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잇몸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아내와 같이 주말에 자주 가던 카페가 있습니다. 2층이 탁 틔어 있어서, 자리만 잘 잡으면 카운터 바로 위에서 1층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CCTV가 된 기분입니다. 자연스럽게 자주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익힙니다. 드레스 코드도 파악합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바지에 슬리퍼입니다. 주말 동네 카페가 다 그렇지만, 애들 뛰기 좋은 곳이라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애들이 과속하면 단속하고, 애들이 모험 떠나면 조수 노릇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들 애 데리고 옵니다. 우리만 둘입니다.
사람 구경이라고 했지만 사실 애들 구경입니다. 갓난아기도 있고, 폰 화면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애도 있고, 뭘 바리바리 싸와서 그리고 있는 애도 있고, 좀 컸다고 엄마 아빠랑 놀아주기 지겨워하는 애도 있습니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돌이나 지났을까 싶은 사내 녀석입니다. 자기 힘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인생을 바친 그 녀석의 이름은 모르지만, 편의상 산악인 엄홍길 대장님의 이름을 따 계단인 홍길이라고 하겠습니다.
홍길이는 의지는 30층도 넘지만 몸은 아직 계단 세 칸이나 될까 말까 합니다. 누가 손을 잡아 주지 않으면 계단에서 거의 네 발로 깁니다. 오를 때나 내릴 때나 위험해 보입니다. 그래서 홍길이 옆에는 항상 셰르파* 아빠가 있습니다. 손 꼭 잡고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 셰르파는 산악 원정을 돕는 분들을 통칭합니다. 몰랐는데 에베레스트에 사는 한 부족이라고 하네요.
불안한 아빠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불굴의 정복욕에 더해 독립정신까지 강한 홍길이는 어찌 됐든 혼자 가겠다고 떼를 씁니다. 두 발로 오르지도 못하면서 아빠한테 손 놓으랍니다. 실컷 아빠 덕에 한 걸음 뗐으면서, 아빠 손에 매달리다시피 했으면서, 두 발로 서는 순간 바로 손 놓으랍니다. 한 칸 오를 때마다 반복되는 그 귀여운 기회주의의 리듬에 눈을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홍길이를 보는 동안은 마냥 귀엽고 재미있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홍길이 아빠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전까진 그랬습니다. 으쨔, 하고 홍길이가 온몸에 힘을 줄 때는 아빠도 긴장합니다. 뒤뚱거림이 멈추면 홍길이는 이 손 놓지 못할까, 하고 호통을 칩니다. 마지못해 손 놓는 척 살짝 뗐다가 - 잠깐 옷깃을 잡은 다음 - 슬그머니 손을 다시 잡는 그 짧은 순간, 아빠의 만개한 잇몸을 봅니다. 이제 홍길이를 보면서 귀엽다 귀엽다 웃는 순간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홍길이가 커서가 아닙니다. 손 떼고 다시 잡는 그 찰나, 활짝 드러난 그 잇몸이 세상 너무 부러워서 홍길이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게 되어서입니다.
홍길이 아버님의 잇몸을 목격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마음속에 화가 가득 차 있어 고슴도치 같던, 아직 마음 치료를 시작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신던 스니커즈가 터지고 지저분해져 새 신발을 사러 가기 전에 카페에 들렀습니다. CCTV 자리는 선수를 뺏겼지만 그래도 쓸만한 자리에 앉았습니다. 곧 홍길이 가족이 도착했습니다. 홍길이는 이미 출입문으로 들어온 후이지만 문열림 버튼을 눌러 문을 열겠다는 강한 의지를 몇 차례 표명한 후에 자리에 앉았습니다. 곧 계단인의 2층 등반이 시작되고 셰르파가 출동했습니다. 그리고, 뜬금없는 고슴도치 난임 아빠의 자학도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를 갖지 못해 병든 마음은 정말 이상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괴롭힙니다. 그날 신고 버리려던 신발은 정말 낡았고, 애초에 싸구려를 산 데다, 다이소에서 산 본드로 벌어진 부분을 덕지덕지 붙이기까지 했던 것이었습니다. 물건에 돈을 많이 쓰지도 않고, 신발을 사 모으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스스로를 찌릅니다. 나도 내 새끼 신발 사러 가야 되는데, 내 신발 사서 뭐 하겠다고 주말에 기어 나왔나. 내 새끼 신발도 못 사주는데 남의 새끼 계단 오르는 건, 그 발은, 그 신발은 뭐 하러 쳐다보고 앉았나. 내 새끼도 아닌데 맨날 계단 오르는 그 녀석인지 아닌지 기억하면 뭐 하나.
홍길이는 위층 아저씨 속마음이 저렇게 어지러운지 몰랐을 것입니다. 제가 괜히 왜 저랬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갑작스레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치솟고, 자신을 베고 찌르던 때가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이해합니다. 밑도 끝도 없는 분노가 바깥보다 안을 향해서 그나마 다행인가 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안에서만 부글부글 끓으면 용광로가 됩니다. 다른 아픔과 상처를 녹여 주지도 못하면서 끓기만 하는 용광로입니다. 그렇다고 밖으로 안 새는 것도 아닙니다. 속이 시뻘겋게 끓어오르는 남편 옆에서 아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회사 동료들,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아픔을 쏟아내는 나를 받아주어야 했던 친구들은 어땠을까요. 사죄할 일이 참 많습니다.
계단인 홍길이의 2층 등반을 응원하던 날도 이제 옛 일이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무서워 카페에는 못 갔지만 홍길이는 어딘가에서 다른 계단을 정복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아빠 도움 없이도 잘 오르내릴 것입니다. 아니면 계단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일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코로나가 물러가고 다시 카페를 찾아도, 계단에서가 아니면 홍길이를 못 알아볼 것 같습니다.
홍길이 인생이 변하듯이 제 인생도 변하면 좋을 텐데, 저도 홍길이 아버님 같은 미소를 지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계단을 오르는 아이들을 보거나, 혹은 그냥 계단을 보는 것만으로도 홍길이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아내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오를 때도 그렇습니다. 가끔, 괜히 그렇게 홍길이를 생각합니다.
P.S. 혹 스스로도 잊을까 싶어 사족을 답니다. 이 글을 서랍에 저장해 놓고 아직 발행하지 않은 시점에서, 저 날의 일을 기록한 메모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의외로 메모에는 귀여운 홍길이와 셰르파 아버님에 대한 묘사보다, 제 마음속 용광로를 자학적으로 기록한 부분이 훨씬 많았습니다.
메모는 ‘아이가 없어서 생기는 우울증이란 이런 것이다’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끝납니다. ‘…옆구리 터져서 국물이 줄줄 새는 음식물쓰레기 봉투처럼 내 속에서 흘러나온 생각이 나를 더럽혀 혼자서 악취 속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어느새 내일모레 마흔인 남자 어른이 커피 먹다 지 혼자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핸드폰 붙잡고 쓸데없이 이 화면 저 화면 넘기고 앉아있게 되는, 그런 것이다.’
많이 아팠는데 나아졌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다행입니다. 제 인생도 조금은 변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