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교육 갔을 때 우회전 사고 얘기 들었거든. 우리 같은 공무원은 특히 더 엄격하잖아. 그래서 말인데, 자율주행 자동차 그거 하나 있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교통 법규 잘 지키고 술을 마시면 무조건 운전 안 하고 최대한 운전할 때 조심하면 되지, 일단은. 과속 좀 하지 말고, 신호나 잘 지키고 다녀."
"그게 마음처럼 돼? 잘못 걸리면 우린 끝장이라고. 공무원이란 걸 알면 더 그런다잖아. 내가 당신이 일만 그만 안 뒀어도 안 그래. 같이 일했으면 혹시 내가 무슨 일 나더라도 당신이 있으니까 난 그냥 집에서 살림이나(살림이나라니?) 하면 되지만 지금은 나 혼자 벌잖아.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아? 당신이 일만 계속했어 봐. 내가 이러겠어?"
'또' 때가 됐구나.
남편이 '다시'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공무원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불리하잖아. 특히 요즘엔 교통사고 관련해서 더 엄격해졌고."
"거기서 나 일 그만둔 게 갑자기 또 왜 나와?"
"나 혼자 버니까 그렇지. 같이 일하면 그런 걱정도 안 해."
"왜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가지고 미리부터 걱정을 해?"
"아무튼 나중에 사고라도 나서 합의금 주고 징계받고 그러느니 그냥 몇 천만 원 들여서 자율주행차를 사는 게 낫겠어. 생각해 봐. 사고 난 다음에 수습하려는 돈 가지고 미리 사서 안전하게 잘 타는 게 더 낫지 않겠어?"
결론은 그 차가 사고 싶다는 말씀이신가?
벌써 몇 번째 들어온 말이다.
내가 일을 그만둔 것을 별의별 일과 다 연관시켜 상기시키는 재주가 있는 남편이다.
내가 일을 그만둔 것은 사실이고 이미 지난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그 일을 자꾸 들추면서 이번에는 자율주행자동차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차를 사고 싶으면 사고 싶다고 하면 될 것이지, 왜 꼭 '당신이 일을 그만둬서'라는 단서가 붙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물론 불안한 마음이 들 수 있고, 걱정스러울 수도 있다.
내가 남편 입장이라도 같은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운전이란 게 내 마음처럼, 나만 조심한다고 해서 항상 안전하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도 잘 안다.
다만, 나는 좀 빼줬으면 좋겠다.
공무원에 대한 어떤 징계가 더 강해질 수록 나는 시달려야만 할 것이다.
언제까지가 될지 그 끝은 알 수가 없다.
특정 직업에 대한 처벌 강화가 애먼 나에게 불통 튄 것 같은 느낌이다.
그가 하는 말에 이제는 더 이상 일일이 대꾸하지 않는 이유는, 그럴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꾸했다가는 여지없이 서로를 불쾌하게 만들 뿐인데 그렇게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감정싸움 같은 거 넌덜머리 난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