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그리움의 맛

by 배유정

일반 상대성 이론에는 '시간 지연'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빨리 움직이는 물체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느리게 움직이는 물체일수록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흐른다는 뜻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까르르 뛰노는 아이들의 속도와 배 나온 친구들의 속도 차이만큼 시간도 달리 흐를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비교 불가능할 만큼 단위부터 다르고 애초에 인생의 시계는 측정되지도 않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고 몸이 느려질수록, 체감하는 시간은 정말로 더욱 빨리 갑니다.


나이가 많이 들면 시간이 너무 빨라 어지럽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어르신들은 그래서 가만히 앉아 계시나 봅니다. 혹은, 멈춰섰기 때문에 빠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햇살 아래 석상처럼 가만히, 하루 종일 같은 자리를 지킵니다. 좀만 젊어도 좀이 쑤셔 못 견딜 노릇인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잘만 앉아 계십니다. 그렇게 마주 앉아 각자의 눈 안쪽을 바라보고, 흑백 필름처럼 기록된 옛 기억을 끊임없이 얘기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기억을 파먹고 산다는 게 이런 건가 합니다. 세상의 어지러움으로부터 눈을 돌려, 옛날에 본 것들을 반추하는 것. 음식도 많이 안 잡숫고 무슨 얘깃거리가 저리 끊이지 않나 했더니 소싯적에 많이 드셔서 괜찮으신가 봅니다.


저도 나중에 꺼내 씹을 추억을 부지런히 만들어야겠습니다. 다만, 자식놈 생각은 씹어도 쓴 맛만 날까 걱정입니다. 얼굴을 본 적 없어 기억도 없고 그리움만 쌓여 있을테니, 꺼내 씹을 것도 그리움 뿐이겠지요. 쓰디쓴 그리움을 씹고 또 씹으면 얼마나 서러울까요. 자식에 손자 생각까지, 아주 사탕 상자 끌어안은 옆집 영감들 보고 심통이나 안 부릴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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