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오디션[품질 검사]
난임 부부에게 산부인과 방문은 오디션입니다. 우리도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음을 어필해야 합니다. 희망이 가득한 곳이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렇지 않습니다. 기대와 걱정이 반반이라도 되면 좋겠지만 그저 걱정뿐입니다. 기대에 부풀어 있는 부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겉으로 봐서 그렇습니다. 저는 속으로도 그렇습니다.
심사위원은 언뜻 보면 선생님이지만 아닙니다. 선생님의 정체는 사실 중개인입니다. 우체부, 택배 배달원, 브로커, 공인중개사, 뭐라고 부르든 중개와 배달이 본업입니다. 진짜 심사위원은 멀리 숨어서 지켜보는 자식놈입니다. 조그만 손에 O, X가 적힌 팻말을 쥔 채로 턱을 괴고 곁눈질로 엄마 아빠를 위아래로 살펴봅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아마 태어나기 전부터 자식이 갑이라서 그런가 합니다.
난임을 받아들인 이후부터 산부인과는 일상적인 곳이 됩니다. 일상인데 무덤덤해질 수는 없는 이상한 공간입니다. 교무실에 매일 불려가도 이 정도로 힘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디션이 사람을 마냥 지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지칩니다. 오디션 보러 왔으니 춤이라도 추면 좋을 텐데 상품처럼 검사만 받습니다. 오디션이라고 쓰고 품질 검사라고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엄마 소, 아빠 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합격, 그 한 단어가 세상 무엇보다 무섭습니다. 불합격자의 형벌은 태형입니다. 칼 달린 몽둥이에 시도 때도 없이 얻어맞습니다. 멍든 가슴을 칼로 또 찌르는데 비명도 안 나오고 눈물만 흐릅니다.
사실 오디션은 엄마 소가 거의 도맡아 합니다. 가수로 치면 한쪽은 노래 부르면서 기타도 치고 춤도 추는데 다른 한쪽은 손뼉만 치는 그룹 같습니다. 엄마 소는 병원에서는 내 몸을 휘젓는 기계를 견디고, 집에 와서는 때 되면 약 먹고 때 되면 내 몸에 주사 놔야 합니다. 와 줬으면 하는 녀석은 안 오고 매달 오던 놈이 또 올 때의 참담함, 어쩌다 새싹이 돋았다가 꺾여버렸을 때의 슬픔이 모두 엄마 소의 몸을 무대로 합니다.
아빠 소는 손뼉 열심히 치고 매니저 일 잘하면 됩니다. 물론 손뼉이라고 마냥 쉽지만은 않습니다. 손뼉 잘못 쳐서 탈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 부담이 큽니다. 부부는 한 팀이라 한쪽만 실수해도 같이 탈락하기 때문입니다.
아빠 오디션은 산부인과에서 유일하게 남자만 갈 수 있는 방에서 진행됩니다. 오디션이 어려운 이유는 밖에서는 제일 경건하지 않게 하는 일을 경건하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빠 오디션은 출발부터 난해합니다. 일단 출입문에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작명의 어려움, 많이들 쓰는 이름의 불편함도 이해는 합니다. 안내하는 간호사님의 표정은 부끄러운 것인지 불쾌한 것인지 알쏭달쏭합니다. 문을 열고 속사포 랩처럼 설명을 쏟아내고는 후다닥 달아납니다. 혼자 남아서 문을 닫고 나면 한숨이 나옵니다.
우두커니 서서 방을 둘러봅니다. 방의 모습은 병원마다 가지각색입니다. 화장실이 딸려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의자만으로도 꽉 차서 드나들기 힘든 곳도 있습니다. 테이블에 옷걸이까지 있는 곳도 있지만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영상기기는 기본으로 제공됩니다. TV가 있는 곳도 있고 컴퓨터가 있는 곳도 있습니다. 어디서 구하셨는지 동영상 파일을 몇 개 구비해 두신 곳이 있는가 하면, 선택과 조작이 불가능한 곳도 있습니다. 채널 고정입니다. 헤드폰이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습니다. 사실 환경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좋아서 감사할 것은 있어도 나빠서 불평할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내심 내 자식 만드는 곳인데, 하고 살짝 원망하기도 합니다.
마냥 서 있을 수는 없기에 어떻게든 오디션을 봅니다. 경건한 마음을 제대로 털어내지 못하니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빨리 도망가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시간을 너무 오래 끌까 봐 눈치도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 또한 지나갑니다. 문을 열고 나와, 기를 쓰고 아무도 없는 척 하는 것 같은 공간에 조심조심 컵을 내려놓고 돌아섭니다. 등 뒤에서 쏜살같이 창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대기실로 나오면 남녀 할 것 없이 약속이나 한 듯 서로 눈을 피합니다. 도망갈 시간이란 뜻입니다. 마음은 뛰고 있는데 몸은 그러지 못합니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걸어서 병원 밖으로 나와 또 한 번 한숨을 쉽니다.
병원에 두고 온 아내가 눈에 밟힙니다. 사실상 매일이 오디션인 아내입니다. 저도 방에서 소가 된 것처럼 느꼈지만 아내는 늘 그럴 것입니다. 부끄러움이 이내 잦아듭니다. 아빠 소, 엄마 소, 그래도 둘이라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