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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정 Aug 29. 2021

노인과 강가

집돌이 충전시간

올봄에 기차 타고 출장 가는 길이었습니다. 창밖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강둑에서 낚시 중인 한 할아버지를 봅니다. 멀어서 확실치 않으니 할아버지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 같은 아저씨가 휴가를 즐기는 중인데 착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보기엔 할아버지였으니 그냥 할아버지, 아니 노인이라 하겠습니다.


보기 드문 풍경도 아니고 이상한 점도 없었는데, 그 모습이 묘하게 자꾸 떠오릅니다. 당시의 느낌이 '세상을 혼자 다 가진 것 같다'는 명료한 문장의 형태였다는 점도 기억납니다. 독차지라고 표현하거나 희열에 찼다고 묘사하기엔 너무 평온했습니다. 노인은 세상을 가지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조그만 의자, 낚싯대 두어 개와 미끼, 자잘한 장비들, 그리고 옷과 모자. 준비물은 이 정도였을 것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공짜입니다. 물소리, 풀내음, 평온함이 그 공기와 온도와 햇살 속에 녹아들어 기분 좋게 흐릿해졌을 것입니다. 그 흐릿함이 오히려 또렷하게 의미를 전달했을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이 세계는 오직 나만을 위한 것이라고.




코로나로 세상을 혼자 가질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사람 만나면  빨리는 집돌이 집순이들의 완전충전 빈도가 높아집니다. 집에는 지난 봄 노인이 가졌던 것과 같은, 강물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햇살과 바람소리는 습니다. 그래도 조용한 음악 듣고 아내와 커피 마시며 둘이서만 노닥거리는 시간이 좋습니다. 사람 좋아하고 떠들썩한 분위기 좋아하는 분들께 이런 조용한 시간도 좋노라고 꼰대질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면 됩니다. 코로나로 불편하고 힘든 분들께 죄송하지만 삶이 약간 나아진 이들도 분명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평생에 지금 말고는 없을 수도 있으니,  이야기해도 되지 않나 싶습니다. 평화롭고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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