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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30. 2023

하지도 않고, 주지도 않겠지?

그분들의 월급이 얼마인 줄이나 아세요?

23. 3. 28. 꽃 진 자리 열매 맺으리

<사진 임자 = 글임자 >


*** 태초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말 한마디로 천만 냥의 마이너스 대출을 받는 사람이 있었으니, 어디서 가사노동의 가치도 몰라보는 말씀 들렸으랴?

(말 한마디로 천만 냥의 빚을 지는 사람 -부록 편)


"그럼 내가 월급 줄 테니까 그만큼 완벽하게 집안일을 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이 받는 월급 가지고는 누군가를 들여서 월급을 준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가사를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그것도 퇴근시간도 없이, 결정적으로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일 년 내내 하면서 월 10만 원을 받고 일할 사람은 세상천지에 한 명도 없어 보였다.


그 사람이 내게 매달 보내오는 50만 원의 생활비라는 명목의 그것에서 통신비, 나와 아이들의 보험료, 가스비, 가족 계비 등 반드시 지출돼야 하는 금액이 평균 40만 원 안팎이다.

물론 월 10만 원도 안 되는 그 나머지가 고스란히 내 수입이 되는 것도 아닌 것은 물론이다.

그 나머지는 4인 가족에게 여러 방면으로 쓰인다.

그 금액을 다 사용하고 나면 남편 명의의 카드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그 추가적인 금액 또한 10만 원 안팎이다.

그런데 어떻게 월급을 준다는 것일까?

그 사람의 월급은 한정돼 있는데 사람을 들인다고 한들 잘해야 순수 노동비로 그에게 줄 수 있는 금액이 월 5만 원에서 10만 원이 조금 넘을까?

그 돈이라도 받고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일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기만 한다면 나는 '각골난망'이라며 그 은혜 저 세상에 가서라도 결코 잊지 않겠다고 그에게 차라리 내가 하는 오만가지 집안일을 다 넘겨주고 싶다.


한창 농번기라 친정 일을 연달아 도왔던 날의 연속이었다.

육체적으로 고되다 보니 집안일을 소홀히 한 것이 화근이었다.

'아무리 가족 사이라도 일을 하면 일당을 받아오라'는 말에 당연히 일당도 받는 중이었다 물론.

엄마가 만들어 주신 각종 반찬들과 친정 로컬 푸드는 언제나 덤이었다.

"이게 돼지우리지 집이야?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정리를 잘하길 하나. 뭐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돼지우리에 비유될 만큼은 아니라고 나는 느꼈지만 그 사람 눈에는 모든 게 꼴 보기 싫었던 것이겠지.

특히나 내가 못마땅했을 것이고 흐트러진 집안보다는 내 꼴이 가장 보기 싫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버는 평균 250만 원의 월급에 비하면 내가 받아오는 일당이란 것은(한 달 내내 일한 것도 아니고 고작 며칠 일했을 뿐이었으니까) 하찮기 그지없었을 것이다.

고정적이고도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 보기에 그깟 푼돈(하지만 내게는 소중한 노동의 보상) 일당이라고 받아 오는 몇 십만 원쯤  우습기도 하겠다.

"애들은 방치하다시피 하고 집안 꼴은 엉망이고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는 거야?"

방치라니?

말이 좀 심하시네.

점점 언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걸핏하면 그 정신, 정신, 하는데 그 상황에 웬 정신 타령일까?

나야말로 무슨 정신으로 그렇게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아이들 앞에서 보란 듯이, 어김없이 월급을 받고 사는 직장인의 위엄이라도 과시하고 싶어서였을까?

"애들도 듣는데 조용히 좀 말해. 나 귀 안 먹었어.  애들 없는 데서 하든지."

이미 한차례 폭발을 한 후였고 정말이지 이런 상황 보고 자라는 거 누구한테 좋으라고 그러는 걸까?


치워야지 치워야지 하면서도 몸이 너무 힘들어서 미루다가(내 불찰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결국에는 핑계일 뿐이란 것도) 마침내 그 사람이 그런 식으로 터트린 것이다.

"하여튼 너희 엄마는 정리라고는 못해. 절대 정리 잘하는 사람은 아니야!"

그걸 말이라고 애들 앞에서 하는 걸까?

정리 잘 못한다는 말을 하더라도 그 말도 내가 직접 하련다. 왜 본인이 남의 일에 나서서 야단이야?

"함부로 말하지 마. 애들 앞에서 본인이 느낀 걸 사실처럼 말하지 마. 판단은 애들이 하겠지. 애들도 다보고 듣고 느끼고 있어. 나라고 할 말이 없어서 다 안 하는 줄 알아?"

"아무튼 항상 그래."

"말은 똑바로 합시다. 항상은 아니지. 정리 잘 돼 있을 때도 있지 왜 없어? 마치 한 번도 정리 안 하고 사는 사람처럼 함부로 말하지 마!"

"그래. 항상은 아니고."

그 말 뒤에도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애들이 보고 있잖아, 다 듣고 있잖아...

과거에는 나도 그 사람이 하는 대로 그대로 대꾸하고 언성 높이기 바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 봤자 득 될 것 하나 없었고 차분히 말로 하면 될 것인데 뭐 하러 그렇게 아무 영양가 없는 엉뚱한 데다가 힘을 써야 하나 싶었던 거다.


"그래. 내가 정리 잘 하는 건 아니지. 그럼 월급이라도 줄래? 집안일하는 거?"

"남의 집 일 가서 하는 것처럼 그렇게 완벽하게 해 봐. 그럼 줄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완벽하게 할 자신도 없고(완벽이란 애초에 불가능한 거 아닌가? 그 완벽함을 누구의 잣대로 기준 삼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월급씩이나 내게 줄 정도의 여유가 있다고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홧김에 나도 한다는 말이 어리석게도 저 소리였다.

가사를 도맡아 하는 분들의 한 달 월급이 얼마가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세상 물정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그 사람 월급 가지고는 턱도 없을 것이란 감은 있었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월급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월급 받는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집안일을 할 테니  월급 달라고 한다고 비난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이들 뒷바라지는 둘째치고 최소한 밥하고 빨래하고 반찬 만들고 설거지하고 그 사람의 셔츠를 다리고 분리수거를 하는 등 (물론 다른 주부들도 그 정도는 다 하는 일이라고 반박하겠지만) 몇 가지는 한다.

그것도 하루의 휴일도 없이 말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집안일이란 게 티도 안 나면서 저것이 어쩌면 또 전부이다.

"밥은 밥솥이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는데 도대체 힘들 게 뭐가 있어? 옛날에 비하면 진짜 편하지."

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감히 월급이란 단어를 내가 입에 올리다니, 내가 내 무덤을 팠구나.

과연 마흔한 살의 외벌이 가장이 할 법한 백 번, 천 번 지당하신 말씀이시다.

바가지가 거꾸로 엎어져 있는데 어찌 빗물을 받아낼 수 있으랴....


"말도 안 돼. 무슨 가사 노동의 가치가 저 정도야? 너무 과장됐다.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지!"

"하여튼 안 해본 티를 낸다니까. 뉴스도 안 봤어?"

하루는 라디오를 듣다가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의 가치를 금전적으로 환산을 하니 생각보다  월급이 많이 책정된 내용을 듣고서 그 사람이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그 사람의 그런 무지막지한 태도에 코웃음을 쳤다.

저렇게나 가사를 모르고, 그 노동의 힘듦도 짐작조차 못하며, 그 가치를 한없이 얕잡아 보는 그 태도에 소름 끼칠 정도였다.

인연 없는 중생은 구제하기 어렵다 하셨나니...

그런 태도를 보였던 사람이니 내게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10년도 넘게 결혼 생활을 해 오는 동안 축적된 데이터란 게 내게도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그러면 정말 가사 노동에 대해 월급을 받게 된다면 그 사람의 논리에 따라 밥솥과 세탁기와 청소기에 어느 정도 지분을 또 나눠주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런! 내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게 되겠군 그래.


나는 어쩌면,

내 일을 그만두고 그 사람의 또 다른 면을, 굳이 알지 않았어도 될(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알고 있어야만 할, 이제라도 알았으니 그나마 천만다행 아니냐고 가슴을 쓸어내려 마땅한), 어쩌면 평생 모르고 살다가 갑작스레 알게 되면 더욱 소름 끼칠 어떤 모습들을 보게 된 것 같다고 자주 느꼈다.

아마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완벽할 수 없고 그 사람도 완벽할 수는 없겠지.

사람이니까.

"에구머니, 집이 온통 보물찾기 하는 것처럼 소풍날 저리 가라네. 이것저것 한 데 어우러진 물건들을 보니 역시 글로벌 시대를 사는 집다워. 이거 꽤 흥미진진한걸?하지만 이젠 물건들이 각자 제 자리로 돌아갈 시기가 닥친 것 같아.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오손도손 물건 정리하기 한 번 해 볼까?"

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물론.

아무리 성에 차지 않아도, 아무리 미칠 듯이 화가 난다고 해도

"요즘 집안이 정리가 좀 안된 것 같네. 좀 치우고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아. 그러면 더 깔끔하고 좋을 텐데 말이야."

라고 말하는 거, 그 어렵고도 귀한 말 몇 마디를, 이왕이면 너무 직설적이지 않게 듣기 바랐던 것은 너무나도 허황된 마음이었던가 보다.

저런 아름다운 언어들은 그 사람이 오 박사님으로 빙의되는 시늉이라도 해야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내 꿈이 너무 야무져서, 터무니없고, 현실 세계에서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그림을 그렸다는 데에 내가 그만 화들짝 놀랐다.


사람은 누구나 허점이 있잖아.

나도 인정해. 가끔 나도 잘 한 건 없지.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일 년 내내 집안 꼴이 그런 것도 아니고,  깨끗하게 정리돼서 퇴근 때 너무 놀라 어안이 벙벙했던 적도 더러 있었잖아?

"여기가 정말 우리집 맞아?"

이러면서 눈 휘동그레진 거 난 분명히 보았다니까.

너무 깜짝 놀랄 일이 자주 있으면 그것도 심장에 안 좋을 것 같은 생각에 게으름을 피웠던 것은 결코 아니야.

이래 충격받으나 저래 충격받으나 너무 극단적인 것은 좋지 않겠지만, 아무튼 말이야.

이왕이면 아이들 앞에서는 너무 감정적으로 격하게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서로 감정적으로 싸우면 달라지는 것도 없이 매번 그렇게 기분 나쁜 말만 하게 되고 좋을 거 하나 없지 않겠어?

아무 득도 없는 시간 낭비는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은데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말이야.

하루에 한 가지만 하는 건 어떨까?.

1)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한다.

2) 직장도 안다니면서 이렇게 사는 게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라는 걸 잊지 마,

3) 아파트 지분은 내가 더 많다.

4) 돈 줄 테니까 완벽하게 남들처럼 집안일해 봐라.

이걸 한꺼번에 다 얘기하는 건 좀 지나친 것 같아.

좀 벅차지 않아?

아무리 화가 나도 하루에 다 퍼붓는다는 건 말이야...


* 마지막으로  방충망 청소와 창틀 청소, 그리고 배수구 청소만은 온전히 내 손으로 다 하는 거 그것만은 기억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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