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볼보 전기차 광고에 푹 빠졌습니다. 할아버지 댁에 놀러간 알리시아의 모험 이야기입니다. 캐스팅, 스토리, BGM까지 모두 별 다섯개를 주고 싶습니다. TV에서만 보신 분은 꼭 풀버전을 보시길 권합니다.
아내와 매일 알리시아를 흉내내며 놉니다. 헬로우, 으엑, 도리도리, 바이바이... 거기다 Ethel Merman의 <Anything you can do>도 너무 좋아서, 툭하면 예싸캔 예싸캔~하고 낄낄거립니다.
'Future is electric'이라는 카피처럼, 신세대 알리시아는 뭐든지 자동, 디지털, 그리고 전동입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물건들은 수동, 아날로그, 내연기관입니다.
알리시아가 턴테이블에게 "Play some music!", "mu-sic!"하고 다그치면 할아버지가 바늘을 LP판 위에 얹어 줍니다. 알리시아가 TV를 밀어서 잠금해제하면 할아버지가 리모컨으로 TV를 켜 줍니다. 알리시아가 전등 밑에서 손뼉을 치면 할아버지가 스위치를 올려 줍니다.
알리시아가 할아버지의 차고로 달려갑니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위한 기름묻은 걸레를 들고 으엑~ 하고 질색합니다. 방으로 돌아와선 전기차 모형을 조용히 갖고 놉니다. 할아버지가 다른 모형을 들고 '부릉부릉' 해 보지만 알리시아는 웃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듭니다.
자동차는 당연히 조용한 것이 되는 미래가 오긴 오려나 봅니다. 세상이 부릉부릉 기름 먹는 차와 뵤오오옹 전기 먹는 차처럼 많이 달라지면, 그때쯤이면 난임이란 단어가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비혼과 딩크가 늘어날지언정,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것이 의술의 발전으로 이루어질지, 인큐베이터 같은 기술의 발전으로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문득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가 떠오릅니다. 불치병에 걸려 냉동된 아들을 '대체'하는, 새 로봇 아들 데이빗의 이야기입니다. 데이빗의 부모는 새 아들을 손쉽게 얻고 또 버립니다. 금전적 문제, 혼란스러움과 죄책감이 비용이라면 비용이겠지만 생명의 가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를 원하면 선택할 수 있는 세상. 입양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자신을 속이고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관계. 주위에서 로봇 아이라도 갖고 싶다는 이가 있다면 절대 비웃지 않고 존중하겠지만, 아이가 부모 놀이를 위한 도구가 되리라는 생각을 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반대의 상황이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 봅니다. 아이들이 부모를 선택하는 세상이라면, 그리고 내가 로봇 아빠라면? 진짜 인간인 아빠들과 비교될까요? 사랑을 주려는 나를 소름끼쳐하고, 몰래 숲속에 버리지는 않을까요? 내 사랑을 진심으로 원하는 내 아이를 찾아 모험을 떠나야 할까요?
사실 지금도 그 모험에 한 발쯤은 들인 상태입니다. 푸른 요정이 아닌 하얀 가운 입은 선생님 말에 상처받고 걸음을 멈추었을 뿐. 어딘가로 나아가든 이대로 멈춰서 있든, 수천년 후라면 누군가 우리를 진정한 부모로 만들어 줄지도 모릅니다. 알리시아 같은 귀여운 아이에게 선택받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