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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 리브로 Jun 18. 2023

엉덩이 찜질

그 여자 김미선 4

희진의 일상은 매일 소아과에 가서 주사를 맞는 것이었다.

입원비는 너무나 비쌌고 통원 치료비도 비쌌다. 한 번 소아과에 갈 때마다 3500원이었는데 그것도 사촌 동생의 이름으로 의료보험 혜택을 받아서 나온 금액이다.

공무원과 공립학교 교사들만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고 했다. 부부교사인 고모 덕분에 사촌들은 의료비 혜택을 보고 있었고 희진은 한 살 어린 사촌 동생의 보험카드를 빌려서 그 이름으로 진료를 받았다.


이번에도 열병에 걸려 항생제 주사를 계속 맞아야 했는데 하루에 두 번씩 소아과를 오가며 주사를 맞은 엉덩이의 근육은 며칠이 지나자  여기저기 단단히 뭉쳐서 주삿바늘이 들어가지 않을 지경이 되었고 만지기만 해도 아파서 비명소리가 날 정도였다. 의사는 여자에게 아침저녁으로 뜨거운 물수건으로 찜질을 해주라고 했다.


여자는 솥에서  펄펄 끓은 물을 대야에 반쯤 붓더니 찬물을 조금 섞은 후 수건을 담갔다. 그리고는 빨간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수건을 꺼내어 물기를 짜서 희진의 발가벗긴 엉덩이 위에 철석 내려놓았다.

"아아악!"

"뜨겁지? 그래도 참아봐. 이렇게 해야 뭉친 데가 풀리지."

희진은 엉덩이가 뜨거워서 울었다가 곧이어 화가 나서 울었고 나중엔 아파서 울었다.

뭉친 데를 잘 푸어야 한다며 여자는 온몸의 체중을 실어서 양손으로 엉덩이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살이 익어버릴 만큼 뜨겁던 물수건의 온도는 피부의 감각이 고장 난 듯 금세 적응이 되었지만 세차게 짓눌리자 뭉친 부분이 찢기는 것처럼 아팠다.

"아야! 아아!"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쳐 보았지만 여자는 희진의 허벅지를 깔고 앉아 도망갈 수 없게 만들었다.

물수건이 미지근하게 식는가 싶자 여자는 뜨거운 물을 대야에 더 붓고 수건을 다시  담갔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건 비틀어 짜서 시뻘게진 희진의 엉덩이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앗, 뜨거워! 그만해요! 제발 그만하라고!"

허리를 비틀며 엉덩이를 요리조리 움직여 보았지만 여자의 몸에 깔린 양쪽 허벅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참아! 나도 힘들어. 그래도 마사지를 잘해야 빨리 풀리지."

뜨거운 대야의 물이 식을 때까지 몇 차례 수건 찜질을 더 하고 나서야 여자는 희진의 다리를 풀어줬다.

"봐라, 아까보다 훨씬 엉덩이가 부드러워졌다. 네가 만져 봐."

희진은 훌쩍거리며 바지를 올리면서 고개를 돌려 벌겋게 달아오른 엉덩이 살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으로 살짝 누르기만 해도 악 소리가 날 만큼 아팠다. 그런데 확실히 찜질 전과 다르게 돌덩이처럼 단단히 뭉쳤던 몇 군데의 몽오리가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며칠이 지나자 새벽마다 허리를 못 펼 정도로 아프던 명치의 통증이 훨씬 덜해졌고 낮 동안에도 덜 아팠다. 이제 주사를 맞으러 하루에 한 번만 가도 되었다.

그러나 희뿌연 물약의 고약한 맛 때문에 가끔 고집부리고 약 먹는 것을 건너뛰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심한 통증이 찾아와서 방바닥을 뒹굴며 울었다.

희진은 날마다 아침저녁엔 뜨거운 물수건 찜질을 했고 낮엔 여자와 함께 소아과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양쪽 엉덩이는 찜질 덕분에 딱딱한 몽우리는 없었지만 온통 피멍이 들어 보랏빛이 되었다.

처음엔 걸을 때마다 배가 울리고 아파서 주저앉게 되자 택시를 타고 다녔는데 차츰 통증의 강도가 약해져서 천천히 걸으니 걸을만했다. 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걸어가려면 상당히 걸어야 했고 온몸에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지만 여자는 돈을 아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에 갔다 오고 피곤해서 낮잠을 자고 나면 금세 저녁이 되었다. 학교에 갔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갈수록 더 무기력해졌다.

희진은 누워서 뒹굴거리거나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나 소설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고 텔레비전이 나오는 저녁 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계속 드라마와 뉴스를 봤다.

여자는 빨래와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었다.  희진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온 후에는 밥 먹을 때 말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작은방에 들어가 재봉질을 하며 보냈다. 둘은 서로 할 얘기가 없었다. 희진에게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묻기도 했지만 희진은 입맛이 없었고 딱히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자가 만들어 준 음식은 싱거워서 맛이 없었다.


희진은 가끔 할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할머니, 집에 가고 싶어."

"병원에 그만 댕겨도 된다고 하믄 집에 올 수 있재."

"그냥 집에서 할머니랑 가면 안돼?"

"내가 날마다 병원 댕기는 것이 힘들어야. 하숙생들 밥 해주고 일도 보러 나가야재. 밥 잘 묵고 약도 잘 챙겨 묵고 주사도 열심히 맞으믄 금방 나을 거여."

"할머니 보고 싶단 말이야. 집에 가고 싶어. 흑흑..."

희진이 울고 투정 부리면 할머니가 어르고 달래다가 혼내기도 했다. 여자는 늘 공손하고 조용히 전화를 받았다. 여자가 하는 말은 늘 같았다. "네, 어머님. 네... 네... 염려 마세요."


매일 밤 여자는 희진과 아빠 사이에 누웠고, 할머니 생각에 훌쩍거리는 희진을 끌어안고 등을 다독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슬립 차림의 여자의 살이 닫는 것이 싫어서 희진은 돌아누워 버렸다.

할머니 옆에서 자고 싶었다. 할머니의 땀냄새가 그리웠다.

약도 잘 먹고 뜨거운 물수건 찜질도 열심히 해야지...

맛없는 밥도 잘 먹고 얼른 나아야지...

친구들도 보고 싶고 학교에도 가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희진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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