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슬그머니 손 놓기

by 배유정

마음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로 기억합니다. 조금씩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문득, 중력이 사실은 거꾸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은 단단하게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는 것이 아니라, 풍선처럼 대롱대롱 묶여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으로 묶었는지, 어디에 묶었는지만 다를 뿐입니다. 실이든 밧줄이든, 기둥에 묶었든 갈대잎에 묶었든, 매듭이 풀리면 풍선은 하늘로 날아갑니다.


나라는 풍선은 무엇으로 묶여 있나, 하고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얄팍한 실입니다. 앞니 빠진 초등학생 치실로도 못 쓰게 생겼습니다. 그럼 어디에 묶여 있나, 하고 또 내려다봅니다. 아내의 손이 보입니다. 얄팍한 실은 아내의 손가락에 묶여 있고, 그나마 놓칠세라 아내가 꼭 쥐고 있었습니다. 내가 아내를 못 놓고, 아내가 나를 못 놓아 여기 이 세상에 묶여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없었다면 구름 보고 별 보고 달 보며, 흔들흔들 날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아내를 많이 사랑합니다. 인생이 풍선이라면 아내의 풍선은 누구보다 단단히 묶어 주고 싶습니다. 둥실둥실 뜨지도 못하게, 볼링공보다 무겁게, 바닥을 짓누를 정도로 튼튼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하늘은 이제 그만 쳐다보기로 합니다.




마음속에도 풍선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실을 손에 쥐고 있으면 그게 인연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놈 풍선을 너무 세게 쥐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고 곱씹어봅니다. 만약 현실의 인연과 상상 속 인연이 공존할 수 없다면, 상상 속 인연을 놓지 않으면 현실의 인연에 닿지 않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인연이란 살이 맞닿으며 맺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자식과의 인연은 반대입니다. 열 달을 맞닿았던 살이 서로 떨어져야 비로소 새로운 인연이 됩니다. 놓아야 이어지는 인연이라니, 마음속 풍선도 이러할까 싶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자식놈, 마음속에서 너무 오래 키웠나 싶습니다. 이제 그만 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 살이 맞닿을 일이 없더라도, 마음속에서 마냥 꼭 쥐고 사는 것도 못 할 노릇입니다. 이제 슬금슬금 조금씩 놓아 볼까 합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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