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맞은 국민학생

책가방

by 파드마

1944년 엄마가 산동 국민학교에 다닐 때 보통 학생들은 보자기에 책을 놓고 접어서 크로스로 둘러메고 다녔는데 엄마는 빨간색 신식 가방을 등에 메었다. 처음엔 남들과 다른 걸 메고 다니려니 쑥스러웠는데 할아버지가 가방에 크게 '책 가 방'이라고 써주셔서 자랑스럽게 메고 다녔다. 한 번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장난으로 남자아이가 쓰고 있던 모자를 휙 쳤는데 그만 아래 개울에 떨어져 버렸다. 아이가 울상이 되자 미안하기도 하고 겁이 나서 냅다 집으로 도망쳐 왔다. 또 한 번은, 집에 꽤 멋스러운 옛날 책이 있었는데 종이가 귀한 시절이라 친구들에게 종이책 한 장씩 찢어 주면 무지 좋아했다. 으스대거나 부탁할 일이 있을 때는 책종이 한 장이면 다 되었다. 엄마는 어린 시절 꽤 장난꾸러기 여학생이었나 보다.

스크린샷 2025-06-09 오후 4.38.51.png 이런 모습이었으리라..

큰 이모와의 일화도 있다. 이모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하고 싶어 했고 누구보다 뛰어나기도 했다. 아침이면 백석정 냇가를 따라 학교까지 오랫동안 걸어가야 했는데 큰 이모는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걸음이 느린 엄마를 두고 저만치 먼저 갔다. 그러면 엄마는 언니와 같이 가려고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안달이 났다. 어느 비 오는 날도 큰 이모는 먼저 가고 있었는데 엄마는 길에 물이 불어나 건너가기 무서웠다. 멀어져 가는 언니를 보며 마음이 급했는데 갑자기 동네 오빠뻘 되는 사람이 와서 엄마를 업어 학교까지 데려다줬다. 등에서 졸다가 내려주니 학교였는데 뒤 따라온 큰 이모한테 아무한테나 업혀 왔다고 혼이 났다. 분별심이 유별나 남에게 곁을 잘 내주지 않는 건 엄마 성씨 일가의 전해 내려오는 집단 무의식이다. 사실 우리 딸들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음 해 1945년 청주로 이사해서 수정 국민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라디오 방송에서 일본천황이 항복한다는 연설이 흘러나왔다. 1945년 해방은 기쁨의 순간이었지만 다양한 이유로 조국을 떠났던 동포들이 돌아오면서 콜레라가 퍼졌다. 사실 엄마에겐 언니뿐만 아니라 오빠도 있었는데 1946년 어느 날 할머니와 엄마의 오빠(큰 외삼촌)가 함께 병에 걸렸다. 다른 환자들도 너무 많아 할아버지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할머니는 간신히 회복하게 되었는데 어린 큰 외삼촌은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시대의 역사를 찾아보니, 1946년 7월 13일 어느 주한미군 관련자가 6월에는 콜레라로 651명이 사망했는데 7월 한 달에는 5500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만큼 전국이 콜레라 공포증에 빠져 있었던 때였다. 할아버지는 자식을 잃은 슬픔과 죄책감으로 한의원 문을 닫아 버렸다. 그때 엄마 큰 아버지의 아들, 즉 외할아버지의 조카 되는 분이 서울로 이사하게 도움을 주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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