 좀 하지 못했던 엄마는 얌전히 설거지만 했다.

오래 달리기 대회, 사생대회, 백일장 대회에서만 수상 경력이 있었던 엄마는 낄 자리가 아니었다.

나는 적어도 낄 데 안 낄 데를 잘 아는 사람이다.

수학을 논하는 자리에 감히 끼었다가는 화를 면치 못하리라.


우리 집에서는 역사, 사회, 경제를 비롯해 수학 문제가 나오면 아이들은 아빠에게로, 국어나 영어, 문학, 문화나 예술 이런 분야는 엄마에게로 달려온다.

각자 재능(이라면 재능이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을) 기부를 하는 셈이다.

물론 우리 둘 다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다.

수학과 관련해서는 남편이 적어도 나보다는 월등히(인정해야만 한다. 사실이니까.) 잘하는 게 확실하고, 다른 분야는 나도 썩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는 선에서, 모르는 것은 공부해가며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언제 내 밑천이 다 드러날지 몰라 조바심이 생긴다.

그러나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공부야 아이들의 몫이지 엄마나 아빠가 대신해 줄 일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고 우리 부부는 진작에 합의를 봤다.

이마저도 합의가 되지 않았더라면,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그저 부모는 옆에서 조언을 하고 방향을 조금 알려 주고 요청하면 도움을 주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같이 공부하기 좋은 세상에서 아이들과 함께 검색도 하고 알아보고 해결해 가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이 좋은 세상을 이제 만난 것이 억울할 지경이다.

내가 다 뭐든 배워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지식 탐구에의 욕구를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해소할 수 있는 세상이 행복해서 눈물겹기까지 하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지체 없이 알아낼 수 있는 이 현실이 새삼 고마워 더 적극적으로 살게 된다.

배운다는 것, 공부하는 것은 의지의 문제이지 이젠 더 이상 환경의 문제만은 아닌 것도 같다, 고 나는 생각한다.


언젠가 남편의 (수학경시대회 수상 경력의) 과거를 알고 난 후 남편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재주는 있는가 보았다.

물론 남편에게 다른 재주도 많이 있다.

살수록 놀랍기만 하다.

"아빠, 그럼 그때 받은 상장 있어?"

"그럼. 할머니 집에 있을걸?"

"그래? 그럼 다음에 가면 한 번 봐 보자."

"그래. 그러자."

듣고는 미심쩍어서, 가장 적극적으로 사실 확인을 하고 싶어 했던 멤버는 단연 나였다.


"장려상이 아니었네? 우수상이네?"

"진짜다. 우와~ 아빠 정말 대단하다. 우수상이면 잘한 거 아냐?"

내가 출동할 차례다.

"그럼. 잘한 거지. 너희 아빠 진짜 수학 잘했나 보다."

시가에 가서 설마설마했던 일이 사실로 드러났던 그 순간을 마주하고는 내친김에 나는 다소 과장되게 남편을 추어주었다.

"아이, 뭐. 그 정도는 누구나 다 해(누구나 다 하는 그것을 못하는 아내가 옆에서 두 눈 부릅뜨고 있는 줄은 모르시나.). 수학 좀 하는 사람들은 상 하나씩 받고 그러는 거야."

"근데 엄마는 안 받았잖아."

나는 이실직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수학을 못했거든. 경시대회는 수학 잘하는 사람들이 나가는 거야. 수학은 못했지만 엄마가 다른 과목 중에 잘하는 것도 있었어."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설움이 있었지만 나는 사실대로 수학을 못했으니 못했다고 아이들 앞에서 선언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수학을 못한 것이 죄는 아니었으므로 감추지 않기로 했다.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속으로는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내가 약한 부분을 남편이 덮어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 사람이 지금 충분히 역량을 발휘하고 계신다.


다른 사람과는 어쩐지 모르겠지만 나 하나만 놓고 보자면 남편은 수학만큼은 뛰었으므로(장려상인 줄 알았는데 실은 우수상이란 걸 알고 남편의 지위마저도 몇 단계 격상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수학 과목은 대개 '아름답게'만 장식했던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경시대회에 나갈 정도의 실력을 갖춘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우러러볼 만한 사람이었으므로 내 눈으로 '우수상'의 실체를 접하고 난 후부터는 수학에 있어서만큼은 남편은 그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잘하는 것은 잘한다, 인정해 주어야 마땅하다.

아이든 어른이든 칭찬할 일은 칭찬을 해 주는 거다.

가끔 칭찬에 도를 지나친 게 아닌가 싶게 너무 우쭐대며 수학에 약한 자 앞에서 살짝 으스대며 잘난 척(잘난 척이라는 말 이외에 더 적합한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뭔가 한 두 단계 더 얄미운 신조어가 하루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할 때는 차마 못 봐줄 정도지만 어쩌랴. 수학만큼은 나보다는 잘 난 사람인 것을.

그까짓 거 눈 한 번 질끈 감아주면 이 가정이 평화로운데.


나의 기쁨, 

나의 고통, 

나의 우쭐자.

가끔씩 불리해지면 유치하지만 나도 아무 말 대잔치 한마디를 툭 던진다.

"근데 올해 노벨 문학상은 어떤 작품이 받았는지(그건 절대 남편이 모를 것이란 확신에 차서) 혹~시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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