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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정 Jan 21. 2022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사랑은 눈빛으로도, 손끝으로도, 포옹으로도 전해집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가능하도록 해 준 과거의 노력을 현재에 부르는 이름이 정(情)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복잡하면 눈빛으로도, 포옹으로도 모두 전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이 부족해서라고 느끼지 않도록 하려면,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과 잘 들어주는 것 모두 중요합니다.


힘들 때 속마음을 얘기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일이 많을 때 상대를 소용없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부가 힘들 때 서로 기대지 않는 채로 늙어버리면, 매일매일이 힘든 노년에 상대는 '일상적으로' 소용없는 인간이 됩니다. 좋은 일은 아닙니다.




너희는 아이를 갖기 어려울 거야, 그 말을 송곳 선생님에게 들은 이후로 흘러넘치는 아픔과 그리움을 시집에 담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브런치에서 다른 형태로 감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모두가 볼 수 있는 이상한 일기장입니다. 만나지 못한 딸에게 남기는 메시지이자, 매일 보는 아내에게 쓰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내 마음을 충분히 담았는지 계속 살펴보며 쓰고 또 고칩니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도 잘 표현되어 있는지 살펴봅니다.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 TV에 유명한 산부인과 선생님이 나왔습니다. 신의 손이라 불린다는 분입니다. 아내가 보고 있길래 잠깐 눈치를 보다가 슬쩍 한 마디 던져 봅니다.


"저런 분도 한 번 찾아가 볼까?"


아내의 눈에서 또르륵 눈물이 흐릅니다. 조금 예상은 했지만 대답이 좀 의외입니다.


"이제 다 자신이 없어."


아내와 매일 잘 먹고 깔깔거리며 지냈지만, 한편으로는 저렇게 작아져 있었습니다.




그동안 만났던 선생님들도 모두 실력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어차피 더 새로운 시도랄 것도 없습니다. 다만 송곳 선생님 이후, 우리 부부 사이에는 자식과는 인연 끊고 살려는 듯한 분위기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쉽지만 달리 방법도 없고, 이제 그만하자고 서로에게 선언하기는 무섭습니다. 매일 쫑알쫑알 같이 떠들고 놀면서도, 외면하는 말은 계속 외면합니다. 그래서 저 질문 하나가, 나의 부족함과 무심함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서로를 알기 위한 노력은 오랜 세월 충분히 했습니다. 그래도 전하기 쉽지 않은 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정이 부족한 것처럼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포옹하고 눈을 맞춘 상태어서, 말하고 또 들으려 합니다. 이불 밑에 숨은 말은 발끝부터 조금씩 잡아당겨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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