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사유 : 따옴표

만남으로 헤어질 수 없다면

by 배유정

모든 만남이 이별을 전제로 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만남이 이별을 피할 수 없을 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만남이 좋은 이별을 맺기를 소원합니다.


나와의 만남은 죽음을 통해서만 이별로 맺어집니다. 좋은 이별을 선택할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이들과의 이별은 이유가 제각각인 데다 일부는 내가 시기나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내와는 내가 나와 이별할 때 헤어지고 싶습니다. 홀로 남겨두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먼저 보내기는 싫습니다. 참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다들 왜 하루만 먼저 가고 싶다고 하는지 가슴 깊이 이해됩니다.


만일 저세상에서 지난 인연들을 정리해야 한다면, 아내와의 이별 사유에는 따옴표를 쓰고 싶습니다.


(관계) (이별사유)

본인 본인사망

아내 "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만남은 현실과 좀 다릅니다. 죽음이 아닌 탄생을 통해서도 이별이 가능합니다. 얼굴도 모른 채 마음속에서만 키우던 자식들과 현실에서 살이 맞닿으면 만남이 곧 이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지금 마음속에 있는 녀석은 대리인 혹은 대변인 자격으로 내 인생에 참석한 셈입니다.


계약서도 안 쓰고 마음 속에 무단전입한 이 녀석 이름은 유정이, 아니 유정이 대변인입니다. 유정이는 언젠가 정말로 아이가 생기면 주려고 지어 둔 이름입니다. 아빠가 빌려 쓰고 있는 셈입니다. 유정이는 얼굴도 모르고 언제 만났는지도 잘 기억 안 납니다.


유정이 대변인과는 마음 속에서 만났으니, 이별은 유정이와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끝내 그럴 수 없다면, 이 녀석과의 이별 사유에도 따옴표를 쓰고 싶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속에 붙잡고 있는 것이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글자보다 따옴표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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