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 바른 아버지

아버지의 병원생활 4

by 엘 리브로

아버지의 병원생활은 순조로웠다.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물론 병원 밖의 삶이라고 해서 늘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가끔 아버지의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간호사실에서 아버지의 병실로 전화기를 가져다 드리는 경우가 있다.

"어? 어쩐 일인가? 아, 나야 잘 지내지. 여기? 응 아주 좋아. 경치도 좋고 숙소가 조용하고 공기도 좋구만..."

고모님들이나 남동생의 전화를 받을 때도 한결같았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어, 아주 잘 지내."

늘 잘 지낸다고 대답했다.

정말 아버지의 표정은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고 편안해 보였다.


입원 초기에는 할머니(아버지를 키워주신, 나의 외증조할머니) 걱정을 하느라 집에 가야 한다고 수시로 말했었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는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과 할머니뿐인 듯했다.

가끔 내가 물어봤다, "아빠, 엄마 생각은 안 나세요?" 아버지의 대답은 이랬다, "죽은 사람 생각하면 뭐한다냐?"

"그럼, 할머니는? 할머니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하는 나의 돌직구에 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대답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우리 할머니가?"

"에이, 아빠, 제 나이가 벌써 50이에요. 증조할머니 돌아가신 지가 50년 가까이 됐다고요..."

나의 설명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지만 다음날이면 똑같은 대화가 되풀이되곤 했다.

아버지 자신에 대한 기억은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었고 현실의 자식들과 손주들에 대한 기억은 20년쯤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버지는 자주 배변 실수를 했다. 입원한 치매 환자들 모두가 그랬다. 수시로 환자복과 이불을 적시는 환자들에게 기저귀를 착용시키지만 벗어버리고 찢어버리고 대변을 만지기도 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처음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치매라지만 더럽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걸까? 만지고 싶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들과 함께 하면서 이해하게 됐다. 아직 중증은 아닌 상태, 나의 아버지와 같은 정도의 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은 대변 실수를 했을 때 그것을 감추려고 하거나 치우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해서 변기 주변에 떨어진 변을 손으로 집어 들거나 바닥에 문지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스스로 화장실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치매 환자들은 기저귀를 거부했고 야간 취침시간에는 꼭 기저귀를 착용하게 하려는 직원들과 마찰이 잦았다. 처음엔 아버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복도 끝에 있는 아버지의 병실에서는 저녁마다 큰 고함소리가 밖으로 나와 복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싫다고 소리치며 때로는 발길질까지 해대는 아버지와 그에 맞서 앙칼지게 쏘아붙이는 여사님들(요양보호사들)의 거침없는 입담까지... 내가 근무하지 않는 날에는 어떨지 충분히 상상이 가는 상황이다.


소변에 젖어 묵직해진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말을 하는 환자들은 거의 없다. 인지장애가 없고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환자들은 때가 되면 침상 옆에 있는 벨을 눌렀지만 대부분은 소변을 봤는지 대변을 봤는지 상관없이 누워있을 뿐이다. 정해진 시간에 간병사들이 병실을 돌며 기저귀를 갈아줄 때까지 그대로 누워있었고, 간호사가 알아채고 지시를 내리면 그때서야 새 기저귀로 갈아 찰 수가 있었다.


또 다른 부류는 시도 때도 없이 기저귀를 찢어서 바닥에 내동댕이 치거나 이불 아래나 혼자복 주머니 속에 넣어두기도 했다. 중증 치매인 할머니 한분은 대변으로 경단을 빚어놓고 와서 먹으라고 손짓했다.


아버지는 소변이 가득한 기저귀를 침대의 난간에 걸쳐두었다. 그러지 마시라고 하면, "말려서 쓰려고 그러지. 아깝잖냐!"라고 말했다. "걱정 마세요. 병원에서 그냥 주는 거니까 돈 걱정 안 하셔도 돼요."라고 말하면서 기저귀를 치우곤 했는데 알았다고 말하고는 다음에도 계속 되풀이됐다.

병원에서는 기저귀 값을 따로 받는다. 아버지는 다른 어떤 혼자들보다도 거부를 강하게 해서 내가 따로 팬티 기저귀를 사서 사용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건 1회용 팬티예요. 여기서는 빨래를 할 수가 없으니까 속옷 대신 입으시는 거예요."라고 매번 어르고 달래야 했다.

근력이 약한 노인들이라 야간에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아서 환자 스스로 취침 중에는 팬티 기저귀를 착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환자들과 달리 매일 밤마다 기저귀 때문에 고성이 오가고 온몸으로 씨름해야만 하는 환자들도 많았다. 아버지는 팬티 기저귀를 잘 착용하다가도 한 번씩 떼쓰는 아이처럼 굴 때가 있었다.




아버지는 병동 생활을 하는 동안 제 때 식사하고 약을 잘 복용하니 몇 달 지나자 살도 조금 찌고 혈색이 좋아졌다.

내가 제일 걱정했던 것은 틀니 관리였다. 스스로 틀니를 닦고 수시로 넣었다 뺐다 하는 환자들을 보면 정말 부러웠다. 아버지는 절대 틀니를 빼지 않으려 했다. 치매 전에는 관리를 잘했지만 점차 귀찮아지고 모든 게 의욕이 없어지기도 하고 잘 잊어버렸기 때문에도 관리가 안됐다.


병원에서는 간병사들이 틀니를 닦아주고 취침 전에는 침상 머리맡에 있는 각자의 틀니 전용 통에 넣어주기도 했는데 아버지는 그것도 완강히 거부했다.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 쓰지 마시라"며 절대 틀니를 맡기지 않았다.


내가 저녁 근무를 할 때는 아버지에게 간곡히, 애원하듯이 부탁했다.

"틀니를 계속 착용하고 계시면 안 돼요. 입안에 세균도 번식하고 잇몸에 혈액순환도 안돼요. 계속 잇몸이 짓눌려서 점점 내려앉으면 그나마 틀니도 사용 못하시게 돼요. 잇몸으로는 제대로 음식도 못 드실 텐데..."

"알았다, 이따가 내가 할 거니까..."

"곧 주무실 시간이에요. 지금 얼른 제가 씻어서 갖다 놓을게요."

"내가 한다니까 그러네! 어디서 틀니를 빼라고 난리냐, 사람들 다 보는데서..."

"아이고, 아빠! 이 방에 어르신들 다 틀니 끼셨어요. 그리고 아무도 아빠 안 쳐다봐요. 관심도 없고 지금 다 주무신다고요!"

마지못해 인상을 쓰며 틀니를 빼주는 아버지. 난 간호사실 한쪽 구석의 세면대로 가서 아버지의 틀니를 칫솔로 닦고 전용 세정제를 녹인 물에 담그고 나서 그날의 환자상태 등에 대해 나이트 번에게 인계할 내용을 점검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틀니를 깨끗이 헹구어 깨끗한 물로 채운 통 속에 담가서 아버지의 병실에 가져다 놓는다. 아버지는 그새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있다. 복도 천장의 전등 불빛이 스며드는 어두운 병실에서 아버지의 잠든 얼굴을 몇 초간 바라보다 병실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것도 저녁 근무 때마다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응급상황이 벌어지기도 하고, 유난히 항생제 정맥주사를 맞는 환자의 수가 많을 때도 있었다. 저녁에 새로 입원한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하고 이것저것 기록에 남기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다.




교대 후 병실 순회할 때 쓱 지나치며 인사를 건네고는 퇴근할 때까지 한 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못 보는 날도 많았다. 늘 일에 치여 있었다.

그래도 감사할 일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코로나 시국이라 면회도 안되는데 다른 혼자들과 그 가족들은 서로를 그리워하며 얼마나 애가 탈 것인가 생각하며...

그렇게라도 아버지를 볼 수 있었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어린애처럼 단순해져 버린 아버지가 귀엽기도 했다. 간식거리만 바라는 아버지, 뭐든 안 하겠다고 고집부리던 아버지.


직원들에게 아버지는 점잖은 어르신이었다. 화낼 때도 욕설은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무언가 요구할 것이 있으면 조심스럽게 데스크로 다가와서 "저기... 실례지만... 혹시..." 하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걸곤 했다.

소변에 젖은 바지를 갈아입고 싶을 때도 "저기... 바지가 좀 젖었는데 갈아입을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병실마다 정해진 요일에 목욕을 하는 날에도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았다.

내가 알아서 목욕탕에 갈 건데 왜 지금 목욕을 하냐고, 어제 했는데 뭔 목욕을 또 하냐고 언성을 높이다가 "아니, 여자들이 남자 목욕탕에 들어오믄 어쩐다요?!"라는 말에 간병사들은 깔깔깔 웃어댔다.

환자들이 모멸감을 느낄 수 있는 농담도 서슴지 않는 간병사들이었다. 다른 환자들은 더 심한 말로 싸움을 걸기도 했는데 아버지는 "거 별소리들을 다 하시네..." 하는 정도로 언쟁을 피했다.


요양병원엔 괴팍한 성격의 노인들도 많다. "아, 바지 좀 갖다 주지 않고 뭐하는 것이야?"라고 소리치고 삿대질을 하는 할아버지, 요양보호사에게 기저귀나 갈아주는 하찮은 일 하는 X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자신들의 기분에 따라 직원들에게 하대하고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환자들 중에 있었다.

나의 아버지가 그러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아버지의 성격에도 독특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상식 이하의 언행을 한 적이 없었고 치매환자가 되어서도 그런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색연필로 칠한 그림

아버지가 그립다.

매미소리와 산새들의 지저귐이 한창인 여름의 정오에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초록빛 가득한 나무들과 그 무성한 이파리들 사이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아름답다.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유원지의 비탈길과 지팡이를 짚고 힘없이 걷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그립다.

"아빠, 누워계시지만 말고 자주 나와서 걸으세요. 근육이 다 말라버렸잖아요."

"아빠, 여기 좀 보세요~"라고 말하며 뒤에서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던 나의 모습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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