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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r 29. 2023

시가에서 더 보태줬으면 아파트 지분은 남편 > 아내?

말 한마디로 천만 냥의 빚을 지는 사람 - 최상급

23. 3. 28. 때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

< 사진 임자= 글임자 >


"아파트도 우리 집에서 더 많이 보태줬으니까 내 지분이 더 많을걸?"


이 말에는 대꾸할 가치조차 없었다.

정말 듣자 듣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으시구랴?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정말 보자기로 보이시나?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인 줄 아시나?


<말 한마디로 천만 냥의 빚을 지는 사람의 진화 단계>를 지금 보여주시는 중이다.

원급 : 직장도 안 다니면서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네?

비교급 :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게 다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라는 걸 잊지 마.

최상급 : 이 아파트는 우리 집에서 더 많이 보태주셨으니까 내 지분이 더 많아.


저 모든 언행이 단 하루 만에, 그것도 불과 몇 십분 만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게다가 '부록'이 또 기다리고 있다.

물론 저런 말할 수도 있다.

나라도 그랬을 수 있다.

사람이 미우면 오만가지가 다 밉게 보이고 할 말, 안 할 말 마구 쏟아내기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하루 만에, 그것도 한 시간도 안 되는 그 시간에 폭풍우 몰아치듯 다 쏟아붓고 대체 어쩌자는 거지?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게 많았나 그동안?


그건 그렇고 갑자기 웬 아파트 지분 타령이람?

내가 언제 아파트 명의를 내 앞으로 해달라고 안달복달하기라도 했나?

아파트도 남편 명의, 차도 남편 명의, 하물며 세대주이시기까지.

"우리 집에서도 분명히 보태고 나도 과거에 맞벌이 시절에 같이 대출도 갚았잖아? 지금 갑자기 이 상황에서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라며 거품 물지는 않았다.

"내가 언제 아파트 사 달라고 했어? 제발 돈 좀 보태달라고 애걸한 적이라도 한 번 있었어?"

라고 격분하지도 않았다 물론.

"맞아, 엄밀히 따지자면 황송하게도 당신 집에서 보태 준 게 우리 집에서 보태 준 것보다는 조금 더 많겠지. 금전적으로는 말이야. 하지만 아파트만 있으면 살림이 살아져? 아파트가 물론 재워줄 수는 있겠지. 하지만 나머지는?"

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어 보였다 당시에는.


양가에서 보태 준 정도를 가지고 혼자서만 느닷없이 지분을 운운하는 남편,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대부분의 부부가 이런 대화를 서슴없이 그것도 '아이들이 다 듣는 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주고받을까?

나는 다만 그 점이 몹시도 궁금했다.

그날 내가 본 아이들의 표정은 침울했고, 나는 더 이상 진도를 나갔다가는 그 누구를 위해서도 좋을 것 하나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맞다.

시가에서 금전적으로 더 많이 지원해 준 것은 사실이다.

"그래. 당신 말이 백 번 맞지. 지당하신 말씀이야. 내가 얼마나 뼈에 사무치게 고마운지 몰라. 결혼할 때 이렇게 넓은 24평짜리 아파트 장만하는데 보태라고 친정보다 더 많이 보태주는 시가는 아마 세상에 없을 거야. 비록 아직도 대출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난 참 복도 많아. 이렇게 시가에서 크나큰 도움을 다 받고 사니 말이야."

라고 대꾸해 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시가의 도움을 받았지만(남편도 나도 양가에 좀 보태달라는 말 한마디 절대 하지 않았다.) 그걸 생각하면 나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칠순, 팔순이 넘으신 두 분이 그 돈을 어떻게 모았을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 친정도 농사를 짓고 시가도 농사를 짓는다.

시골에서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옆에서 티끌만큼 밖에 도와준 적 없지만 잘 안다.

하루 정도라도, 아니 단 한 시간 만이라도 밭에서 일을 해 보면 뼈저리게 느낀다.

그게 단순히 돈인 줄 아시나?

그건 정말 부모님 반평생의 고단한 삶 자체다.

징글징글하고, 아니꼽고 더럽고도 치사한 세월 다 겪어 내고 얻어낸 신성한 흙투성이에 절여진 그것이다.

그리고 어느 노래 제목처럼 '피, 땀, 눈물'이다.

노모의 허리를 굽게 하고 밤마다 무릎을 쿡쿡 쑤셔대는 관절염 때문에 수술까지 해야 되는 지경에 이르도록 한 무시무시한 것이다.

이젠 더 이상 염색할 기력마저도 없으신 홀쭉하게 야윈 두 볼만 남은 아버지의 한숨이고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마른나무뿌리 같은 그러쥔 두 주먹이다.

그 사람은 알기나 할까?


다만 이  말만은 하고 싶었다.

"그래, 부모님이 보태주신 건 정말 고마워. 그렇다고 마냥 내가 기분 좋지는 않아. 그건 부모님의 수 십 년 동안의 고생의 결정체야. 땡볕에서 짜디짠 땀으로 온몸을 목욕해 가며, 한겨울에도 손가락, 발가락 얼어가며 하나씩 둘씩 일구어 내신 거야. 당신도 그걸 명심해야 할 거야. 세월이 지나고 우리는 자라 어른이 됐지만(정말 어른이 맞는지 의심스럽지만) 아직도 자식 일에 애면글면 노심초사하는, 이젠 더 늙을 일 말고는 없는 부모님의 '평생'이야. 나는 알 수 있을 것도 같아. 그럴 거야 아마도.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좀 더 잘해드려야 해. 자식 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해. 부모님은 항상 우리에게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셔. 우리 자식들도 분명히 우리가 하는 대로 그대로만 보고 배울 거야. 부모는 자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고 하더라. 모범까지는 보이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우린 책임감이란 걸 가져야 해. 거창하게 효도랄 것도 없어.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겠어? 난 그렇게 생각해. 내가 아직도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말이야. 당신 성에 차려면 한참 멀었지만 말이야..."


이 아파트 지분 따위, 지금 얘기할 때가 아니야, 최소한 지금은.

다른 얘기를 하는 게 더 현명한 일일 것이야, 아마도.

우리가 어리석게 놓치고 마는 것들에 대해서, 결코 간과해선 안될 중요한 것들에 대해서 말이지.

진정 우리가 할애해야만 할 시간은 바로 그런 일들에 관한 것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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