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털

나의 직장생활 1

by 엘 리브로

수간호사에게 미운털이 박힌 나는 병동에서 근무하는 하루하루가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쉬운 날은 없었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한 초보 간호사의 길인지라 뭐든 새로 배운다는 각오로 열심히 일했다. 좌충우돌하면서 3개월을 보냈고 그 사이 아버지도 혈당 수치가 안정되어 가고 섬망 증상도 점차 좋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힘들게 익혀가고 있던 EMR시스템이 4월 초부터 완전히 다른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다.

간호기록이며 의사들이 기록하는 의무기록과 오더, 검사항목을 찾고 입력하고 입퇴원 수속에 필요한 모든 자료들을 스캔하고 입력하고 불러오는 등 전산으로 처리하는 업무를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했다.


환자들에게 필요한 실제적인 활동들을 해가면서 전산 시스템까지 완벽하게 익힐 시간이 부족했다. 늘 누군가에게 (주로 연차가 오래된 능숙한 조무사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받았다. 정맥주사와 채혈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연세가 많고 오랜 병원생활로 혈관 찾기가 쉽지 않은 환자들이 대부분이어서 환자 한 명의 혈관을 잡느라 두세 사람이 30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때로는 너무나 혈관이 안 나오는 환자의 경우 주치의에게 보고해서 중심정맥관을 잡아달라고 했는데(수간호사의 판단으로...) 내가 근무하는 날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하루나 이틀 쉬고 나서 근무에 들어가 보면, 내가 그렇게나 힘들게 혈관을 찾아야 했던 환자들의 쇄골아래에 중심정맥관이 삽입되어 있었다. 중심정맥관을 삽입해 놓으면 환자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줄 필요가 없었고 혈관을 잡느라 시간을 소모해서 중요한 약물주사의 시간이 뒤로 늦춰질 염려가 없었다.

처음부터 파악해서 서로가 덜 힘들게 일을 처리할 수도 있었을 텐데, 늘 나는 어려운 상황에서 허둥댔고 수간호사의 불호령에 더욱 긴장해서 실수가 더 잦았다. 어렵사리 잡아놓은 혈관의 주삿바늘을 인지저하가 있는 환자들은 수시로 잡아 빼 버렸다. 항생제 주사가 10명이 넘어가는 기간에는 종일 주삿바늘과 전쟁을 치러야 했는데 경력이 5년 이상 된 간호사와 베테랑 조무사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서로 도움을 잘 주었기 때문에 내가 성공하든 다른 직원이 도와주든 무리 없이 업무는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항상 수간호사의 눈에는 내가 혼자서 커버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무능력자로 보였고, 난 제대로 트레이닝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면서 적응해 나가느라 힘이 들었다.

저녁 근무와 주말 근무는 똑같은 병동에서 일하면서도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느긋한 마음으로 환자들을 대할 수가 있었고 실수에 대한 부담감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도 혈관주사와 EMR 시스템에 능숙해질 날이 오겠지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그날의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수간호사와 함께 근무를 해야 하는 날이면 전날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자다 깨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이른 아침 교대 보고를 받고 나서 다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에도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사 준비에 들어가야 했는데 언제 머리 뒤에서 날아들지 모르는 수간호사의 목소리를 의식하느라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 지경이었다.

전산에 입력을 하고 있다가 어느 환자의 수액줄이 빠졌다는 소리가 들려서 벌떡 일어나면 "하던 일 마저 해야지 자꾸 그렇게 일어나면 어떡해! 왜 일에 순서가 없는 거야?"라는 질타가 이어졌다.

또 어떤 때는 열심히 서류를 들여다보다가 누구 환자의 주사 바늘이 빠졌다는 소릴 듣고도 조무사 중 누군가가 달려가겠거니 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주사는 샘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냐?" 하는 날카로운 수간호사의 말이 날아왔다.

점차 다른 직원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난히 00 샘한테 왜 저러시지?' 하는 쑥덕거림...


날이 갈수록 수간호사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았고 다른 조무사들도 눈치를 보며 긴장 상태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언제 무슨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숨 죽이며 손발만 바삐 움직였고 얼굴 표정에서도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어느 날 나와 동갑내기인 조무사 중 한 명이 퇴근길에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애들도 다 컸으면서 뭐 하러 나와서 이 고생을 해? 나야 아직 애들이 어리니까 그러지만..."

"글쎄... 노는 것보다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자기라면 때려치우겠다. 그냥 편히 살아!"

나도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나 멀리 와버린 것 같았다.


아버지는 어떡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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