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상이 되다
1951년 7월,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 끝에 휴전협상이 시작되었다. 엄마네 가족은 고향마을 큰아버지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세 얻어 살게 되었다. 엄마는 조금이라도 집안에 보탬이 되려고 뒷산에 가서 소나무를 긁어 불쏘시개로 쓸 나무껍질을 모아 오거나 가족들이 먹을만한 나물을 캐오곤 했다. 산에서 동년배 아이들을 만나면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나무를 하다가 낫으로 왼쪽 검지와 중지를 베어 피를 철철 흘리며 집에 돌아왔더니 외할머니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또 크게 야단을 쳐서 속이 상했다.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는 대신 큰소리로 야단치는 것은 외할머니 특기셨나 보다. 아이가 한둘이 아닌데 일일이 보듬어 주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지. 어쨌든 외할머니 마음만은 무척 속상했을 것이다. 외할머니의 양육방식 덕분인지 엄마를 비롯한 외삼촌, 이모들 모두 자기 몫을 혼자 견뎌내는 것에 익숙한 것 같다. 남 탓하는 법이 별로 없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인내한다.
전쟁 후 엄마네 가족은 고향마을 부잣집 연기댁 행랑채에서 지내다 길거리집 행랑채로 옮겨 살면서 안양집 땅에 묻어두어 지켜낸 약초로 한의원을 다시 시작해 조금씩 돈을 모았다. 큰 이모는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간호장교로 일하면서 돈을 보탰다. 얼마 지난 후 방 세 칸짜리 감나무집을 샀다. 가을이 되면 나무에 감이 붉게 익어 큰 이모가 기다란 막대기로 감을 따기도 했는데 외할머니는 이모가 다칠까봐 하지 말라고 소리를 쳤다. 할아버지는 점심으로 면을 즐겨 드셨는데 엄마는 때마다 다른 메뉴로 밥상을 차려내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얼마 후 몇 집 건너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지난번 백석정 여행에서 봤던 바로 그 빨간 지붕 집이다.
1953년 7월, 막내 이모 산달이 되었다. 외할머니가 산통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는 들으며 17살이 된 엄마는 할머니가 이러다 돌아가시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마음에 식은땀을 흘리며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히 할머니는 막내 이모를 낳고 건강을 되찾았다. 같은 달, 어렵사리 정전협정이 이루어졌으니 공식적으로 전쟁은 멈춘 것이었다. 한 번은 예전에 같은 동네에 살던 이웃 아주머니가 외할머니를 보고 반갑게 머리를 조아리며 '마님,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하며 허리 숙여 인사하니, 시대가 변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존대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시대의 변화를 재빨리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