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가을 사이의 망설임
여느 때와 같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옷장 문을 열었습니다. 늘 망설임 없이 손이 향하던 자리가 있었습니다. 가장 손이 잘 닿는 곳에 걸어둔, 얇고 시원한 반소매 티셔츠들. 그런데 오늘따라, 제 손이 공중에서 잠시 길을 잃었습니다.
손끝은 반소매 티셔츠를 향하다가, 이내 옷장 깊숙한 곳, 아직은 낯선 긴소매 셔츠와 얇은 가디건의 경계까지를 매만집니다. 이 아주 짧은 망설임의 순간이야말로, 여름과 가을 사이, 우리가 발 딛고 선 계절의 틈입니다.
손에 잡히는 옷들마다, 지나간 여름의 기억이 묻어 있습니다.
유난히 땀이 많이 났던 날, 축축하게 몸에 감겼던 린넨 셔츠의 감촉.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나, 꿉꿉한 냄새가 배어버린 면 티셔츠. 한여름 밤의 열기를 식히려 에어컨 아래에서 너무 오래 머문 탓에, 서둘러 껴입었던 얇은 셔츠.
특히 지난 8월에는, 이 얇은 셔츠에 동해를 담아왔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물기가 채 마르지 않은 수영복 위에 무심코 걸쳤던 기억. 소금기를 머금어 뻣뻣해진 옷자락과 살갗을 태우던 햇볕의 따가움, 귓가에 부서지던 파도 소리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듯합니다.
이 짧은 망설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계절의 한복판에 와 있을지도 모릅니다. 온도가 서늘해지고 나면, 여름의 기억들은 옷장 한편에 여름 옷을 정리하듯 뒤로 밀려나고 말겠죠.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은 달력처럼 명확히 나뉘어 있지 않기에, 우리는 늘 뜨거운 여름과 서늘한 가을만을 기억할 뿐, 그 경계에 서 있던 무수한 오늘의 감각은 무심코 흘려보내고 맙니다. 하지만 옷장 앞에서 보낸 이 찰나의 머뭇거림은, 여름도 가을도 아닌, 오직 지금만이 가질 수 있는 투명한 시간을 온몸으로 감각하게 합니다.
저는 결국, 반소매 티셔츠의 여름 위에 얇은 가디건의 가을을 덧입습니다.
하나의 계절을 떠나보내고 다른 계절을 맞이하는 이 짧은 망설임이자, 틈. 오늘 당신은, 어떤 틈 앞에서 머뭇거렸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