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un 15. 2023

Listen carefully! 프로 쇼핑러에게 고함

복숭아 부르주아 논란의 속편

2023. 6. 14. 요망한 것 같으니라고, 꼭 누구처럼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 핸드폰 케이스 살 건데 당신 것도 사 줄까?"

또 사겠단다.

"필요 없어. 지금 멀쩡히 잘 쓰는데 뭐 하러 사?"

프로 쇼핑러가 듣지도 않을 말을 난 기어이 했다.

"이거 봐봐. 오래돼서 색이 다 변했네. 내가 사줘야지."

내 핸드폰 케이스를 보더니 사야겠다는 의지를 더욱 굳건히 했다.

"필요 없다고! 왜 지금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걸 사?"

입이 아프긴 했지만 한 번 더 말했다.

"어차피 배송비 내야 되니까 내 것 사는 김에 당신 것도 하나 사 줄게."

누가 들으면 세상에 둘도 없는 자상하고 세심하고 잘 베푸는 사람인 줄 오해하기 딱 좋다.

물론 그건 오해다.

확실하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내가 말했지? 지금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내가 사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걸핏하면 외벌이라 힘들다면서 뭐 하러 내 것까지 사? 누가 사달랬어? 왜 시키지도 않을 걸 자꾸 해? 그런 거 안 사줘도 되니까 한 번씩 엉뚱한 소리나 하지 마! 핸드폰 케이스 못 바꿔서 죽은 사람 없어!"

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해왔다.

정말 한 두 번도 아니고, 잊을 만하면

"이제 우린 외벌이야. 전에 살던 것처럼은 못 살아."

라면서 내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맞벌이했을 때라고 흥청망청 살았던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이 본인이 사고 싶은 건 사는 편이다.

물론

"직장 생활하는데 이건 있어야지. 이 정도는 있어야지."

라든지

"내가 돈 벌어서 사겠다는데 일하고 이런 것도 못사?"

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내가 언제 못 산다고 했나?

사지 말란 적 있어?

'필요하면' 사.

하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건 안 사도 된다 이 말이지.

특히 당신 보고 제발 내 것 사달라고 애걸복걸한 적도 없고 부탁한 적도 없고 반드시 사 내란적도 없어.


"당신 것 두 개는 사야겠다. 이왕 사는 김에."

참으로 인정도 넘치셔라.

하나도 황송한데 두 개씩이나.

하지만 난 그게 지금 당장 필요하지도 않고 이미 쓰고 있는 게 있다고. 쓰는 데 아무런 지장 없다니까 그러네.

뭐든지 물건을 사면 기본적으로 두 개씩 사는 성향이 있는 사람이다.

프로 쇼핑러에게 '이왕 사는 김에'라는 말은 만병통치약 같은 거다, 일종의.

"옛날에도 필요 없다는데 내 폰 케이스 사놓은 거 그것도 몇 년째 지금 새거 그대로 있어. 거봐. 쓰지도 않잖아. 그런 게 진짜 쓸데없이 돈 쓰는 거야. 제발 꼭 필요하다는 것만 사."

포장도 뜯지 않은 채 2년 넘게 방치되고 있는 물건이 있다.

자상하신 어느 분이 특별히 내게 사 주신 거다.

물론 나는 원하지 않았다.

또 몇 달째 방치되고 있는 '고구마라테'는 어떻고?

그것 또한 사는 김에 두 개를 사셨다.

혹시 모르니까, 만약을 대비해서,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사들이셨던가?

지금 당장 애들이 먹고 싶다는 복숭아나 사시오.


"애들 선풍기가 하나 필요한데 알아봐야겠다."

나는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누구 앞에서는.

"알았어. 내가 알아볼게."

세상에서 가장 하기 기쁜 숙제를 떠안은 어린아이처럼 프로 쇼핑러는 재깍 반응했다.

틈도 없이 실행했다.

주문했다.

왔다.

그것도 무려 3개씩이나.


"하나만 사면 되겠는데. 여러 개 살 거 없어. 하나만 사."

며칠 전 나는 먹혀들지 않을 간절함을 담아 애원하다시피 했다.

"에이. 하나씩 있어야지. 당신도 하나 쓰고."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셨수?)

"난 전에 사무실에서 쓰던 거 두 개나 있어. 그리고 그것 말고도 두 개 더 있으니까 비상용으로 살 거면 하나면 더 사면 돼."

내 말을 결코 듣지 않을 거란걸 알면서도 나는 말했다.

"에이. 당신도 좋은 거 써야지. 내가 하나 사 줄게. 살면 얼마나 산다고."

세상에 이렇게나 뚝심 있는 남자라니!

그러나, 마지막 그 한 마디는 하지 말았어야 옳았다.

왜? 나 죽고 나면 새장가가시게?

"됐다고! 사지 말라고! 내가 사지 말라잖아. 안 쓴다고! 내가 언제 사달랬어? 그런 거 살 생각하지 말고 이상한 소리나 하지 말라니까!"

경기를 일으키듯 내가 말했으나, 그러나 그 사람은 벌써 주문을 마치고 내게 신나게 외쳤다.

"내가 세 개 주문했어, 애들 거랑 당신 거. 그거 비싼 거야. 이왕 사는 거 좋은 걸로 사줘야지."

기어이 일을 저지르셨구랴.

집에 휴대용 선풍기가 있다는데 뭐 하러 굳이 또 3개씩이나 사냐고!

그런 거 하나도 안 좋아. 쓸데없는 소리나 하지 말라니까.

복숭아 6,990원에 샀다고 부르주아 어쩌고 저쩌고 뭐라고 하지나 말라고!

난 차라리 선풍기 대신 복숭아를 택하련다!

내가 원하는 건 선풍기가 아니라고!

하나도 안 고맙다고!

내가 필요 없다잖아!

원하지 않는다잖아, 이 인간아!


"전생에 못 사서 죽은 구신이 붙은 게 분명해. 뭐가 그렇게 사고 싶을까? 하루라도 쇼핑을 하지 않으면 손가락에 가시가 돋지?사고 싶으면 본인 거나 사서 써. 내 건 안 사도 돼. 필요하지도 않아! 날마다 빠듯하다면서 뭘 그렇게 주야장천 사는 거야? 나한테는 인색하면서 참 본인한텐 관대해. 사고 싶으면 필요하든 말든  막 사잖아?그런 거 사줘도 하나도 안 고맙다니까! 상대가 원하지 않으면 아무리 선물이라고 줘도 하나도 안 반가워! 본인 욕심에 주는 것뿐이야. 그거 굉장히 이기적인 거야. 알기나 해? 하긴 알긴 뭘 알겠어 알면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겠지. 뭘 주면 상대방이 무조건 좋아할 줄 알아? 좋아해야 돼? 안 좋다니까!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건 짐이라니까. 아무짝에도 쓸데없다니까. 왜 본인 생각만 하고 상대방 기분 같은 건 생각도 안 해? 남들 눈에는 세상에 둘도 없는 자상한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아니라고! 내가 원하지 않는다고! 받을지 안 받을지는 내가 결정해. 왜 무조건 저질러놓고 나보고 받으라는 거야? 걸핏하면 나보고 돈을 헤프게 쓴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진짜 생각 없이 돈을 쓰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네. 돈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야. 돈 벌기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뭐 하러 원하지도 않는 사람 몫까지 사는 거야? 나중에 또 얼마나 생색을 내시려고? 힘들게 고생하는 본인 물건이나 많~이 사셔! 직장도 안 다니는 내 것까지 챙길 필요 없어. 혼자 벌어서 혼자 마음껏 다 쓰세요, 원 없이!"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이미 수 십 번도 말해왔으므로 내 입이 아파하고 있었다.


"자 이건 당신 거!."

선풍기가 도착하자 그 프로 쇼핑러는 내게 그걸 건넸다.

그러나 내가 그 요망한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음은 물론이다.

다만,

다음날 그 프로 쇼핑러가 출근한 후 살짝 열어서 테스트를 해 봤다.

그건 본능이었다.

1단계부터 3단계까지 이상 없이 잘 돌아가는지, 바람 세기는 괜찮은지, 구성품은 빠짐없이 잘 들어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그건 소비자로서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