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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24. 2023

부부 공무원에서 외벌이로, 의원면직 1년 후

무사하다.

23. 1. 23. 보여지는 모습보다 더욱 중요한 것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는 자기가 일 그만두고 걱정이 더 많아. 무사히 정년 때까지 퇴직할 수 있을지."

"이미 다 지났잖아."

"그래도 둘이 같이 일할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나 혼자 우리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하면 부담스럽고 그래."

"나도 그 마음 다 알지. 왜 모르겠어."

"알긴 뭘 알아?"


어쩌면 우리 두 사람은 맞벌이 시절에  서로에 대해 더 고마워하고 소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일하랴 아이들 키우랴 나도 정신없었던 그 시절엔 이 두 가지 말고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월요일이 되면 출근하고 주말에는 육아에 살림에 더 신경 써야 했고 휴일도 없이 종종 비상근무에 동원됐으니, 앞으로의 일 같은 것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견뎠다고도 말할 수 없다.

단지 하루하루를 살아낼 뿐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갑자기 사고가 난다거나 하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해?"

"그런 걱정을 굳이 뭐하러 해?"

"그래도 그런 생각이 자주 들어."

"좋은 일만 생각하고 살아도 모자랄 시간에 미리부터 걱정할 거 뭐 있어?"

"자긴 내 마음 몰라."

"내가 왜 몰라? 나도 일 해 봤는데. 힘들게 고생하는 거 내가 다 알지 왜 모르겠어."

그러고 보니 어느새 1년이 지났다.

돌이켜 보면 겨우 일주일 같이 느껴지는 1년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직 나는 무사하다.

그러나 남편이 무사한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내 영역 밖이다.


좀 잠잠한가 싶더니 시가에 다녀오는 길에 남편이 말을 꺼냈다.

진심으로 나도 남편이 어떤 마음인지 잘 알 것 같다.

그의 마음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짐작은 가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애써 그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한들 당사자 마음만 하겠는가.

"일어나지도 않은 안 좋은 일부터 생각하지 말고 이미 지난 일이니까 그런 건 그만 얘기하는 게 좋겠다. 앞으로가 더 중요한 거지. 지금 잘 살고 있으면 되는 거고. 안 그래?"

"자기가 내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

또 원점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이럴 때면 평생토록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말로 표현은 안 했지만 나도 남편의 부담스러운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혼자서 느끼는 중압감이 얼마나 클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1년 동안 우리 가족이 큰 어려움 없이 그런대로 무탈하게 보내왔다는 사실이다.

가족 전체에게 뜻밖의 커다란 환경 변화가 있었고 남편에게도 생각지도 않았던 인사이동의 기회가 와서 그의 뜻대로 원하는 곳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크게 아프지 않고 무사히 생활해 준 고마운 한 해였다.

나의 건강도, 몇 달에 걸쳐 검진 가던 것을 반년, 1년, 더 뜸하게 병원 방문을 해도 될 만큼 좋아졌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내겐 고마운 일이다.


점점 강화되어 가는 공무원으로서의 어떤 엄격한 잣대가 너무나 큰 압박감으로 다가온다는 남편, 행여라도 운 나쁘게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게 될까 지레 걱정인 사람이다.

나는 생각한다.

또 얘기한다.

"다른 건 둘째치고 술을 한 모금이라도 입에 갖다만 대도 절대 운전할 생각도 하지 마. 한 잔 정도는 괜찮다는 그런 생각부터 버려. 다른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불이익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렇다 치더라도 본인 의지로 충분히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그런 불미스러운 사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발생해선 안돼! 정말 우리 가족을 생각한다면 말이야. 그건 꼭 공무원이라서가 아니야. 난 누구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음주운전은 절대 안 돼!" 

평소 술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회식자리에서나 억지로 강요당하는 그 알코올을 항상 조심하라는 말이다.

내가 늘 당부하는 것은 그것뿐이다.


공무원을 하지 않아도 시간은 여느 때와 같이 흘러가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은 자라난다.

너무 당연한 것인데도 새삼스럽게, 세상의 많은 것들이 나의 환경 변화와는 상관없이 그저 그럴 뿐이라는 사실이 뭐랄까...

어쩌면, 1년 전에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모든 게 시치미 떼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새삼스러웠겠지.


후회는 없다.

보람은 있다.

공직 생활을 했던 과거의 나도, 의원면직을 한 지금의 나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절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중하기만 하다.

나름대로 보람을 느낀다.


반드시 후회할 거라던 남편의 예상은  빗나갔지만, 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이들이 함부로 추측하고 과장하고 억측했던 시간들을 다 보냈다.

성급했다고 말하던 주위 사람들의 도를 넘은 간섭과 우려와는 달리 나는 잘 지내고 있고, 앞으로도 무탈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편에게 더 고마워할 일이다.


가장 큰 재산은 만족이라 하지 않던가.

이정도면 족하다고(물론 누군가는 결코 동의하지 않으리라)늘 느끼고 있다.

그거면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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