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아. 어젯밤에 또 갑자기 너의 모습이 떠오르며 보고 싶어서 미칠듯한 기분에 휩싸였단다.
네가 의식을 놔버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너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과 건강한 모습이었을 때의 네 미소와 목소리까지 그립지 않은 것이 없어서, 너무나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설움이 북받치고 말았어.
울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냥 아무 말이나 끄적이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진정이 되고 잠이 오더구나.
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너를 생각해.
너의 손때가 묻은, 네가 즐겨 메고 다녔던 가방을 보면서도 생각하고, 네가 한 번도 입지 못하고 옷장 속에 걸어두었던 상표를 떼지도 않은 셔츠와 원피스를 보면서도 널 생각해.
네 물건들을 마주하며 지낼 자신이 없었던 것인지, 직접 버릴 용기가 없었던 것인지, 제부는 지영이와 나에게 네 옷들을 정리해 달라고 했단다. 대부분 나의 사이즈와 같아서 내가 가져온 그 옷들이 옷장의 한 칸을 다 차지하는 걸 보니 '저 옷들을 바라보며 다시 올 계절을 기약할 수 없었던 너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또 울음이 왈칵 쏟아지더라.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날에는 너의 동백나무 주변에 심어놓은 작은 화초들이 말라죽으면 어떡하나 싶고, 촉촉하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화초들도 동백나무도 시원한 물을 흠뻑 흡수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쿠키와 사랑이를 산책시킬 때마다 너의 투투는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을까 안쓰러운 생각이 들고 가끔 이모라는 단어를 듣고 고개를 번쩍 치켜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밖을 두리번거리는 쿠키 때문에 눈물이 나지.
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들은 되뇌곤 했어, 이젠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게 되었으니 너무 슬퍼하지 말자고 말이야. 그래, 슬퍼하지 말아야지. 그런데도 여전히 슬픈 걸 어떡하니, 은영아.
네가 좋은 곳으로 갔다고 믿으면서도 널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고 있으니 슬픔도 결국은 남은 자들의 이기심인 것을...
계속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난 글을 쓰고 있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똑같은데 글을 쓰면 슬픔이 더 이상 나를 짓누르지는 않는 것을 경험하면서 너에게 글을 쓰라고 권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되는구나.
죽음과 싸우는 동안 넌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생각하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내가 한없이 원망스러워. 그런 회한이 이제 와서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야...
지난 주말에 너에게 가서 화초를 심으며 우리 가족은 마치 네가 옆에 있는 것처럼 말을 걸었지.
"처제, 잘 있었는가?"
"은영아, 카페라떼 먹을래, 아메리카노 먹을래?"
"이모 원래 아메리카노 좋아하지 않았어?"
"병원에서 카페라떼 먹고 싶다고 했다니까! 은영아, 그냥 두 개 다 먹어라~"
"이모 덕분에 꽃밭도 가꾸고 좋네. 다음엔 팬지를 심을까?"
너에게로 가는 길은 왕복 두 시간이 길지가 않고 소풍 가는 기분이라는 걸 아니? 그곳에 네가 있기 때문에 자꾸만 가고 싶어지는 곳.
투투를 생각하면 너의 집에 가야 하는데 네가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발길이 향하질 않는구나. 하지만 이번주엔 가봐야겠다. 집에서 입시 공부를 하고 있는 환이에게 반찬도 만들어 가져다주고 투투 데리고 산책도 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네가 떠난 지 한 달이 되는구나.
은영아, 네가 가버리고 나서야 살아있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진심으로 깨닫게 됐어.
물건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하는 것과 삶에서 뭔가 거창한 것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못나 보였던 것은 또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지도 깨닫고 말이야.
네가 우리들의 마음에 예쁘게 새겨놓은 흔적들처럼 가까운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고 작은 것이라도 베풀고 늘 미소 지으며 살면 된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너를 눈앞에 두고 말하고 싶은데 할 수가 없고 너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슬픔인지 넌 모르지? 살아가면서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이별을 하게 될까 생각하니, 한 번도 이런 이별을 해보지 않은 네가 어쩌면 더 좋았을까?라는 바보 같은 생각도 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