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것 없습니다
한동안 죄의식이 삶을 짓눌렀던 적이 있습니다. 이때까지 자식을 갖지 못한 것은 과거의 어떤 잘못에 대한 벌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꽤 오래 마음 치료를 받았으니 이제는 좀 덜 하긴 합니다. 그래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사람은 원인을 찾습니다. 모든 일에 원인이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납니다. 콩 심은 데 콩 말고도 많이 납니다. 팥 심은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합리적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면 비합리적 원인이라도 찾아내려고 합니다. 아, 내가 예전에 이런 잘못을 저질러서 벌을 받는구나. 그때 그 잘못이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결국 어떻게든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고야 맙니다.
산부인과 한참 들락거릴 때에 특히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마 죄의식이 서로에게 전염되어서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앉을 자리 없이 빼곡한 산부인과 대기실은 죄인들로 가득합니다. 생물의 기본적인 기능도 못 하는 잉여인간 같아서, 남들 다 하는 일도 못 해내는 실패작 같아서, 죄의식과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 머리를 숙이고 끊임없이 한숨을 내쉽니다. 그리고 그 한숨은 옆자리로, 또 옆자리로 퍼져나가 서로의 마음을 오염시킵니다. 잘못한 것 하나 없는데 스스로 죄인이 됩니다.
영화 <올드 보이>를 보면, 7.5층에서 나온 후 주인공 오대수와 이우진의 통화 내용이 참 볼만 합니다.
(오대수) 누구냐, 너?
(이우진) 옷은, 마음에 들어요?
(오대수) 날...... 왜 가둔 거냐?
(이우진) 누굴 것 같애요?
(오대수) 유응삼?
(이우진) 아니요.
(오대수) 이소영이 청부했나?
(이우진) 으음, 다른 사람.
(오대수) 이종용? 강창석? 황주연? 김나성? 박진우? 임덕윤? 이재평, 국수란, 누구야 너 누구야!?
사람을 15년 동안 가둘 만한 인간이 저리 많을까요. 오대수의 술주정은 보통이 아니지만, 평소의 삶까지 그렇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만일 오대수도 보통 사람이라면 용의자가 저리 많을 리가 없지요. 보통 사람에게 원한이랄 것이 없는데 답은 찾아야 하니, 결국 사소한 잘못들을 원한 수준으로 확대해야 했을 것입니다. 애초에 그 잘못들이 15년 감금의 원인이 될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선형적 사고방식에 익숙합니다. 무엇이든 1차 함수로 단순화하려 합니다. 시작점, 즉 과거를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과학의 결정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마디로 똑똑한 놈이나 못난 놈이나, ‘예전에 저랬으면 지금 이렇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마저도 이 굴레를 스스로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별로 위안은 안 됩니다. 계속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사고방식을 고치기 어렵다 하더라도, 이제는 좀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한평생 꼿꼿하고 바르게만 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 벌을 받을 만큼 잘못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벌이라면 난 잘못한 것 없습니다. 아내도 잘못한 것 없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스쳐 지났던 난임 부부들, 지금 이 순간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난임 부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잘못한 것 없습니다. 우리, 죄인 아닙니다. 우리, 벌 받는 거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