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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pr 02. 2023

엄마 취직했다 드디어!

그들이 간과한 것

23. 3. 31. 꽃만 활~짝

< 사진 임자 = 글임자 >

"다음 주 월요일부터 엄마 출근한다."

고요한 거실의 정적을 깨며 내가 말했다.

"진짜? 또 공무원이야?"

딸은 화들짝 놀랐다.

"에이, 엄마. 엄마가 무슨 취직을 해?"

아들은 듣고도 믿기 힘든 것인지, 이쯤 해서 엄마의 취업 능력을 아예 배제해 버린 것인지 모를 (그리 듣기 상큼한 말은 아닌) 말을 했다.

"엄마, 어느 회사야?"

그래도 딸은 두 살 더 먹었다고 근무지가 과연 어디인지부터 확인하려 들었다.

"엄마가 어떻게 취직을 한다고 그래?"

아직도 군대에 안 가고 거기 있었느냐 아들아?

아들의 한 마디에 나는 또 입영 통지서를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다.


"엄마, 진짜야? 진짜 엄마 취직한 거야? 어디야 어디?"

딸은 기대감과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내게 물었다.

"엄마, 그럼 아빠한테 말해도 돼?"

아들은 그 어마어마한 긴급 속보를 그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제 아빠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하던 노트북도 팽개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마침 휴식 시간이 되기도 했다. 택시라도 타고 제 아빠에게로 달려갈 기세다.

"아니야, 내가 말할 거야!"

딸도 질 수 없다는 듯 부리나케 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굳이 소곤소곤 말하지 않는 이상 거실에서 하는 말 한마디도 적나라하게  다 들리는 집인지라(사실 나와 아이들은 늘 목소리가 크다고 누군가에게 매번 지적당하고 있다.) 방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던(그러리라고 추정되는) 한 남성이 먼저 달려 나왔다.

'아, 버선발로 달려 나온다는 게 이런 거로구나.'

밥 차려놓았으니 어서 와서 잡수라고 몇 번을 불러도 반응 없더니, 자발적으로 거실로 행차하셨다.


"어? 어딘데?"

그의 표정을 자세히 보지는 않았으나, 희색이 만연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목소리는 짐짓 근엄하게까지 들렸다.

난데없는 나의 취직 관련 비보(?)는 누워있던 사람도 벌떡 일으키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낙지는 쓰러진 소를 일으켜 세운다지만 그에겐 세발 낙지 한 다리에 붙은 빨판 하나도 필요 없다.

그렇게 반가웠을까?

"나중에 알려 줄게."

섣불리 천기누설을 할 수야 없지.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다.

"어딘지는 알아야지."

그 남성은 기대에 차(그저 내 느낌일 뿐이다.) 자꾸 물어 왔다.

"첫 월급 타면 알려 줄게."

은근히 거드름을 피우며 내가 대꾸했다.


"엄마, 엄마는 공무원도 그만뒀는데 도대체 무슨 회사에 취직했다는 거야? "

딸의 편협한 직업세계에서 공직 사회 이외에는 이 한 몸 취직할 데라고는 없는 줄 아는 건가?

"그래 엄마. 엄마가 어디에 취직하겠어?"

아니, 열 살 밖에 안된 아들이, 요즘 취업시장이 얼마나 어려운지, '취업난'이라는 단어조차 이해 못 할 거라고 확신하는데 어떻게 저런 말을 다 한담?

그런데 기분이 상큼하지는 않다.

아들이 한 말의 의도는 취업난의 심각성  내지는 중년으로 가는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에 대한 각종 난관들에 대해서라기보다 '엄마가 지금 취직할 데가 어디 있어?' 내지는 '설마 누가 엄마를 써 주겠어?'라는 의미에 더 가까워 보였다는 건 순전히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왜 엄마가 취직할 데가 없어?!"

나는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 취직했는데 그래? 나도 알고는 있어야지."

한 남성이 끈질기게 물어 왔다.

"나중에 알려 준다니까."

나도 순순히 말해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관공서가 그나마 일하기 나은데. 어설프게 일하러 가지 말고."

'관공서'는 여전히 그의 마음 깊은 곳에 꿋꿋하게 화석처럼 단단히 굳어 자리매김하고 있었음을 또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나 할까.

물론 잘 안다.

그가 하는 말이 전혀 신빙성 없는 얘기가 아니란 것쯤은 말이다.


"몇 시에 갔다가 몇 시에 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남성은 질문해 왔다.

도시락이라도 싸줄 기세다.

"에이, 그냥 엄마 일하러 안 가야겠다."

슬슬 고해성사의 시간이 닥쳐왔음을 직감했다.

진도를 더 나아가서는 곤란할 일이 생길 것이다.

나는 이실직고해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잘 아는 사람이다.

"얘들아! 오늘이 무슨 날이지?"

그제야 아이들은 뭔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엄마!!!"


딸과 아들은 뭔가 분해했다, 고 느꼈다.

그 와중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쓸쓸히 돌아서는 한 남성이 있었으니...

한 멤버만 제외하고(전혀 그럴 마음이 아니었으리라.) 나와 아이들은 화기애애해졌다.

그러나, 웃음들이 어째 씁쓸해 보였다.(고 또 나만 느낀 것도 같다. 지은 죄가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한 남성은 한동안 뒷말을 잇지 못하셨다...

다시 정적만이 감돌았다.

"우리 다 엄마한테 속았네."

라고 말하는 그 남성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어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만우절이라며 실없는 소리들을 하루 종일 하더니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허점을 보였다.

우리는 내년엔 또 어떤 말들을 하게 될까.

나의 그것은 거짓말, 농담, 한낱 실없는 소리, 혹은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 그중 어디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을까?


"엄마, 거짓말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야!"

딸은 졸지에 나를 양치기 엄마쯤으로 간주해 버렸다.

" 만우절인 걸 기억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아들은 뒤늦게 애통해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감히, 취직씩이나 했다고 한 그 말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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