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가 태어나지 못한 이유
영화든 책이든, 아이만 나오면 내 자식처럼 느껴져서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작품 전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몇몇 장면에 매몰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행복한 아이들과 행복한 부모들은 나은 편입니다. 아이들이 힘들면 힘들수록, 혹은 곤경에 처한 아이들 때문에 부모가 힘들수록 작품 밖으로 밀려 나오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많이 클로즈업되거나 아이들이 괴로운 장면이 있는 작품들을 피하려고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최근 고전 명작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몇몇 작품을 읽었습니다. 헤밍웨이의 문장을 좋아합니다. 활자가 눈에 와 닿자마자 그림이 됩니다. 영화를 보는 기분입니다. <무기여 잘 있거라>를 한참 잘 읽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또 작품 밖으로 튕겨 나왔습니다. 전쟁통에 얻은 자식이 세상에 나오다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나오기 전에 이미 떠났을 수도 있다는 말이 문을 꽝 닫아 버립니다. 문 열고 남은 몇 줄 마저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영화를 봅니다. 일부러 아이들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어 보이는 <Vacancy>를 골랐습니다. 숨막히는 탈출극인데 소재가 보통 자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아이를 잃고 곧 이혼하려던 부부인 줄은 몰랐습니다. 미루고 미루던 <세 얼간이>도 봅니다. 유쾌합니다. 그런데 대학생들 얘기에 분만 장면이 그렇게 오래 나올 줄은, 게다가 역경 끝에 태어난 아기가 숨을 안 쉴 줄은 몰랐습니다. 아기는 다행히 눈을 떴지만 저는 눈이 잘 안 떠집니다. 또 집중이 안 됩니다.
사실 애들만 나오면 시도 때도 없이 감정 이입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운이 나빠 감상하기 힘든 작품만 고르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수는 저한테만 특별한 장면들일 것입니다. 뭐든 적당해야 하니 감정을 잘 다스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래도 어린아이들을 괴롭히거나 아이들이 죽는 장면이라도 나오면 공포와 분노가 폭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건 참 마음대로 안 됩니다. 어릴 때는 귀신 영화가 무섭고 한동안은 우주 영화가 그렇게 무섭더니, 이제는 애들 죽는 영화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습니다. 물론 쫄보라서 귀신을 아예 겁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컨져링처럼 무서운 영화도, 시작할 때는 긴장하고 보지만 악령이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혼자 전투 모드가 됩니다. 무섭긴 개뿔입니다. 남은 시간은 영화 감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부글부글 끓으면서 온갖 욕을 다 합니다. 세상의 아버지들이 어찌 그리 용감한지 새삼 이해됩니다.
슬픔의 본질은 비가역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것. 내 힘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 여벌이 있을 수 없는 것.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상실은 곧 슬픔이 됩니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많은 작가님들이 끊임없이 인연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눈물 쏙 빼는 데 죽음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애들은 좀 가만 놔두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브런치 작가와 함께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에 '성냥팔이 소녀'로 응모했습니다. 브런치에서 참고를 위해 원문을 제공해 주는 줄도 모르고, 모 온라인 서점에서 500원 주고 샀습니다. 사실 특별한 의미 없이 먼저 읽은 것인데, 덜컥 주제로 정하고 그 자리에서 단편을 썼습니다. 이유는 뻔합니다. 또 애를 죽이니까 화가 나서 그랬습니다.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 단편에 이미 몰입해 있는데, 이제 막 아빠가 된 참인데 또 애가 죽습니다. 또 혼자 부글부글 하다가, 내가 이 소녀를 안 죽게 만들자고 결심합니다. 다만 이 아이의 삶을 풍부하게 쓸 경험이 내겐 전무하니, 태어나지 않은 걸로 하자. 그러면 죽지 않는다.
그렇게 '성냥팔이 소녀'를 다시 썼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감상, 분노, 창작, 안도를 경험해 봅니다. 제 글이 안데르센 선생님의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혼자 몰입해서 눈을 꿈뻑거리며 쓰는 동안 내심 안도했습니다. 한 녀석이라도 덜 죽게 했습니다. 비가역성에 도전이라도 해 봤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가라앉습니다. 물론, 인연을 잃지 않기 위해 이어지지 않게 했으니 좀 비겁하긴 합니다. 그래도 빼앗지 않았습니다. 저는 안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